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9

2005.04.05

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죽을 권리는 있을까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5-03-31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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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죽을 권리는 있을까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화려한 봄날 뜬금없는 딱딱한 이야기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다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실화가 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동아일보사 펴냄)는 프랑스 소생 전문의사 프레데릭 쇼수아와 교통사고로 소생이 불가능한 뱅상 욍베르의 만남을 다룬 이야기다. 쇼수아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의사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2000년 9월24일 소방 자원봉사자 뱅상 욍베르(당시 23세)는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되고, 시각과 언어 능력마저 상실한다. 그는 9개월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가 의식을 되찾는다. 하지만 오른쪽 엄지손가락 하나만 움직일 수 있었던 뱅상은 어머니가 불러주는 알파벳에서 자기가 원하는 글자가 나왔을 때 손가락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한다.

    의식은 뚜렷하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고 육체적,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던 뱅상은 2002년 시라크 대통령에게 죽을 권리를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그러나 안락사가 금지되어 있던 프랑스에서 그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2003년 9월24일. 아들의 고통을 보다못한 뱅상의 어머니 마리 욍베르는 아들에게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주사한다. 의사들의 재빠른 처치로 목숨은 건졌지만, 3일 뒤 병원 소생팀장 쇼수아는 뱅상의 고통에 마침표를 찍는다. 쇼수아는 실정법에 의해 살인죄로 고소된다. 그러나 프랑스는 뱅상 사건을 계기로 1년 만에 존엄사법(소극적인 안락사)을 만든다.



    우리나라도 뱅상과 쇼수아가 대면해야 했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환자실에서 더는 아무것도 해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치료를 중단하고 호흡기를 떼어내는 일종의 존엄사가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도 존엄사를 얘기하는 것 자체를 꺼려왔다. 존엄사법 제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책은 삶과 죽음에 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만일 뱅상과 같은 불행이 당신이나 당신 가족에게 닥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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