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5

2016.09.14

책 읽기 만보

역사의 주인은 사람이다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9-13 14: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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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라 줍고 댄스홀 가고’(1950년대), ‘근대화와 군대화’(1960년대), ‘새마을운동과 미니스커트’(1970년대), ‘스포츠공화국과 양념통닭’(1980년대). 각 시대를 대변하는 제목부터 흥미롭다.

    격변기를 살아온 우리 부모, 삼촌, 이모· 고모 이야기여서 더 살갑다.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펴낸 ‘한국현대 생활문화사’가 눈길을 끄는 이유다.

    이 책에는 3년간의 전쟁, 4 · 19혁명과 5 · 16쿠데타, 고도경제성장, 유신체제의 압제와 민주화운동, 냉전체제 해체의 격변 속 우리의 삶이 녹아 있다. 정치적 관점에만 머물면 놓치기 쉬운 개인과 집단의 생활문화에 주목하는 한편, 한국뿐 아니라 북한 생활문화의 주요 변화상도 다루고 있어 20세기 한반도에 거주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담아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때에 따라 필요에 따라 그 이름은 국민, 농민, 노동자, 자본가, 가정주부, 학생, 회사원, 군인으로 바뀐다. 1권 1950년대 편에 등장하는 인물은 ‘전쟁미망인’이다. 3년간 전쟁을 치른 뒤 남편을 잃은 여성은 100만여 명에 이르렀고, 이산가족에 불구가 돼 돌아온 남편까지 떠맡아 사실상 가장이 된 여성도 적잖았다. 한편 50년대는 여성이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다양한 지위를 갖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여대생, 취업 여성, ‘양공주’ ‘유한마담’ 같은 새로운 유형의 여성이 등장한다(이하나의 ‘전쟁미망인 그리고 자유부인’) .

    ‘남녀노소 불문 야간통행 금지’로 기억되는 1960년대는 금지의 시대였다. ‘조국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정부는 이것도 불법, 저것도 불법이라며 국민을 죄인으로 몰고 갔고, 억눌린 자유는 시위로 분출됐다. 하지만 군부가 사회를 압도하면서 ‘조국 근대화’는 ‘조국 군대화’로 변질됐다(오제연의 ‘병영사회와 군사주의 문화’).

    ‘잘살아보세’가 울려 퍼지던 1970년대는 중동 건설 붐과 강남 개발 붐으로 온 국민이 들썩였지만 나라는 늘 ‘비상사태’였고 국민은 감시당했다. 유신체제에 불만을 표시하면 ‘빨갱이’로 몰아세웠다(허은의 ‘유신시대의 학교와 학생의 일상사’/ 황병주의 ‘새마을운동과 농촌 탈출’).



    1980년대는 컬러TV 도입으로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프로야구가 시작됐고, 사람들은 TV로 생중계되는 스포츠 경기를 보며 삼겹살을 굽고 양념통닭을 뜯었다. 하지만 컬러TV가 보여주지 않는 세상에서는 민주화의 열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역사는 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전개됐고, 그 과정에서 거듭되는 광기와 퇴행을 목도하면서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나간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기획의 말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나간다’에서).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90년대 편을 기다린다.




    도올, 시진핑을 말한다
    김용옥 지음/ 통나무/ 488쪽/ 1만8000원


    시진핑을 알면 현대 중국이 보인다. ‘도올의 중국일기’(전 5권)에서 중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한 바 있는 저자가 현재 중국 권력구조의 정점에 있는 시진핑을 중심으로 중국 현대사를 재조명했다. 특히 책의 절반 분량을 차지하는 부록 ‘시종쉰(시진핑의 아버지) · 시진핑의 삶을 통해서 본 중국현대사 연표’는 1911년 신해혁명부터 2016년까지 중국이 변화해온 과정을 총정리했다.




    나는 농담이다
    김중혁 지음/ 민음사/ 244쪽/ 1만3000원


    “관제센터 들리나?” 계기판은 먹통이고 기내 산소량은 25%. 광막한 우주에서 미아가 된 이일영은 관제센터를 향해 메시지를 보낸다. 절박한 구조요청, 가벼운 농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오가는 그의 메시지는 과연 지구에 닿을 수 있을까. 그 시각 이일영의 이부형제인 송우영은 코미디 클럽의 어두운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농담을 던진다. 그의 형은 살아 있을까




    화폐의 종말
    케네스 로고프 지음/ 최재형· 윤영미 옮김/다른세상/ 333쪽/ 1만6000원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에게 “종이화폐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시간이 됐을까”라고 묻는다면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는 종이화폐를 없애는 것이 기대 이상의 이득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마약 거래, 인신매매, 부정부패처럼 현금이 오가는 범죄를 줄일 뿐 아니라 정부는 세수 증가라는 이득을 얻는다. 또한 지폐가 폐지될 경우 탄력적이고 유동적인 금리정책을 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탄실
    김별아 지음/ 해냄/ 336쪽/ 1만3800원


    한국 최초 근대 여류작가의 이름은 김명순(1896~1951), 아명은 탄실(彈實). 딸이 열매처럼 탐스럽게 여물기를 바라며 부모가 부른 이 이름을 작가는 필명으로 즐겨 사용했고, 작품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기생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조롱받고, 성폭행 피해자임에도 방종한 여자로 취급받던 그는 당대 스캔들 메이커로 세간의 입길에 올랐다. 저자는 한국 문학사에서 사라진 한여류작가의 삶을 소설 형태로 복원했다.




    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최정수 옮김/ 부키/ 14쪽/ 8900원


    ‘페미니스트의 대모’ 보부아르가 58세에 쓴 중편소설. 교직에서 은퇴한 앙드레와 니콜 부부에게는 각자 다른 사람과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있다. 부부는 1966년 앙드레의 딸 마샤가 살고 있는 소련으로 여행을 간다. 사회주의에 이상을 품고 있던 앙드레는 실제 소련을 보고 실망하고, 니콜은 젊은 마샤를 보며 자신의 늙음을 느낀다. 실제 보부아르는 1962~66년 사르트르와 함께 수차례 소련을 방문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이 작품을 썼다.





    조나단 월드먼 지음/ 박병철 옮김/반니/ 344쪽/ 1만8000원


    자동차는 녹(rust) 때문에 1년에 3.5kg씩 가벼워진다. 미국에서 한 해 동안 녹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액은 4370억 달러(약 477조 원)로, 국내총생산의 3%에 해당한다. 금속은 현대문명을 일으킨 원동력이 됐지만 그 부산물인 녹은 문명을 위협한다. 다리를 무너뜨리고, 핵발전소의 반응기를 잠식하며, 핵폐기물 용기에 구멍을 낸다. 미국이 녹과의 정면대결을 선포했던 ‘자유의 여신상 복원사업’을 비롯해 인류가 벌여온 녹과의 전쟁.




    옆집남자가 사는 법
    이경수 지음/ 세종서적/ 288쪽/ 1만3500원


    주변으로 밀려난 중년 남자들의 새로운 행복 찾기에 필요한 것은 7가지 동사다. 쇼핑하다, 키우다, 홀로 서다, 운동하다, 추억하다, 여행하다, 소통하다. 고양이를 키우고 아내와 쇼핑을 하고 살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옛날 사진을 뒤적이고 여행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깨닫는다. 작은 일상이 행복이라는 것을. 그건 현재에 충실할 때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전의 대문
    박재희 지음/ 김영사/ 316쪽/ 1만4800원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사서(四書)’로 묶어 성리학의 기초로 삼은 것은 중국 남송시대 성리학자 주희였다. 주희는 문명의 전환기에 인본주의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고 이를 위해 ‘사서’를 철학의 기초로 삼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내 안의 우주를 깨우는 지혜를, ‘논어’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맹자’에서 내 안의 위대한 힘을 얻으며 ‘중용’에서 삶의 평형을 위한 역동적인 도전을 배우는 ‘사서’ 활용법에 대해 말한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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