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6

2006.08.01

한반도 정세 남·북만 燈下不明

美, 북한 급소 잡고 압박 등 게임의 룰 변경…北 낡은 벼랑끝 전술, 南 북한 감싸기 ‘고수’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입력2006-07-26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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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정세 남·북만 燈下不明
    “정부와 몇몇 전문가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명백한 오판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북한 지도부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본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의도가 미국을 위협하려는 게 아니라 한국을 겨냥한 측면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이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한국에서 ‘미국이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질 것 아닌가. 이는 결국 한-미 갈등의 고조로 이어지고, 한국은 북한 대신 총대를 메고 나설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런 속셈은 북한이 대포동뿐 아니라 스커드 미사일을 함께 쏜 데서 명백하게 읽을 수 있다.”

    7월20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열린 한 비공개 안보 세미나에서 나온 분석이다. 수십 년째 안보 분야에서 정부에 조언해온 원로 교수의 이 같은 설명에 10명 남짓한 참석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원로 교수가 소개한 북한의 ‘계산’은 현실에서 상당 부분 맞아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6월 미사일 사태가 촉발된 초기부터 최근까지 우리 정부의 대응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정부는 6월 말까지 ‘발사 징후가 있다’는 미국의 입장을 무시 혹은 부인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7월5일 발사 직후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15일 유엔안보리 대북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에는 이를 환영했다가 곧이어 거리를 두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와중에 한-미 간 갈등 조짐은 지난 주말의 상황만 놓고 봐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7월20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방송 토론에 출연해 “국제사회가 결의문을 냈는데 미국이 이보다 더한 것을 한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국제사회는 아니라고 본다. 모든 일을 국제사회의 이름으로 치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미국 시각)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미 상원 군사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유엔결의안이 이행될 수 있도록 주변 관련국들과 함께 추가적인 대북 제재조치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밝혔다.

    유엔안보리가 통과시킨 대북(對北) 결의안이 갖는 함의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함의는 예전 같았으면 기권하거나 불참했을 중국이 안보리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안보리 표결 전에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을 평양에 보내 막후교섭까지 벌였다. 따라서 중국의 결의안 찬성은 더 이상은 북한 편만 들어주지 않을 것임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신호다. 북한으로선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일각에선 지난해 8월 로버트 죌릭 미 국무부 차관이 베이징을 방문해 제의했던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미-중 간 전략 대화’가 한층 진전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번째 함의는 안보리 결의안의 내용이 북한의 군수산업을 관장하는 ‘제2경제’부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결의안 중에서도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각국의 국내법, 국제법에 따라 북한을 감시하면서 미사일과 미사일 관련 물품, 재료, 제품, 기술이 북한의 미사일이나 WMD 프로그램에 사용되지 않도록 해줄 것을 요구한다’는 대목이 그렇다. 미사일 관련 교역이 차단되면 북한 경제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제2경제는 한층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이어 추가적인 금융제재를 가하게 되면 북한의 장래는 더욱 암울해진다. 한 북한 전문가의 말이다.

    한국 외교안보팀 무기력증도 심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 비자금으로 알려진 마카오의 북한 계좌는 24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상식적으로는 북한이 그토록 연연해할 필요가 없는 액수다. 그럼에도 미국에 이 계좌의 동결을 풀어달라고 떼를 쓰는 이유는 이것이 스위스 등 다른 해외계좌에 끼칠 수 있는 파급효과 때문이다. 정확한 액수를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정보당국은 김정일의 해외 비밀계좌에 45억~60억 달러가 숨겨져 있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미국이 마카오 계좌뿐 아니라 여타 비밀계좌까지 차단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안보리 결의안 통과 이후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차관이 7월16~18일 한국을 방문한 데 이어 베트남, 일본, 싱가포르를 순방한 것이 추가적인 대북 금융제재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정리하면, 미국은 북한의 ‘급소’를 잡았고 이를 더욱 옥죄겠다는 전략에 전혀 흔들림이 없다. 일본 역시 이 같은 미국의 정세 인식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북한 정권의 핵심 주변과 당, 군으로 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하면 정권 전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화학변화를 일으킬 수는 있다”고 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관방장관의 7월20일 발언이 이를 방증한다.

    문제는 북한과 한국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를 협박하면 대가를 챙길 수 있다’는 낡은 벼랑끝 전술에, 한국은 주변국 기류 변화를 무시한 채 그런 북한을 감싸안으려는 태도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를 ‘게임의 룰’에 빗대어 설명했다. “부시 2기 행정부는 북한 문제의 게임 규칙을 축구에서 미식축구로 바꿨다. 그런데 남-북한은 여전히 축구 규칙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 경직된 체제 성격상 북한은 그렇다고 쳐도, 한국은 왜 이렇게 엇나가기만 하는가. 국책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이를 “관성 탓”으로 설명했다.

    “가깝게는 ‘북한에 더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5월 몽골 발언 이후 정부는 북한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이런 마당에 갑자기 궤도 수정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임기 말로 접어드는 참여정부로선 남북 카드를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대통령 앞에서 할 말 못하는 외교안보팀의 무기력증이다. 유엔안보리 결의안이 통과될 때 당사자인 정부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단적인 예다. 그보다 앞서, 일본이 결의안 초안을 내놓았을 때에는 펄쩍 뛰던 정부가 정작 결의안이 통과되는 역사적인 현장에 불참했다는 것은, 외교안보팀이 대통령 코드에 함몰돼 상황 전개에 적절히 대처해나가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정부 당국자 발언록
    6월12일 . 美 관리, 北 ICBM 조만간 시험발사 가능성 언급
    6월17일 .일본 교토통신, 아사히신문 등 북 미사일 발사 임박 보도
    6월20일 .김승규 국정원장 "연료 주입이 다 됐다고 보기 어렵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 "북한이 실제로 발사체를 발사할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열린우리당 지도부 대책회의에서)
    6월21일 .윤관웅 국방부 장관 "발사체가 인공위성임을 배제할 수 없다."(국회 국방위원회에서)
    6월26일 .송민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상황을 예단해 과민 반응을 보이면 사태 악화를 바라는 의도에 말려들 뿐이다." (청와대브리핑 기고문에서)
    .박선원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미국 측도 상황을 냉정하게 관리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청와대브리핑 기고문에서)
    .정부 고위 당국자 "(미사일 연료 주입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볼 증거가 없다고 봤다. 결과적으로는 그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7월5일 .北 미사일 발사
    .서주석 통일정책안보수석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인 조치는 상황을 봐가면서 여려 협의를 통해 결정해 나갈 것."
    7월6일 .서주석 통일정책안보수석 "일부 신문의 북한 미사일 보도엔 국익이 보이지 않는다. 국적도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 브리핑 기고문에서)
    .윤광웅 국방부 장관 "정부가 여유를 갖고 대응했다." (한국이 직접적인 당사자인데도 미국, 일본보다 더 늦게 사태에 대응했다는 국회 국방위 의원들 추궁에)
    7월9일 .청와대브리핑 "과연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우리나라 안보 차원의 위기였는가? 대포동 발사 가능성은 공지의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국방 당국은 어떤 비상사태도 발령하지 않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도 비상사태를 발령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를 겨냥한 것도 아니었기 떄문이다." (홍보수석실)
    7월7일 .일본, 무력 사용까지 기능토록 하는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
    7월9일 .청와대브리핑, "(북한 미사일이 발사됐다고 해서)굳이 일본처럼 새벽부터 야단법석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7월10일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야단법석 주장은) 찬성할 수 없는 견해이며 납득할 수 없다."

    아베 신조 관방장관 "청와대가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유감."
    7월11일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 개막
    7월15일 .유엔안보리 대북 결의안 통과
    7월16일 .외교부 성명 "유엔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북한 미사일 발사에 관한 결의 1695호를 지지한다."
    7월19일 .노무현 대통령 "현 상황 관리에 있어 단기적인 당면 대책도 중요하지만 현 상황의 본질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관련국들 사이에 인식을 공유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하다. …상황의 실체를 넘어 과도하게 대응해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 국면을 조성하는 일각의 움직임들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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