주간동아 597

2007.08.07

누나들은 아이돌을 좋아해~

20, 30대 여성 능동적 팬 활동… 경제력도 갖춰 문화 소비 주역으로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08-01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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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들은  아이돌을 좋아해~

    대표적인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왼쪽)와 동방신기.

    한때 ‘알파걸’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현재 20, 30대 여성들은 대학 졸업 후 ‘여성’으로서의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음을 깨닫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이 쉽지 않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는 ‘꼰대마초’ 상사를 만나기 일쑤. 나이를 먹을수록 연애도 쉽지 않고,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은 더 어렵다.

    반짝이는 미소년 아이돌 그룹이 눈에 들어오는 건 그 무렵이다. 세파에 지친 20, 30대 ‘누나’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듯 해맑게 웃는 꽃미남 ‘동생’들에게 매료돼 인터넷 팬카페에 가입하고 10대 시절 추억을 더듬으며 ‘팬질(적극적인 팬 활동)’을 시작한다.

    “보기만 해도 귀엽고 즐거워”

    최근 인터넷의 각종 아이돌 팬클럽 사이트나 팬카페에는 누나 회원들을 위한 ‘누나방’ 혹은 ‘이모방’ ‘20, 30대 방’이 우후죽순 개설되고 있다. 오빠부대가 대세였던 아이돌 팬덤(fandom·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현상)에서 20, 30대 누나팬덤의 부상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J·H 미디어 이창재 팀장에 따르면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은 10대를 주 타깃으로 잡고 있지만, 20대 이상 여성팬의 비율도 전체의 20%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팀장은 “지난 5년 사이 공연장 주변에 20대 중반 이상 여성팬이 눈에 띄게 늘었다”면서 “20, 30대 팬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인지 더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7월 중순,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주연 영화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의 시사회는 이런 20, 30대 누나들의 팬파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배급사와 기자를 대상으로 한 자리였지만 시사회장에서는 취재진 외에 슈퍼주니어의 20, 30대 여성팬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기존 ‘오빠부대’에 속하는 10대 여학생들이 시사회장 바깥에서 ‘슈주(슈퍼주니어) 오빠들’을 기다렸다면 20, 30대 여성팬들은 자신의 인맥을 통해 시사회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지모(27) 씨는 슈퍼주니어 이특의 팬이다. 2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지씨는 대학 졸업반 시절 클릭B를 좋아하며 아이돌 ‘팬질’을 시작했고, 동방신기 팬을 거쳐 현재 슈퍼주니어 팬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냥 보기만 해도 귀엽고 즐거우니까요. 남들이 술 마시거나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과 비슷한 일종의 적극적인 취미활동인 셈이죠.”

    아이돌 스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10대 못지않지만 현실적인 편이라 심각하게 빠지진 않는다”고 말하는 지씨는 “나이 든 팬들은 때로 연하의 스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자식 키우는 심정’ 같다고 말한다”며 웃었다.

    누나들은  아이돌을 좋아해~
    20, 30대 누나팬들은 10대 팬보다 여러 가지 점에서 여유롭다. 스타를 좋아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다. 5년차 직장인 한모(30) 씨도 동방신기 최강창민의 팬이다. 동방신기의 경우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활동하기 때문에 그는 일본 공연에도 찾아다니고, 일본에서 출시된 앨범도 모두 구입한다. 한씨가 동방신기 팬 활동을 하며 투자하는 비용은 연간 수백만원이 넘는다.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열린 네 차례의 콘서트를 비롯해 콘서트에 여덟 차례나 다녀왔고, 올해도 일본에서 열린 네 차례의 콘서트에 모두 다녀왔어요. 주말과 휴가를 이용해 가는데, 한 번에 100만~150만원이 들어요. 이 밖에 CD나 DVD, 생일선물 등을 사는 데도 돈이 좀 들고요. 제 경우 대단한 선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 팬들은 비싼 선물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색다른 분위기 요구 캐릭터 다양화

    환상에 중독돼 대형 연예기획사 주머니만 채워주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오히려 “환상을 소비한다”고 답했다.

    “공연을 보면 어느 순간 ‘찌릿’할 때가 있는데 그 순간 때문에 이 활동을 계속하는 거죠. 또 좋아하는 아이가 내가 보낸 선물을 받고 기뻐할 생각을 하면 그냥 기분 좋고요. 저희 같은 팬들이 연예기획사의 돈벌이 대상이 된다고 부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대신 저희는 즐겁잖아요? ‘원하는 것을 줄 테니, 너희도 내가 원하는 것을 주려무나’ 하는 식이죠.”

    지씨나 한씨 등 20, 30대 여성팬들은 70년대 중후반~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다. 이들은 청소년기에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을 경험했고, 서태지와 아이들 혹은 아이돌 1세대인 H.O.T.의 춤과 음악을 접하며 자랐다. 그래서 이들에게 아이돌 팬덤 문화는 낯설지 않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는 “아이돌 스타를 숭배하는 10대 소녀들과 달리 20, 30대 여성들은 아이돌 스타를 팻(pat) 같은 존재로 여기는 성향이 크다”고 말한다. 그는 또 어릴 때부터 숱한 아이돌 스타를 봐온 20, 30대 여성들은 새로운 분위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간 아이돌이 보여준 착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코믹하고 엽기적인 모습 등으로 캐릭터를 다양화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흔히 누나부대는 ‘연상연하’ 붐과 연결해 해석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연하의 남성에게만 ‘꽂히는’ 것은 아니다. 취재를 위해 만난 20, 30대 여성팬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아이돌이 좋다”고 말했다. 순정만화 주인공을 좋아하는 데 자신의 나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듯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0, 30대 여성팬들은 얼굴은 미소년이되 몸은 건장한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에 반하고 ‘약간 덜 자란 듯한’ 행동이나 말투를 보면서 보호본능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20, 30대 여성 팬덤에 대한 여성주의적인 해석도 등장했다. 올해 초 이화여대에서 ‘30대 기혼여성의 팬덤과 나이의 문화정치학 : ‘동방신기’ 팬덤을 중심으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오자영 씨는 20, 30대 여성팬의 증가에 대해 “여성의 문화활동을 낮춰 보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시선과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에 균열이 일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분석했다. 때문에 그는 앞으로 “욘사마에 열광하는 40, 50대 일본 여성들처럼 한국사회에서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장년층 여성팬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바야흐로 아이돌은 소녀들의 ‘오빠’인 동시에 누나들의 ‘동생’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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