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5

2016.11.30

사회

또다시 보육대란 포비아

누리과정 예산 다툼 지자체로 확산, 정부는 교부금 삭감 엄포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11-29 14:01: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누리과정(만 3~5세 대상 무상교육·보육) 예산을 둘러싼 갈등이 내년에도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누리과정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과정을 하나로 통합한 무상보육 서비스로, 올해 초 일부 교육청이 각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 누리과정 예산을 지급하지 않아 심각한 보육대란을 불러왔다. 내년에도 이 같은 대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경기·강원·광주·전남 등 17개 시·도교육청 중 12곳이 2017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재정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정부 책임이라는 것. 이 가운데 경남도교육청과 부산시교육청은 별도 항목을 마련하진 않았지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일단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유치원 관련 예산에 포함해 편성해놓은 상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포함할 경우 시설사업비 전액을 편성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돼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시청이 관리·감독하는 어린이집에 교육청이 예산을 준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누리과정 예산, 특별회계로 지정?

    그러나 교육부 태도도 달라진 게 없다. 기존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 외 추가 지급은 불가하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은 경기·강원·전북 등 3개 교육청의 내년도 교부금을 삭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특별회계로 지정해 누리과정에만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해당 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경우 교육감 의사와 상관없이 각 지자체에 직접 지급하겠다는 것. 실제로 최근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계획안에는 교부금의 일부 재원을 분리해 누리과정, 방과후학교, 돌봄교실 등에 사용되는 별도 특별회계를 마련한다는 취지의 ‘지방교육정책 지원 특별회계’ 신설 계획이 함께 들어 있다. 이는 앞서 새누리당이 발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현재 누리과정 예산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예산안 심의에서 유보된 상태다. 교육부와 새누리당의 제안과 달리 야당은 시·도교육청에 지급되는 교부금을 늘리는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진보 교육감의 의견대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별도로 교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올해 일부 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이 초래됐다. 교육청에 지원되는 예산액은 기존과 같고, 각 용처가 정해져 내려간다는 것만 다르다. 내년에 또 다시 보육대란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예산안 통과 법정시한인 12월 2일 이후에는 어떤 형태로든 결정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에는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두고 교육청과 지자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동안 ‘보육대란만은 막자’는 취지로 교육청을 대신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지원금을 선지급한 지자체가 교육청을 상대로 해당 금액을 요구하고 있지만 교육청이 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비용은 보육료 22만 원(학부모가 아이사랑카드로 직접 결제)과 교사처우개선비 및 어린이집운영비 7만 원(아동 인당)을 합친 것인데, 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편성하지 않은 지역은 22만 원을 카드사에서 선지급 형태로, 나머지 7만 원은 지자체 예산으로 지급하고 있다.

    경기는 1747억 원, 전북은 188억 원, 충북은 33억2000여만 원(6개월 치)을 올해 자체 예산으로 어린이집에 선지급했다. 하지만 도교육청 3곳 모두 “도가 자체적으로 결정한 사안으로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마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어린이집에 교사처우개선비 지급을 미루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얼마 전 구청으로부터 ‘교사처우개선비를 내년 1월로 미뤄야 하니 선생님들에게 말씀 좀 잘 전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연말이 다가오니 예산이 부족해 그런 것 아니겠나. 교사처우개선비로 교사 인당 받는 금액이 30만 원인데, 구청 말대로 마냥 미룰 수 없어서 사비로 기존과 똑같이 지급할 예정이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걸 생각하면 화가 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립만 말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

    이에 교육부는 시도에서 선지급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원칙적으로 각 지자체와 교육청의 문제로 교육부가 나설 사안은 아니라고 말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당초 교육청에서 지자체로 내려 보내야 할 금액이다. 교육부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교육청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몇 년째 똑같은 갈등이 반복되면서 경영상 어려움을 토로하는 어린이집이 늘고 있다. 결국 문을 닫는 어린이집도 속출하고 있다. 해마다 아동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지원마저 불안해 이중고를 겪는 것.  

    경기지역 어린이집은 2013년 1만3364곳에서 2014년 1만3259곳, 2015년 1만2689곳, 올해 9월에는 1만2158곳으로 줄어들었다. 전북지역은 2014년 1654곳에서 올해 4월 1584곳으로 70곳이 감소했고, 경북지역은 2014년 2212곳에서 올해 9월 2100곳으로 112곳이 문을 닫았다. 대구지역도 같은 기간 1588곳에서 1484곳으로 104곳이 줄었다.

    경기 수원의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민간어린이집을 운영하기가 정말 힘들다. 누리과정 논란이 지속되면 내년에는 더 많은 어린이집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주변을 보면 한 달 한 달 근근이 버티는 어린이집이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전북어린이집연합회는 11월 17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고, 어린이집 관리·감독 권한을 교육부로 이관해 어린이집과 유치원 주무부처를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누리과정의 파탄도 최순실 씨의 영향력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대통령선거 공약인 누리과정마저 지키지 않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 정부와 교육청,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만 할 뿐 근본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보육대란 사태는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결국 아이와 학부모, 교사들이 또다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