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3

2004.07.15

‘오늘이’ 천신만고 끝에 부모 상봉

사계절 공존하는 원천강 함께 여행 … 친구들 소원 풀 묘책 알고는 다시 인간세상으로

  •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입력2004-07-08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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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천신만고 끝에 부모 상봉

    연꽃나무가 자기의 윗가지를 꺾어 다른 이에게 건네고 있다. \'마리 이야기\'로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한 이성강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오늘이\'의 한 장면.

    오늘이가 드디어 원천강에 다다랐다. 서천강가의 흰모래 땅과 연화못을 거쳐 청수바다를 건너, 바위산을 넘고 우물을 지나 많고 많은 깊은 산과 너른 강을 넘고 건너 부모 나라 원천강에 온 것이다.

    문지기 제지에 “무정코 무정타”

    원천강 주위에는 굽이굽이 만리장성을 쌓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문 앞에는 문지기가 파수를 보고 있었다. 오늘이가 문을 열어달라고 하니, “넌 누구냐?” 하고 묻는다. “나는 인간세상 강림들에서 온 오늘이라고 합니다.” “무슨 연고로 이곳에 왔는고?” “이곳이 나의 부모 나라라고 하여 찾아왔소.” “문을 열어줄 수 없노라.” 문지기의 거절은 너무나 냉정했다. 가련하고 가련하다. 오늘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늘이는 최후의 한 오라기의 용기마저 상실하고 눈앞이 캄캄해 성문 앞에 쓰러진다. 오호 통재라! 오늘이가 땅에 엎드려 통곡하는구나.

    수백만 리 멀고도 먼 인간세상에서 처녀 혼자 외로이 온갖 산과 온갖 물을 건너 고생 겪으며 부모 나라라고 찾아왔는데 이렇게도 박정하게 하는구나 이 문안에는 내 부모가 있으련만은 이 문 앞에 내 여기 왔건만은 매일이는 소원 성취한다더라만은 원천강의 신인들은 너무 무정코 또 무정타 빈 들에 서 홀로 울던 오늘이, 죽을 길을 찾는다. 부모는 다 보았나 내 할 일 다하였다 강림들에 가면 무엇하리 내 여기서 죽자 내 죽는 건 원통할 일 없으나 오던 길 팔자 부탁은 어찌하리 박정한 문지기야 무정한 신인들아 그리웁던 어머님아 그리웁던 아버님아

    오늘이가 이리 말하며 의식이 왔다갔다 혼절할 듯 흐느껴 우니, 돌 같은 문지기의 염통에도 눈물의 동정이 우러난다. 문지기가 부모 궁에 올라가서 이런 사실을 말하니 벌써 부모 궁에서도 알고 있었다. 오늘이의 비명 소리가 부모에게까지 흘러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문지기가 말하기를, “저의 책임으로 문을 못 열어주었습니다만은 어찌하오리까?” “오늘 벌써 다 알고 있었느니라. 어서 오늘이를 들어오게 하라.” 낙망하고 또 낙망하던 오늘이 천만 의외의 기쁜 소식이라. 꿈인가 하며 문지기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간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뜰 앞에서 노부부가 오늘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묻는구나. “처녀 혼자 몸으로 왜 이곳에 왔느냐?” “부모님을 찾아왔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던 아이냐?” “인간세상 강림들에서 저절로 솟아나 학의 새 깃 속에서 자고 놀고, 야광주를 물려주어 살았습니다.” “내 딸이 틀림없구나. 강림들에서 자라난 내 딸이 틀림없구나.” 노부부는 오늘이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늘이를 반겨주는구나.



    노부부 또 하는 말이, “너를 낳은 날, 옥황상제가 우리를 불러서 원천강을 지키라고 하니 어느 명이라고 거역할 수가 있었겠느냐? 여기 있게 되었으나 항상 네 하는 일을 다 보고 있었느니라. 학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일렀더니 이렇게 어엿한 처자가 되었구나.” 그동안 못다 한 회포를 푸느라 하루 이틀 사흘이 쏜살같이 지나갔구나. 마음을 다독이고 나서 노부부가 오늘이를 데리고 원천강 곳곳을 다니며 구경을 시켰다네.

    계절의 신, 풍요의 신

    오늘이가 만리장성이 둘러싸인 원천강의 이쪽 문도 열어보고 저쪽 문도 열어보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열어보는구나. 원천강은 춘하추동 네 시절이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이곳을 보면 봄바람이 불며 온갖 종류의 봄꽃이 만발해 있고, 저곳을 보면 푸르디 푸른 녹색 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니 가을의 단풍이 한 폭의 그림 같고, 옆은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겨울밤이 이어지는구나.

    사계절의 신은 아마도 ‘태어남’과 ‘자람’과 ‘열매 맺음’, 그리고 ‘죽음’의 네 가지 성격을 가진 신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는 ‘태어남’을 다스리는 신도 아니고 ‘죽음’을 다스리는 신도 아니다. ‘태어남’을 다스리는 신은 삼신 혹은 삼승할망이고, ‘죽음’을 다스리는 신은 대별왕과 그의 시왕들이다. 유명한 염라대왕도 시왕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사계절의 신은 정태적인 신이 아니다. 움직이는 신이다. ‘변화’의 신이다.

    어제도 내일도 없어 오늘밖에 없어 자고 나도 오늘이고 또 자고 나도 오늘이야

    그 ‘오늘’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오늘이 아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변화의 오늘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계절의 생성 자체가 ‘변화’를 상징한다. 크로노스 시대에는 늘 봄이었다. 그러나 제우스가 크로노스를 무한 지옥 타르타로스에 가두고 나서 황금의 시대는 은의 시대로 넘어간다. 시간을 만든 신은 크로노스다. 그러나 계절을 만든 신은 제우스다. 제우스는 늘 봄이던 계절을 뚝 분질러서 겨울과 여름, 날씨가 변덕스러운 가을, 짧은 봄 네 계절로 나누었다. 그로부터 대기가 메말라가는 통에 불볕더위가 계속되는가 하면, 북풍이 물을 얼리고 나뭇가지에다 고드름을 매다는 혹한이 오기도 했다고 하지 않은가? 땅에다 씨앗을 뿌리고 소를 코뚜레에 꿰어 이랑을 갈기 시작한 시점도 바로 이때다.

    계절을 만든 신은 제우스지만, 그 계절을 계절답게 만든 신은 디오니소스다.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거리를 누빌 때는 남성의 생식기와 비슷한 남근상 ‘팔로스’를 앞세우고 다녔다고 한다. 그의 별명이 바코스인데, 뜻이 ‘싹’이다. 씨앗이 땅에서 제 몸을 썩혀 싹을 내어 자라고 열매를 맺어 다시 땅에 들어 부활하는 ‘변화’의 상징이 아닌가? 디오니소스는 계절의 신이요, 곡식과 과일의 신이다. 그리고 이것으로 빚은 술의 신이다. 그 술을 마시고 부리는 광기는 열광적인 강신(降神) 상태이자, 질서에 대한 혼돈의 표현이다. 그것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부활의 의식이다. 그를 통해서 디오니소스는 썩어서 다시 생명을 탄생시키는 밀알의 신으로서 땅의 풍요를 상징하는 것이다.

    ‘오늘이’ 천신만고 끝에 부모 상봉

    오늘이가 이무기를 타고 청수바다를 건너고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 '오늘이'의 한 장면.

    원천강의 사계절을 돌아보고 나서 오늘이는 부모에게 여기까지 오게 도와준 벗들의 세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오늘이가 세 가지 부탁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이야기하는구나. 노부부가 차근차근 풀어주는구나. “장상 도령과 매일 낭자는 하늘이 맺어준 배필, 천생 배필이로구나. 그 인연을 서로 모르고 있으니 글만 읽을 수밖에. 두 사람이 부부가 되면 만년영화를 누릴 것이니라. 연화못의 연꽃나무는 윗가지의 꽃을 따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주면 다른 가지에도 꽃이 만발할 것이리라. 청수바다의 이무기는 야광주를 한 개만 물었으면 용이 될 터인데, 너무 욕심이 많아 세 개를 물었으니 용이 못 된 것이니라. 그러니 처음 본 사람에게 야광주 두 개를 주면 곧 용이 되리라.”

    오늘이가 부모님이 한 말을 새겨듣고 또다시 온 길을 돌아가려 하직 인사를 하는데, “어머님 아버님, 아름다운 원천강에서 오랫동안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세상에서 온 몸이라 인간세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 가지 부탁도 풀어드려야 하구요.” 노부부가 한편으로는 애틋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흐뭇하기 이를 데가 없다. 원천강을 떠나려는 오늘이에게 말하기를, “연화꽃과 야광주를 얻으면 누구나 신녀가 될 수 있을 것이니라.”

    세 가지 열매를 맺다

    오늘이가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간다. 깊은 산과 너른 강을 건너고 하늘의 궁녀들을 만났던 우물을 지나 바위산을 넘어간다. 매일이가 있는 별충당 정자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글을 읽던 매일이가 화들짝 반기며 오늘이를 맞는다. “그래 부모님은 만났습니까? 내 부탁은 알아보셨습니까?” “매일 낭자는 장상 도령이라는 분과 인연이 있답니다. 그분과 혼인하면 만년영화를 누린다는데….” “하지만 난 장상 도령이 누군지도, 어디에 사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장상 도령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지요.”

    그리하여 오늘이와 매일이는 며칠 밤낮을 걸어 청수바다에까지 이른다. 천년 묵은 이무기가 고개를 끄덕끄덕, 몸은 비틀비틀, 꼬리는 꿈틀꿈틀 이제나저제나 오늘이를 기다리고 있었네. 오늘이를 보자마자 이무기가 마른하늘에 벼락치듯 묻는구나. “욕심이 너무 많대요. 야광주를 하나도 아니고 세 개씩이나 갖고 있어서 용이 못 되었다고 하네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두 개를 주고 나면 바로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무기는 오늘이에게 야광주 두 개를 쥐어주고 바로 용이 되어 다섯 가지 색깔의 아롱다롱한 구름을 피어올리고 뇌성벽력을 치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오늘이와 매일이는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연화못에 이르렀네. “연꽃나무야. 윗가지의 꽃을 꺾어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주면 다른 가지에도 꽃이 활짝 핀다고 하더구나.” 그 말을 듣고는 연꽃나무가 즉시 오늘이에게 윗가지 꽃을 꺾어준다. 오늘이가 윗가지의 연꽃 한 송이를 받아 향내를 맡아본다. 아, 그런데 저 연꽃나무를 보라! 가지가지마다 고운 꽃이 피어오르는구나. 아름다운 향내를 뿜어내는구나. 오늘이와 매일이는 다시 가장 먼저 부탁을 받은 장상 도령에게 바쁜 걸음을 돌렸지. 흙바람을 맞으며 두 사람은 걷고 또 걸어 드디어 서천강가 흰모래 땅에 있는 별충당 정자에 도착하는구나. 아직까지도 여전히 글만 읽고 있던 장상 도령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한다. “하하하! 왜 언제까지 여기서 글만 읽고 있어야 하는지요.” “여기 있는 매일 낭자와 인연을 맺으시면 만년영화를 누리게 됩니다.” 장상 도령과 매일 낭자는 한눈에 서로가 천생배필임을 알아보고 그날로 바로 부부가 되어서 오래오래 잘살게 되었다는데….

    매일과 장상의 노래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 풀이는 다음으로 미룬다.

    오늘 오늘 오늘이라 달도 좋아 오늘이여 오늘 오늘 오늘이라 날도 좋아 오늘이라 매일 장상 오늘이면 성도 얼마나 가실 것이냐 오늘 날은 날이 좋아 달 중에도 상달이여 날 중에도 상날이여 오늘 오늘 오늘이라 달도 좋아 오늘이여 오늘 오늘 오늘이라 날도 좋아 오늘이라 매일 장상 오늘이면 성도 얼마나 가실 것이냐 달 중에도 상달이여 날 중에도 상날이여 매일이는 땅 사람 장삼이는 하늘 사람 매일이는 여자이고 장삼이는 남자이외다 옥황에는 흉년지고 지황에는 시절 좋아 매일이와 장삼이는 지황에 얻어먹으러 오라 날 좋은 날은 일을 하여 얻어먹되 품삯을 주면 돈 한푼씩 거슬러주고 비 온 날은 신을 삼아서 얻어먹되 품삯을 주면 돈 한푼씩 거슬러주고 얻어먹고 살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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