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1

2006.11.21

‘미운 오리’ 하이닉스 ‘부활의 노래’ 숨은 비결

상생 노사문화 원가·기술경쟁력 탁월 … ‘부실덩어리’ 탈출 올 3분기 당기순이익 3840억원

  • 김선미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kimsunmi@donga.com

    입력2006-11-15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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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운 오리’ 하이닉스 ‘부활의 노래’ 숨은 비결

    1. 경기 이천시 하이닉스 공장 전경.<br>2. 하이닉스가 독자적인 반도체 적층기술을 이용해 업계 최초로 개발한 2GB DDR VLP 모듈(R-DIMM·위). 한 연구원이 설계도면을 검사하고 있다.

    “영원한 절망은 없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성공 비결을 배워라.”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화려하게 부활한 하이닉스반도체를 바라보는 요즘 관련 업계의 시선은 경이로움에 가득 차 있다. 1999년 LG반도체와 ‘빅딜’하면서 15조원의 부채를 떠안았던 이 회사는 당시 D램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하이닉스는 1999년 현대전자가 정부의 빅딜 방침에 따라 LG반도체의 지분 59%를 인수한 뒤 LG반도체를 흡수합병하면서 탄생한 회사. 그러나 바로 그 무렵 정보기술(IT) 버블이 붕괴되고 반도체 경기가 추락하면서 심각한 유동성 부족에 빠졌다. 이에 따라 2001년 8월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됐고, 10월에는 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채권금융회사들의 공동관리에 놓였다. ‘해외 매각만이 살길’이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경쟁 회사인 독일 인피니티사(社)와 미국 마이크론사(社)에 헐값 매각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임직원 절반으로 줄인 구조조정

    그러나 이사회와 소액주주의 반대로 해외 매각이 결렬되면서 이 회사는 오히려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2004년 1분기(1~3월)부터 흑자를 내면서 지난해 7월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를 1년 6개월이나 앞당겨 조기 졸업했다. 올해 3분기(7~9월)에는 해외법인 실적을 반영한 연결 기준으로 매출 1조9660억원, 영업이익 4530억원, 당기순이익 3840억원을 기록했다. 전분기보다 매출은 17%,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7% 늘어났다.



    올 10월에는 중국 우시에 최첨단 반도체 라인을 합작 건설하는 등 대대적인 투자도 시작했다. 올해 4분기(10~12월)에 경기 이천공장에 300mm 웨이퍼 생산라인 증설 및 연구개발 분야에 7168억원을 신규 투자하는 등 올해 투자액만 3조원에 이른다. 내년 상반기에는 60나노급 기술을 적용한 1GB(기가바이트) D램 제품도 생산할 계획이다.

    ‘미운 오리’ 하이닉스 ‘부활의 노래’ 숨은 비결

    하이닉스반도체 부활의 일등공신 우의제 사장.

    그렇다면 하이닉스는 어떻게 부활했을까. 업계에서는 그 성공 비결을 상생의 노사문화,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 기술과 생산 경쟁력, 원가경쟁력, 다양한 제품 라인업 등 5가지로 요약한다.

    하이닉스는 국내 주요 메모리 반도체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노조가 조직돼 있다. 이 회사는 ‘회사와 노조의 발전은 하나’라는 ‘노사불이(勞使不二)’의 신(新)노사문화를 정착시켜 왔다. 경기 이천시와 충북 청주시에 있는 이 회사 노동조합은 수년째 임금교섭 전권을 회사 측에 위임하고 있다. 대신 회사는 경영 실적을 공시하고 매출이 호전될 때마다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6월 발표한 ‘2006년 주요 기업의 노사 관계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하이닉스 노사가 구조조정에 협력, 결국 채권 금융기관 공동관리를 조기에 종료시켰다”며 하이닉스의 노사문화를 모범사례로 꼽았다.

    2002년 이 회사에 취임한 우의제 사장은 하이닉스반도체 부활의 일등공신이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와 1967년 외환은행 공채 1기로 입사, 2000년 외환은행장 직무대행을 역임할 때까지 30여 년을 한 우물을 판 금융인 출신. 그는 취임 초기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회사를 위해 희생해달라”고 설득해 임원의 3분의 1을 내보내고, 엄격한 윤리경영 기준을 적용해 이에 어긋난 임직원을 역시 ‘귀가’시켰다. 한때 2만2000명이던 이 회사 임직원은 현재 절반 수준인 1만1000명으로 줄었다.

    이천 공장 증설, 새 주인 찾기 과제

    생존을 위한 사업 매각과 분사도 계속됐다. 비메모리 사업 부문을 매그나칩반도체에 매각한 것을 비롯해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부문은 비오이하이디스, 현대큐리텔 지분은 팬택앤큐리텔 등에 넘겼다. 자동차 전장사업 부문은 현대오토넷, 모니터 사업 부문은 이미지퀘스트 등으로 분사시켰다. 그러나 정작 우 사장은 모든 공을 직원들에게 돌린다.

    “한 세대를 건너뛰는 반도체 생산 장비를 갖추려면 1조500억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돈이 없어서 기존 장비를 개조하기로 했다.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이 밤잠 아껴가며 기술 개발에 달려들어 3000억원으로 해냈다.”

    하이닉스의 기술과 생산 경쟁력은 이처럼 경쟁업체에 비해 투자를 적게 하면서도 얻어낸 뼈저린 노력의 결과다. 하이닉스는 기존 장비를 최대한 사용해 쉽게 회로선 폭 축소가 가능하도록 하는 독자적인 기술 플랫폼 ‘칩 패밀리’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인텔사로부터 66nm(나노미터) DDR2 제품에 대한 인증을 확보해 내년 초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제조기술과 공정관리 부서 담당자들로 프로젝트 팀을 꾸려 전 직원의 협력 체제를 갖췄다. 생산성 향상(TRM) 운동도 수년째 꾸준히 추진해오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0mm 웨이퍼 라인 생산 능력을 2002년 당시 월 4만 장에서 월 14만 장으로 끌어올렸다.

    업계에서는 이 회사의 반도체가 세계 최고 수준인 삼성전자의 반도체보다 오히려 수율(불량률의 반대개념으로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투입량 대비 제조량)이 높다는 말도 한다. 본격적인 투자가 진행될 경우 성장 전망이 밝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로 나눈 비율로 일종의 수익성 지표) 23%를 달성했다. 이는 업계 1위인 삼성전자의 26%에 근접한 수치로 이 회사의 원가경쟁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이닉스는 또 시장상황 변화에 맞춰 이 회사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효율적으로 조절하고 있다. 특히 주력 제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상황에 따라 조절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세계적인 낸드플래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M-시스템즈와 퓨전메모리의 일종인 ‘DOC3 H3’ 공동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휴대전화 및 가전제품용 메모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우 사장은 이 회사 임직원에게 늘 이렇게 강조한다고 한다.

    “하이닉스는 위기를 극복한 무형의 자산을 갖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않은 채 안주한다면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현재 하이닉스는 이천공장 증설문제와 함께 ‘새로운 주인 찾기’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투기 자본이 아닌, 장기적 안목의 전략적 파트너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사 임직원의 한결같은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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