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59

2006.11.07

수면장애 코리아를 재워라!

성인 10명 중 4명꼴 ‘잠과의 전쟁’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입력2006-11-01 1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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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면·수면과다·몽유병 등으로 고통 겪는 사람 의외로 많아졸음운전 등 각종 안전사고 유발로 사회·경제적 손실도 커

    수면장애 코리아를 재워라!
    올해 갓 40대에 접어든 회사원 이모 씨. 그는 지난 4년간 달콤한 잠의 유혹에 빠져본 기억이 없다. 내일을 위해 애써 잠자리에 들지만 잠이 들기까지 1~2시간은 족히 걸린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자리에 누워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밤새 몸을 뒤척이기 일쑤다. 게다가 주말엔 잠들기까지 3시간을 훌쩍 넘기는가 하면, 온밤을 하얗게 지새는 날도 적지 않다.

    이뿐 아니다. 자는 도중에도 몇 번씩 깨고, 꿈도 여러 차례 꾼다. 술을 마시면 쉽게 잠들긴 한다. 그러나 다음 날의 후유증이 문제다. ‘두려운 밤’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이 씨는 요즘 수면클리닉을 찾아볼까 생각 중이다. 하지만 막상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지인(知人)들을 대하고 나면 “남들도 그런데 뭘…”이라며 용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 씨처럼 수면장애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사이버 공간만 들여다봐도 각종 수면장애에 시달린다는 호소의 글이 부지기수로 올라 있다.

    과연 무엇이 수면장애인가. 잠은 신체적·정신적 안정과 두뇌 발달에 가장 기본이 되는 생리적 현상. 우리가 순간순간 들이마시는 공기나 매일 먹는 음식 또는 물처럼 생명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수면장애라고 하면 흔히 불면증을 떠올리기 쉽지만, 불면증은 수면장애의 한 유형일 뿐이다. 국제적으로 수면장애로 분류되는 증상은 80여 가지나 된다. 따라서 수면장애는 불면증은 물론 수면과다증, 일주기 리듬 수면장애(수면시기가 올빼미형 혹은 종달새형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 초수면장애(잠을 깨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한 행위를 하는 상태. 몽유병이 대표적이다) 등 정상적인 수면형태를 벗어난 증상들을 포괄한다.



    문제는 이 같은 수면장애가 결코 개인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수면 전문가들은 수면장애를 사회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질병’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공통된 견해를 내놓고 있다.

    “10명 중 1명은 한 달 이상 지속되는 만성 불면증”

    9월20∼23일 서울 잠실롯데호텔에서 개최된 제5차 아시아수면학회 학술대회가 그 한 예다. 1994년 일본 도쿄에서 처음 열린 이래 3년마다 각국을 순회하며 열리는 이 학술대회에서 이번에 발표된 국내 수면 전문가들의 연구는 수면장애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선 수면장애의 유병률부터 살펴보자. ‘수면장애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연구한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박두흠 교수는 수면장애에 따른 합병증이 크나큰 사회·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한다. 그가 근거로 든 것은 미국의 사례.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2002년 7월)에 따르면, 전체 미국인의 25%인 7000만명이 수면 시 갖가지 문제를 호소하고, 12.5%인 3500만명은 실제로 수면장애 진단을 받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만 최대 1000억 달러 이상이다. 이는 수면장애 환자의 자가치료 비용과 의료서비스 비용 같은 직접비용에다 수면장애의 합병증 발생과 그에 따른 사망으로 인한 간접비용을 포함한 것이다.

    수면장애 코리아를 재워라!

    9월20~23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수면학회 학술대회.

    우리나라의 경우 지속적인 역학 연구가 이뤄지지 못해 수면장애의 정확한 유병률을 파악하긴 어렵다. 그러나 국내 학자들은 사회·경제적 여건이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미국과 비슷한 수치인 성인 인구 10명 중 4명 가량이 수면장애를 겪고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30% 정도가 불면증을 겪은 경험이 있으며, 10명 중 1명은 한 달 이상 지속되는 만성 불면증 환자라고 한다. 박 교수는 “수면장애는 주간에 졸리는 증상을 유발해 낮 시간대의 인지기능 및 작업수행 능력 저하, 각종 사고의 발생 등 다양한 합병증을 파생시킨다”며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장애(ADHD)로 진단받은 어린이의 25% 가량이 수면장애를 나타낸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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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장애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로 대표적인 것이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수면 부족 현상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다.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신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 청소년의 수면시간은 평균 5시간. 일본과 중국의 평균 6∼7시간, 미국의 8시간에 비해 훨씬 잠이 모자란다. 학업량 증가와 이른 등교시각, 과다한 인터넷 사용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 수면 부족은 우울증이나 성장장애, 비만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자살이 10대의 사망원인 중 2위를 점하는 것과도 연관성을 지닌다고 한다.

    수면장애 중 불면증의 경우 30대가 가장 많이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수원) 신경정신과 홍승철 교수가 2001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수면센터와 공동으로 우리나라 15세 이상 남녀 3719명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에 따른 것이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내의 불면증 유병률은 17%로 한국인 5명 중 1명은 일주일에 3일 이상 불면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사대상자 100명 중 5명(5%)은 정신과적 진단기준에 의거해 불면증으로 진단됐다. 더욱이 비회복수면(non-restorative sleep·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치 않은 느낌과 낮에 피곤한 증상을 낳는 잠, 즉 제시간에 잠이 들고 제시간에 일어났는데도 잔 것 같지 않은 잠)의 빈도는 30대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였다.

    홍 교수는 “30대는 활발한 사회적·직업적 활동을 하는 한편으로 책임과 부담이 늘어나는 시기로 스트레스와 불안, 긴장, 우울감이 심해져 뇌를 과도하게 각성시켜 잠을 잘 이루지 못하게 된다”며 “불면증 환자 4명 중 1명이 알코올 섭취 등 자구책만 도모할 뿐, 수면클리닉을 찾지 않고 있는 현실이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불면증 환자 중 5% 가량만이 수면클리닉을 찾고, 26%는 다른 원인에 의한 질병이나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가 불면증이 진단된 경우이며, 나머지 69%는 그냥 견딘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도 있다. 홍 교수는 6개월 안으로 2001년 당시의 조사대상자들에 대한 추적 조사를 벌여 그들의 수면 행태가 5년 후인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를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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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장애가 야간 교통사고의 중대 원인이라는 분석 결과도 있다.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임세원 교수의 ‘수면 부족과 한국에서의 교통사고’라는 제목의 연구에 따르면, 야간 화물차 충돌사고 원인의 50% 이상이 수면장애로 인한 졸음운전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5t 이상 대형 화물차와 컨테이너 트레일러를 장거리 운전하는 직업 운전기사 273명을 대상으로 야간 충돌사고의 위험요소를 조사한 결과, 이들이 한 달 중 15일 이상을 차 안에서 자면서 생활하고 전체 운전시간의 절반 이상이 해가 진 뒤의 늦은 시각이어서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열악한 노동 여건이 충돌사고 발생에 가장 중대한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수면장애의 사회·경제적 손실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방증하는 사례”라고 말한다. 비단 교통사고가 아니더라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나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도 근무자의 수면 부족에서 빚어진 대형 참사라는 사실은 수면장애의 파급효과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수면 전문가들의 여러 지적과 분석들은 공히 수면장애를 범국가적 차원에서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의 경우 국민건강 수호 차원에서 대규모 역학 연구를 시행할 여건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 미국의 경우 국립수면재단(NSF)이나 ‘수면의 생리심리학적 연구회’(APSS) 같은 수면 관련 연구기관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수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아 학술연구 지원조차 미흡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수면 연구 역시 걸음마 단계다. 수면장애가 ‘선진국병’으로 불리는데도 그렇다.

    수면 중요성 인식 수준 낮고 수면 연구도 걸음마 단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정도언 교수(아시아수면학회 부회장)는 “비록 높은 유병률을 보이긴 하지만 수면장애는 효과적 치료가 가능한데도 간과되고 있다. 따라서 수면장애가 신체적·정서적·사회적 질병이라는 점에 대한 경각심이 교육과 홍보를 통해 널리 확산돼야 한다”며 “일례로 음주운전은 최소한 눈을 뜨고 하지만, 졸음운전은 아예 눈을 감고 하는 만큼 더욱 심각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개인의 건강과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잠.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수명을 단축시킨다. ‘쉼표 없는 악보’는 없다. 어떤가? 푹 자고 싶지 않은가?

    이럴 때 수면클리닉 찾아라!

    수면 전문가들은 다음 A항목에 해당되면서 동시에 B항목 중 한 가지 이상의 증상이 나타날 경우, 그리고 이 밖에도 수면장애로 인해 어떠한 유형이든 일상생활에 불편함과 지장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수면클리닉 방문을 권고한다.

    A. 밤에 잠이 들기 어렵거나, 자다가 자주 깨거나, 이른 새벽에 깨어나 다시 잠이 오지 않거나, 아침에 일어나 개운하지 않다.

    B. 야간의 수면장애로 인해 아래 증상들 중 하나 이상의 증상이 있다.

    1. 피곤함

    2. 주의력, 집중력 혹은 기억력의 저하

    3. 사회적·직업적 활동 혹은 학업 수행의 장애

    4. 짜증 혹은 예민함

    5. 주간 졸림

    6. 의욕이나 활력의 저하

    7. 일이나 운전 중 실수 혹은 사고의 위험성 증가

    8. 수면장애로 인한 두통, 긴장, 소화장애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

    9. 잠에 대한 불안과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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