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2

2006.02.14

한국 최초 ‘청각장애 야구선수’ 장왕근

내일은 프로…희망을 쏜다

  • 장옥경/ 자유기고가 writerjan@hanmail.net

    입력2006-02-13 0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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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 ‘청각장애 야구선수’ 장왕근
    “야야, 또 어퍼스윙이가. 야구는 골프가 아니다. 다운스윙을 해라.”

    김광일(36) 코치가 스윙 동작을 보여주며 경상도 사투리로 무섭게 질타한다. 장왕근(19) 선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그는 한국 야구 역사상 최초의 ‘청각장애 성인 야구선수’.

    1월18일 경남 진해시 공설운동장에선 시추에이션(가상경기) 훈련이 한창이었다. 장 선수가 다시 타석에 들어선다. 배트를 잡고 투수를 응시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힘껏 스윙을 해보았지만 공은 쭉쭉 뻗지 못하고 솟았다 떨어진다.

    “왕근아! 큰 것 노릴 생각 하지 말고 짧게 끊어 쳐라.”

    장 선수는 김 코치의 얘기를 듣지 못했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시추에이션 훈련은 3시30분에 끝났다. 30분가량 마무리 운동을 한 뒤 헬스장으로 이동해 6시까지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고 했다.



    국내 유일의 청각장애인 야구단 충주성심학교를 2월에 졸업하는 장 선수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국제디지털대 야구부에서 합숙훈련을 하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국제디지털대 야구부는 프로 구단이나 다른 대학에서 받아주지 않은 17명의 무명선수로 이뤄진 신생팀.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활동한 감사용(49) 씨가 지휘봉을 잡고 있다.

    장 선수와의 인터뷰는 쪽지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질문을 적어주면 장 선수가 읽고 생각을 글로 적었다. 그 글을 필자가 읽고 보충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필담이 이어졌다. 장 선수는 “초·중·고 12년 동안 애국가를 마스터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한국 최초 ‘청각장애 야구선수’ 장왕근

    김광일 코치(왼쪽)는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하면서 야구를 정상인과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승리”라고 말한다.

    장 선수는 국제디지털대 야구부에 합격하면서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바람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장애인 특례로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었지만 야구를 선택했다. 그는 “내가 갈 길은 오로지 ‘프로’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한다”고 했다.

    야구부의 훈련은 고되다. 식사 시간까지 쪼개 훈련에 할애한다. 투수들이 점심 먹을 동안 내·외야수들은 배팅 훈련을 하고, 투수들이 돌아오면 내·외야수가 밥을 먹으러 간다. 저녁식사 후에는 야간훈련이 이어진다. 숙소 앞 공원에서 오후 9시30분까지 타자들은 스윙 훈련을, 투수들은 튜닝이나 피칭 훈련을 한다.

    그러나 장 선수는 강도 높은 훈련이 싫지 않은 눈치다. “감사용 감독이 호랑이로 소문났는데 사실이냐?”고 종이에 적자, 장 선수는 웃으며 “호랑이 감독이라기보다는 착한 감독님입니다”라고 썼다. 이어 “자세가 틀리면 바로 가르쳐주는데요.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잔소리를 엄청 듣습니다”라고 적었다.

    한국 최초 ‘청각장애 야구선수’ 장왕근
    “지금 돌아보니 성심학교에서는 연습을 너무 적게 했어요. 여기서는 연습량이 엄청나고 또 집중적으로 훈련을 합니다. 가장 싫어하는 훈련은 러닝입니다. 그래도 내리막길은 괜찮은데 오르막길을 뛸 때는 정말 힘들어요.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이거 못 버티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키 182cm, 몸무게 87kg. 충주성심학교에서 4번타자로 활약한 장 선수의 몸은 탄탄했다. 그는 지난해 서울대 야구부와의 친선경기 때 홈런을 쳤을 만큼 파워도 갖추고 있다. 이렇듯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갖추었지만, 청각장애라는 치명적 약점은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가장 큰 애로는 수비. 야구선수들은 배트의 소리로 공의 비거리를 가늠한다. 그러나 장 선수는 다른 수비수가 외치는 ‘마이 볼’ 소리를 듣거나, 반대로 자신이 ‘마이 볼’을 외치며 달려갈 수 없다. 듣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보는 것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장 선수도 잘 안다. 수화 외에 대화가 어려운 자신을 받아들인 것이 팀으로서도 모험이었다는 것을. 그는 한 프로야구 구단의 2군 연습생으로 입단하기를 희망했지만 “가능성이 없다”며 거절당한 적도 있다.

    “선수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중단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진로를 놓고 고심할 때 감 감독님과 김 코치님이 불러줘 너무 고마웠습니다.”

    장 선수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면 맥락은 이해한다. 감독이나 코치는 그런 점을 감안해서 말을 하려 하지만, 장 선수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훈련을 진행할 수는 없다. 게다가 팀 구성원 대부분이 경남 출신이어서 장 선수는 대화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훈련이 시작되고 처음 한 달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성심학교 있을 때는 선수 모두가 청각장애인이라 수화로 대화하면 됐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저만 말이 안 들리잖아요.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집합!’이라고 외치는데 못 알아듣기 일쑤였어요.”

    그는 훈련이 언제 시작하는지 몰라 늦잠을 자기도 하고 동료들이 깔깔거리며 웃을 때도 왜 웃는지 몰라 가만히 있어야 했다. 처음엔 혼자 답답해 속을 끓였으나 태도를 바꿨다. 야구부 동기들이 돌봐주기를 바라지 않고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로 한 것.

    그랬더니 동기들은 훈련 중에 장 선수가 못 알아들었겠다 싶은 말이나 부족한 사항이 있으면 따로 불러 얘기를 해주었다. 포수를 맡고 있는 김두영 선수는 “처음에 힘들어하더니 요즘엔 동기들과 문자 메시지도 자주 주고받고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기본기 훈련에 열심이다. 16명의 동기들은 모두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야구를 시작했지만 그는 고등학교에 가서야 배트를 잡았다. 기초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그는 쉬는 시간에도 혼자서 훈련을 한다. 장애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 연습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두영 선수가 “왕근이에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귀띔한다. 장 선수가 부끄럽다며 묻지 말라고 하자, 김 선수가 “여자친구는 같은 성심학교 출신인데 왕근이보다 나이는 한 살 위다. 잠을 잘 자야 야구도 잘한다며 요와 이불, 베개를 보내왔는데 한 번만 덮어보자고 해도 절대 손도 못 대게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장 선수의 얼굴이 빨개진다. 이성친구 이야기에 부끄럼을 타는 대학 1학년생 장왕근. 그는 팀의 주축 선수가 되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았다.

    “1학년으로 구성된 팀이라 전력이 많이 약하지만, 2002년 월드컵 때 4강 신화를 이룩한 한국 축구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죠. 코치님이 한양대,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연세대 중 한 팀을 이기면 창원에 나이트클럽 잡아놓는다고 했어요. 나이트클럽 한번 가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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