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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오라 꿈이여, 가자 태극전사여!

다시 외친 대~한민국 한여름 밤의 붉은 축제

모두 하나 되는 용광로 월드컵, 우리가 진정한 챔피언

다시 외친 대~한민국 한여름 밤의 붉은 축제

  • 어쩌면 승패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우리는 16강을 넘어 무한질주를 꿈꾸지만, 거대한 일체감의 블랙홀을 즐긴 것만으로도 속 시원하지 않은가. 시민들의 열정과 환희는 조국에 대한 헌사였고 민족적 에너지의 표출이었다.
다시 외친 대~한민국 한여름 밤의 붉은 축제

6월13일 서울광장에서 하나 되어 ‘대~한민국’을 외친 시민들.

프러포즈하기 좋은 곳은 아니었으되,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푸하하하~, 축구만 생각하면 웃음이 터지는 밤이었다.

6월14일 오전 2시 서울 종로의 한 치킨집. 회사원 강희창(29) 씨는 벌떡 일어나 여자친구에게 그동안 별러온 프러포즈를 했다.

“우리 결혼할래요?”

그날 밤 대한민국은 일체감의 블랙홀이었다. 모두가 같은 꿈★을 꾸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친구의 대답은 물론 YES.

대~한민국.



축하 장단은 ‘대~한민국’이었다. 치킨집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박자에 맞추어 그들의 하나 됨을 축복했다.

그들이 하나가 되기로 한 날 우리의 강토는 잠들지 못했다. 하하하~, 그날 밤 사람들이 먹어젖힌 치킨만 187만 마리란다(치킨외식산업협회 추산).

2006 독일월드컵 G조 첫 경기에서의 극적인 역전 승리는 의식의 마취제였다. 대한민국의 밤은 흐드러지게 핀 꽃처럼 휘청거렸다. 축제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푸하하하~, 축구만 생각하면 새신랑처럼 웃음이 터졌다.

시인 최영미는 말한다.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선수들은 3-4-3에서 4-2-3-1로 바뀌고 조였으며 흩어지고 모였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22명의 선수들이 각기 임무를 다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육체의 언어는 이렇듯 구체적이며 정직하다.

‘혀컴’(말만 베컴)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던 이천수는 프리킥을 벼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는 추운 겨울 입김마저 아까워하면서 공을 차고 또 찼다고 한다.

“이천수는 지는 걸 못 배긴다. 고등학교 때 최태욱보다 스피드가 뒤지는 것을 참지 못해 최태욱보다 빨라질 때까지 밤마다 달리고 또 달렸다.”(부평고에서 이천수를 가르친 임종헌 울산 코치)

그라운드 육체 언어·선수들 투혼 잊지 못할 감동

일용직 신분으로 월급 84만원을 받으며 한국철도에서 뛰던 이을용은 또 어떤가. 용산 보건사무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그는 왼발을 갈고닦았다. 거칠기로 소문난 터키 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혹독한 훈력 덕이었다.

“내가 궁극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윤리나 의무란 축구선수로서 내가 지녀야 할 윤리나 의무와 다르지 않다.”

축구선수이기도 한 카뮈가 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한 말이다. 그렇다. 축구는 세상보다 정직하다. 땀을 더 많이 흘린 자만이 보상받을 수 있다. 일본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보면서 최영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외친 대~한민국 한여름 밤의 붉은 축제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은 한바탕 잔치마당이다.

‘눈썹을 소제하고 나온 일본 선수들은 겉멋이 들었다. 하릴없이 운동장을 넓게 쓰는 외국팀 흉내를 냈다. 실력도 체력도 달리면서….’

4-2-2-2라는 그들만의 현묘한 전술을 쓰는 브라질을 보라. 4명의 스트라이커를 투입하는 도박을 벌여 16강 토너먼트 진출의 싹을 살린 한국은 또 어땠는가. 독일은 독일답고 브라질은 브라질다워야 승리할 수 있다. 이영표는 말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한국만의 스타일로 멋진 경기를 보여줄 것이다.”

둥. 둥. 둥. 다시 북이 울린다. 커지는 함성소리, 일렁이는 붉은 물결…. 6월19일 새벽 우리는 다시 어깨를 겯고 하나가 되었다. 다시 하나가 된 대한민국을 기리는 축가는 전날 밤부터 이어졌다. 사람들은 열정적이면서도 치열하게 밤의 축제를 예비했던 것이다.

대~한민국.

사위는 붉은색 물결로 출렁거렸다. 붉은 상의, 붉은 모자, 붉은 머플러 투성이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싱싱한 여성들의 몸에서 성적 욕망을 느꼈다면 실례일까?

선수들은 조였으며, 붙였고, 밀렸으며, 밀고 나갔다. 22명의 움직임에 따라 군중은 함께 뛰고 넘어지며 천둥 같은 응원으로 승리를 염원했다. 마치 해일처럼. 어떤 시민은 오줌을 누면서도 대~한민국을 외쳤다. 나는 웃느라 오줌이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멎는 듯하고 귀가 먹먹해진다. 시간이 멈추었다. 이 열광의 한가운데서 야릇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 무엇이 뒷덜미를 꽉 틀어쥐고 있는 듯한 기분.

동이 텄고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가 끝났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16강을 넘어 무한질주를 꿈꾸지만,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거대한 일체감의 블랙홀을 즐긴 것만으로도 속 시원하지 않은가. 시민들의 열정과 환희는 조국에 대한 헌사였으며 민족적 에너지의 표출이었다.

16강! 8강! 신화의 재현…. 모두 붉은빛으로 하나가 되는 이 짧은 한순간을 우리 국민은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투혼(鬪魂)-끝까지 싸우려는 기백-으로 우리는 토너먼트 진출을 위해 눈물 흘렸고, 목이 쉬었으며, 얼싸안았다. 뒷덜미를 쥐고 있던 그 무엇은 아마도 이렇게 속삭일 듯싶다.

“이 절정의 환희는 일상의 허탈함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용광로는 다시 분열의 편린으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언제 우리가 어깨를 겯고 하나가 됐느냐는 듯…. 하나 된 대한민국은 다시 흩어지고 온몸을 휘감았던 카타르시스는 고단한 삶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보여준 ‘투혼’만큼은 아끼는 LP 음반처럼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6.06.27 541호 (p14~16)

  •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 박해윤 기자 land6@donga.com / 글·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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