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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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유혹, 역사를 바꾸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5-07-28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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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유혹, 역사를 바꾸다
    후세 사람들은 그녀의 성적 취향이나 화려한 생활, 코 높이만 화제로 삼는다. 바로 역사가 만든 요부 클레오파트라다. 알고 보면 그녀는 이집트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 탁월한 정치감각과 수완을 펼친 강인한 여성이었다.”

    교태가 흐르는 웃음 뒤에 음습한 계략을 숨기고 남자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위험한 여자 요부(妖婦). ‘요부, 그 이미지의 역사’는 태초의 이브, 클레오파트라, 엠마 해밀턴, 마타하리부터 21세기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요부까지 수많은 요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시대와 권력에 따라 그녀들을 향한 욕망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하고 어떤 평가를 받아왔는지 추적에 나선다.

    만일 클레오파트라가 후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면 통곡할 노릇이리라. 뛰어난 미모를 무기로 남성들의 세계에 끼어들어 희대의 영웅들을 유혹, 결국 그들을 파멸로 몰아간 간악한 여인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로마인 안토니우스가 탈선을 하려면 적어도 그녀가 훌륭한 요부이자 빼어난 기교의 여인임을 강조해야 했다. 당시 카이사르나 안토니우스는 여성 편력이 심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럼에도 성적 음탕함에 대한 업보는 클레오파트라가 몽땅 뒤집어썼다.”

    말레이어로 ‘여명의 눈동자’를 뜻하는 마타하리는 시대의 덫에 걸린 요부였다. 무희이자 파리 사교계의 고급 창부였던 마타하리는 파리 상류사회의 구성 요소였고, 간혹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에 주요 참전국 무관들이 그녀의 애인 명단에 들어 있었다. 그 시절 누군가의 정부나 고급 창부 노릇을 하던 여배우와 무희들은 전쟁이 터지고 나자 이제는 위험한 세력으로 경멸을 당하게 된다. “의혹과 음모가 판치는 전시(戰時)에 이국적인 그녀의 관능미는 배신을 입증하는 증거로 인용됐다. 아마추어 첩보원이었던 그녀는 남성 특권 구역에서 무모하게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던 성적인 여류 모험가였다.”

    여성을 보는 남성들의 시선에 따라 요부의 대상과 모습은 달라진다. 20세기 들어 대중문화를 통해 요부 이미지는 스크린으로 빠르게 바뀌어간다. 1940년대 필름 누아르에 등장하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남자를 도구로 이용하는 성적인 포식자였다. 섹스를 권력, 야망과 동일시했다. 여배우 리타 헤이워스가 주연을 맡은 ‘길다(Gilda)’에서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먹이를 집어삼키기 위해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는 파리지옥(Venes’s flytrap)이었다.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가 뉴욕의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다리를 벌린 채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모습은 뭇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 장면은 1950년대 요부, 딱 그 이미지다. 먼로는 관능미에 소녀의 천진무구함과 연약함이 절묘하게 결합된 여성이었다.

    20세기 후반 여권이 크게 신장하면서, 남성들의 위기 의식은 자신들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궁극의 악녀 이미지를 양산해냈다. 영화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에서 샤론 스톤은 잔인하면서도 두려울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요부로 등장한다.

    요부는 앞으로 어떻게 바뀔까. 그것은 전적으로 양성 간의 힘의 균형에 달려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남성들이 평등한 사회를 위한 여성들의 진보를 수용한다면 앞으로 요부는 남성과 여성의 욕망을 모두 아우르는 하나의 조화로운 환상이자, 최종적으로 누구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단히 매력적인 여인이 될 것이다.”

    제인 빌링허스트 지음/ 석기용 옮김/ 이마고 펴냄/ 304쪽/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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