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7

2004.03.25

‘헌재’는 언제 어떤 판결 내릴까

재판관 9명 대한민국 앞날 큰 흐름 결정 … “신중하고 올바른 판단” 무거운 기대감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03-18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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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재’는 언제 어떤 판결 내릴까

    3월12일 국회 법사위원장인 한나라당 김기춘 의원(왼쪽 두 번째)과 민주당 함승희 의원(왼쪽)이 헌법재판소에 탄핵소추 의결안을 제출했다.

    국회가 쏘아올린 ‘대통령 탄핵’이란 핵탄두는 곧장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향했다. 3월12일 국회가 헌법 65조에 의거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재적의원 3분의 2(181표)를 훌쩍 뛰어넘는 193표로 가결하자 국민의 시선은 탄핵 심판을 담당하는 헌재로 쏠렸다. 이제 대한민국의 앞날은 헌재 재판관 9명의 손에 맡겨졌다. 5년 임기의 대통령과 4년 임기의 국회 간 극심한 대립에 대해 헌재가 어떤 판결을 내릴까.

    대다수 법조인들은 “헌재가 17년 역사에 걸맞은 신중하고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라며 두터운 신뢰를 보내고 있다.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나

    탄핵 결정에는 헌재 재판관 9명 중 7명 이상이 참석한 전원평의에서 6명 이상의 표가 필요하다. 재판 절차는 일반 재판과 비슷하나 재심이 없다는 점과 9명 재판관의 민주적 표결제도가 다르다.

    의회에서 대통령을 소추(訴追), 즉 파면을 요구하는 공소를 제기했기 때문에 김기춘 국회 법사위원장(한나라당)이 검사 역할을 맡는다. 노대통령 변호인단은 해외여행을 하다 탄핵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한 문재인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이끌며, 노대통령은 직접 재판장에 출석해 변론할 수 있다.



    윤영철 헌재 소장과 사건의 주심으로 선정된 주선회 재판관의 영향력도 별 의미가 없다. 재판관들은 국회가 제출한 소추의결서와 헌법연구관들이 수집한 자료, 그리고 전원재판부 전원평의의 심의 내용을 바탕으로 탄핵 심판을 180일 이내에 마치게 된다.

    헌재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 또는 추천자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까

    헌법은 추상적 조문으로 국가권력을 규정해놓고 있다. 이는 헌법의 개방성을 의미하기에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같은 헌법조항이라도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재판관의 판결 성향과 정치철학이 녹아 들어갈 여지를 남긴 것이다. 따라서 9명 재판관의 판결 성향과 정치색을 탐구하면 탄핵 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미 헌재 주변에서는 “9명의 재판관을 굳이 ‘정치색’으로만 분류하면 3명 정도는 친노, 3명 정도는 반노, 3명은 중립”이라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탄핵 심판은 철저하게 헌법 해석만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정치성향이 개입될 여지는 별로 없다

    또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보수세력’인 판사들의 정치성향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임지봉 건국대 교수는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것이 보수적인지 또는 그 반대인지, 종래 개념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면서 “이번 재판은 헌법의 의미를 새롭게 할 역사적 판결이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또 한 가지 중요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추천자의 영향력 정도. 헌재는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의 추천으로 구성된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추천한 재판관 3명에 대한 걱정스런 목소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윤 헌재소장은 “재판관은 임명되는 순간 자신의 추천자와 관계없이 오로지 헌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말로 우려를 불식했다. 실제 재판관 추천시 법조인으로서의 경력을 우선시할 뿐 개인의 정치적 성향까지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 요건은 제대로 갖췄나, 탄핵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지금 이 순간 헌재를 바라보는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대통령 탄핵 심판이 내려질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만 탄핵이 가능한데, 과연 노대통령의 선거개입 발언이 어느 정도의 위법 행위로 인정되느냐가 관건이다. 이미 대다수 헌법학자들은 이번 사안이 탄핵 사유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기각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우선 야당이 제시한 탄핵 이유는 △대통령의 사전 선거운동 △측근비리 △경제파탄 등이다. 그러나 대통령 책임하의 의회에서 정치적 책임을 근거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측근비리와 경제파탄은 헌재의 논의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위반했다는 선거법 9조란 무엇일까(박스 참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이미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에 대해 6대 2로 선거법 위반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선관위는 사법기관이 아니며 선관위의 결정은 처벌규정조차 없는 선언적 사항일 뿐이다. 선거에서 중립의무를 어겼다고 공무원을 파면한 전례가 없을 뿐더러 소수의견이지만 “정무직 공무원은 선거중립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의견마저 있다.



    헌법학자인 허영 명지대 교수는 “현행 법률 위반이 확실하기 때문에 야당의 탄핵소추는 합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은 “그야말로 평면적인 해석일 뿐이다”고 반박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우리당 지지 발언이 대통령 권한을 정지시킬 만한 중대한 위법성이 없음은 물론, 법 적용의 핵심인 ‘직무집행 행위’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정태욱 영남대 교수(헌법학)는 “국민이 선출하고 헌법이 그 임기를 보장한 대통령을 국회가 억지를 써서 파면한다는 것이 오히려 헌정질서 유린에 해당한다”며 탄핵 가능성을 일축했다.

    헌재 결정은 언제쯤 나올까

    현재로선 헌재의 결정 시기가 탄핵 자체보다 오히려 민감한 문제로 떠올랐다. 헌재는 신중한 검토에 빠른 결정을 천명하고 나섰지만 고민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여당과 시민단체에서 조속한 결정을 주장하고 있지만 심의에 필요한 시간을 최소 3주 이하로 줄이기는 어렵기 때문. 문제는 그 시기가 묘하게 총선과 맞물린다는 사실이다. 헌재 결정이 총선 전에 이뤄질 경우 어떤 형태로든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려운 심판은 아니지만 민감한 심판이라는 점에서 재판이 장기간 지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탄핵 심판을 맡은 이후 재판관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헌법으로 권력 대결을 심판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전문가인 그들이 이미 마음속으로 나름의 답을 마련해놓았을 것이라는 게 그들을 잘 아는 법조인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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