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2

2005.02.08

두 가정 합치니 즐거움도 두 배로

재혼가정의 어머니 김금희씨 … 다섯으로 늘어난 아이들, 염려 무색할 정도로 사이 좋아

  • 김금희/ 주부

    입력2005-02-03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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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가정 합치니 즐거움도 두 배로

    김금희씨 가족이 손을 맞잡고 기도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이 아이들에게 묻는다. “새아빠가 잘해줘도 친아빠가 많이 보고 싶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자기들은, 이웃에 잠시 산 사람들도 보고 싶어하면서. 우리 부부에게도 물어본다. “다섯 아이 모두 똑같이 예뻐요?” 당연히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역시나 그렇군” 하겠지만 그건 고정관념 때문이 아니다. 아이들이 제가끔 다른데,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는가.

    오늘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큰일을 치르는 사람처럼, 방학인 아이들을 재촉해 깨우고 청소를 부탁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하긴 큰일은 큰일이다. 내 살림 솜씨로 겁도 없이 시어머니 생신 상을 차려드리겠다고 했으니…. 남편은 나를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20명은 족히 넘을 식구들의 식사를 차려낼 수 있을지 영 불안해한다. 출근해서도 “장모님이 도와주신데? 아님 처제라도 부르지 그래” 하고 전화를 해온다.

    내가 올해 내 손으로 생신 상을 차려드림으로써 어머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여우같은 생각을 한 데엔 이유가 있다. 5년 전, 아이가 셋인 당신 아들이 두 아이를 둔 나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아들에 대한 믿음 하나로 그 많은 염려를 누르고 나를 믿어주셨던 어머니….

    그 후로 주변의 편견에 아랑곳없이 다섯이나 되는 며느리 가운데 누가 보아도 편애한다 싶을 만큼 나에게 각별한 사랑을 주셨고, 우리의 재혼으로 새로운 남매가 된 다섯 아이를 차별 없이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것에 대한 내 마음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어설픈 주부에게 다섯 아이는 든든한 지원군



    거기에 또 한 가지. 내가 겁도 없이 이런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다람, 총명, 다빈, 슬기 그리고 막둥이 성혁까지 다섯 명의 든든한 지원병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 방학인 아이들은 할머니 생신 상을 차리자는 계획에 대찬성했다. 6학년인 장남 총명이는 “엄마, 오전에는 약속이 있으니까 제가 최대한 빨리 와서 도와드릴게요” 하면서 내 등을 툭툭 쳐주고, 방학도 제대로 없는 고등학생인 큰딸 다람이는 “이거 모처럼 내 음식솜씨를 발휘해야겠네. 엄마, 전 부치는 건 내가 할게”라며 나선다. 아래로 다빈, 슬기, 성혁이도 오늘 아침 일찌감치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역시 언제나 그랬듯 집안일은 아이들이 나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장 보러 갈 때도 다람이가 먼저 챙긴다.“엄마 필요한 것 메모했어?”“물론, 메뉴를 다 생각해두었지.”“메뉴만 정하면 뭐해? 구체적으로 살 것을 적어 가야지.”“야, 내가 이래봬도 주부 경력 17년이다. 메뉴 정하면 재료는 저절로 그림이 그려진다니까.”“글쎄….”

    두 가정 합치니 즐거움도 두 배로

    셋째 다빈과 막내 성혁이 과일을 깎아먹고 있다.

    아이 눈에는 엄마가 주부로서 좀 어설프게 느껴지나 보다. 덕분에, 올해 열여덟 살이 된 다람이와 함께 한 장보기 시간은 오랜만에 가져본 둘만의 시간이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학교생활에 바쁘고, 엄마는 엄마대로 바쁜 데다 늘 네 명이나 되는 동생들에게 엄마를 양보해야 하는 다람이는 늘 씩씩한 독립군이어야 했다. 나름대로 꼼꼼하게 장을 본다고 했지만, 역시나 다람이의 예상이 맞았다. 막상 요리를 시작하니 왜 그렇게 빼먹은 재료들이 많은지 그때마다 민첩한 슬기가 바빠질 수밖에. 왕복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시장으로 슬기는 몇 번이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인상 한번 쓰지 않고 달려갔다.

    “슬기야 엄마 파 안 샀다.”“네에~ 한 단만 사면 되지?” 갔다 오면 미안하게도 또 빠뜨린 게 드러난다.“어머 어떻게 해. 마요네즈가 없다.” 그러면 녀석은 두말없이 인라인스케이트를 또 신는다.“엄마 큰 것 사는 게 더 싸거든요? 큰 것으로 살게요.”“으응, 그래 좋은 생각이다. 출발!” 슬기가 시장으로 달려갈 때마다 막둥이 성혁이는 “형아, 같이 가자”하면서 따라 나선다.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따라다니면서 드나들 때마다 현관의 신발을 정리한다. 오늘은 특별히 손님이 많이 와서 깨끗해야 된다며 쫑알쫑알 잔소리도 곁들인다.

    두 가정 합치니 즐거움도 두 배로

    숙제하는데 열심인 5남매.

    동갑내기 다빈이와 총명이는 양파 껍질 벗기고, 파 다듬고, 열심히 쓰레기 모아 버리고… 그러면서 계속 수다를 떤다. 엄마 아빠의 재혼으로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친구였다가 남매가 돼버린 두 아이는 주변의 염려가 무색할 만큼 당당하고 친하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많은지 늘 속닥거린다. 처음에야 왜 마음고생이 없었을까 싶지만 이렇듯 멋진 아이들로 자라주니 고마울밖에.

    온 가족 배려에 마음고생도 말끔히 씻어

    오후에, 염려를 감추지 못해 쫓아온 동생과 든든한 다섯 동지들 덕분에 그럭저럭 음식이 마무리돼갈 무렵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머니와 남편이 현관에 들어섰다. 온 집안에 가득한 음식냄새에 어머니는 염려가 앞서시나 보다.“아야. 제일 바쁜 아가 뭘 그리 해쌌냐. 되서(고단해서의 사투리) 어쩔 그나.”“아니에요. 아이들하고 해서 재미있었어요.”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달려가 인사를 건넨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아이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며 안부를 묻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 손녀가 된 지 이제 5년밖에 안 된 다람이는 할머니의 사투리에 까르르 웃는다.“할머니 전은 제가 다 했어요. 짱 맛있어요.”“그냐, 쓰것다. 잘했다.”“그렇지요? 저 쓰것지요?” 하면서 웃는다.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은 날 행복하게 하고, 조금은 지칠 수도 있는 내 어깨에 힘을 더해준다. 주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남편은 해놓은 음식 양에 은근히 놀라는 눈치다. 잠시 후, 가족이 모두 모인 식사시간은 정신이 쏙 빠지게 부산스럽기는 했어도 즐거운 잔치 분위기였다.

    “어휴, 저 상다리 휜 것 좀 봐. 아주버님, 상다리 조심하세요”라며 생색내는 내 농담에 모두들 웃어주고,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칭찬해주었다. 문제는 모두가 돌아간 다음이었다. 손도 큰 데다 음식 양을 맞추는 일에 서툴러 음식이 반 정도나 남아버린 것이다. 하루 종일 나와 한 팀이 되어주었던 아이들이 주방에서 또 한마디씩 한다.

    다람 : “밥은 이틀은 먹어야겠다.”

    총명 : “국은 사흘이면 먹어치울 수 있겠다.”

    다빈 : “엄마, 이거 우리가 다 먹어야 돼?”

    슬기 : “좀 심했다.”

    성혁 : “와~ 많다.”

    그래 내가 봐도 많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배부른 것은 많은 음식 때문만은 아님을 너희도 알겠지.

    김금희씨는?

    성(姓)이 다른 다섯 아이를 키우는 김금희씨(39)의 삶은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재혼 가정의 그것과 분명히 달랐다. 김씨와 남편은 각각 딸 둘과 아들 셋을 데리고 2000년 재혼해 인천에서 오순도순 산다. 다섯 아이들은 다람(고등학교 1년) 총명(초등학교 6년) 다빈(초등학교 6년) 슬기(초등학교 4년) 성혁(7세). 아이들은 생김새가 다른 만큼 성격도 제각각이다. 김씨는 “우리(일곱 식구)는 한 팀”이라고 했다. 다섯 아이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까르르 웃으며 서로 의지해 살아가는 터라 더없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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