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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SLBM, 진짜 문제는 ‘고체연료’

지상용 전환하면 발사 징후 없어 선제타격 불가능…출처도, 개발 경로도 미스터리

北 SLBM, 진짜 문제는 ‘고체연료’

北 SLBM, 진짜 문제는 ‘고체연료’

북한이 8월 24일 새벽 5시 30분쯤 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한 ‘노동신문’이 이튿날 공개한 사진으로, 뿜어져 나온 화염의 색깔과 형태가 고체연료 미사일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 관영언론 역시 이날 실험을 통해 “대출력 고체발동기(엔진)의 시동특성을 검증했다”며 이 같은 분석을 확인했다.
[노동신문]

1992년 10월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출국장에 선 2명의 사내를 러시아 정보당국 관계자들이 막아선다. 북한 평양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려던 이들의 이름은 유리 베사로보프와 블라디미르 유사체프. 기억해둘 것은 옛 소련의 미사일 전문가였던 이들은 각각 미사일 동체 설계를 담당하던 마케예프 설계국과 엔진 설계 전문이던 이사예프 설계국 소속으로, 40여 년간 최상의 성능을 자랑해온 소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R-27(서구 명칭으로 SS-N-6)을 만들어온 핵심 인력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러시아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설계도 등 관련 데이터를 이미 북한에 넘긴 상태였다.

11개월 뒤인 1993년 9월 북한 해군은 한 일본 기업을 통해 역시 옛 소련제 폭스트롯급 잠수함과 골프-2급 잠수함 12척을 구매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이 골프-2급 잠수함이 SLBM 발사장치를 장착한 모델이었다는 것. 미사일 자체나 사격통제용 전자장비는 제거된 상태였다지만 발사관이나 사출장치, 이들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본 시스템은 모두 이때 북한으로 넘어갔으리라는 게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2009년 작성한 관련 보고서의 평가다.

1992년 1월 소련이 해체된 직후 모두가 혼돈에 빠져 있던 시기, 평양은 원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이들 모두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한다. SLBM과 이를 발사할 잠수함 하드웨어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1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들이 실제로 무슨 의미였는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확인되고 있다. R-27에 장착되던 4D10 엔진은 이제 괌까지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무수단 미사일로 거듭나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밑바탕 구실을 하고 있고, SLBM 발사기술과 잠수함 하드웨어는 8월 24일 새벽 동해 신포 앞바다에서 발사돼 500km나 날아간 북극성 1호가 만들어지는 뿌리가 됐다.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간 까닭은?

北 SLBM, 진짜 문제는 ‘고체연료’

[뉴시스]

국내외를 막론하고 8월 24일에 있었던 SLBM 시험발사가 성공했다는 데 의구심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다. 바닷속 은밀한 곳에서 움직이는 SLBM의 특성상 탐지나 추격이 어렵고, 만에 하나 핵을 장착한다면 유사시 미국의 핵 공격을 받은 후에도 살아남아 워싱턴을 상대로 ‘복수의 한 발’을 날리는 ‘제2격(Second Strike) 능력’이 평양이 품고 있는 최종 목표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번에 미사일을 쏘아 올린 2000t 내외 신포급 잠수함은 그 크기로 미뤄볼 때 장착 가능한 미사일이 단 한 발뿐이고, 정찰위성의 눈을 피해 미 본토에 접근할 수 있는 원자력추진잠수함은 오히려 핵폭탄보다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도 남아 있다. 다만 이러한 최종 목표를 향해가는 중간 단계에서 이미 건조에 착수한 것으로 판단되는 3000t급 잠수함에 4기 남짓의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SLBM을 날리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사실은 대다수 언론과 전문가가 지적하는 바 그대로다.

그러나 이번 SLBM 발사에서 확인된 가장 우려할 만한 사실은 정작 따로 있다. 바로 이 미사일이 고체연료를 사용해 일정 수준 이상의 사거리를 비행한 북한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추진체, 즉 스커드부터 노동, 무수단 미사일과 은하·광명성 계열의 우주발사체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미사일과 로켓은 케로신 같은 전통적인 액체연료를 사용했다. 유일하게 알려진 고체연료 유도미사일은 KN-02로, 사거리는 최대 120~140km라는 게 정설이었다.

액체연료 미사일과 고체연료 미사일의 결정적 차이는 조기 경보 가능 여부다. 부식이 심한 액체연료는 미사일에 충전한 뒤로는 사나흘을 넘기기 어렵다. 뒤집어 말해 발사 사나흘 전에는 반드시 기지에 들러 30~40분간 연료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동선 파악이 쉽고 사전징후가 명확한 만큼, 군사위성과 고고도정찰기로 이를 감시하는 한미연합군으로서는 충분한 대비시간이 있다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위안이었다. 한국군이 북한 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에 탐지해 조기에 격파한다는 ‘4D 작전계획’과 킬체인(Kill Chain) 개념을 공언할 수 있던 근거이기도 했다.

반면 고체연료 미사일은 이야기가 다르다. 일찌감치 연료를 채워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장착하고 나면 마음껏 이동한 뒤 언제든 발사할 수 있다. 고체연료 미사일인 KN-02가 처음 포착된 2000년대 초반, 주한미군사령부가 ‘최악의 위협’이라고 평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주한미군이 한강 이북 주요 기지를 포기하고 평택으로 주요 전력을 이전하기로 결심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KN-02의 위협이었을 정도다.



문제는 이동식발사차량, 그러나…

北 SLBM, 진짜 문제는 ‘고체연료’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과 잠수함 건조를 진행해온 신포항 인근에 새로 건설 중인 3000t급 잠수함 발진기지. 8월 22일 촬영된 위성사진으로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가 공개한 것이다. [에어버스DS/38노스]

8월 24일 SLBM은 고각사격 방식으로 500km를 날아갔고, 정상궤도였다면 1000km를 훌쩍 넘었으리라는 것이 군 당국의 판단이다. 연료를 완충하면 2500km 비행도 가능했으리라는 것. 뒤집어 말하면 이는 북한이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까지 사거리 안에 포함하는 고체연료 미사일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당장은 SLBM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미사일이 지상용으로 양산돼 이동식발사차량에 실린다면 그 위협은 스커드나 노동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발사 징후를 전혀 알 수 없는 이들 미사일이 북한 전역에 흩어져 움직이면서 한미연합군의 정찰자산을 교란할 경우 4D 작전계획이나 킬체인 같은 그간의 작전개념은 공염불이 될 개연성도 충분하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북한의 고체연료 미사일 기술이 어떤 경로로 완성됐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이다. 그간 북한의 미사일 혹은 로켓 기술은 크게 세 가지 경로로 발전해왔다는 게 정설이었다. 1960년대 중동에서 확보한 스커드 엔진이 첫 번째로, 북한은 이 액체연료 엔진을 확장해 노동 미사일을 만들어냈고, 다시 스커드와 노동을 배합해 은하·광명성 로켓을 제작했다. 두 번째로는 서두에서 설명한 것처럼 90년대 옛 소련으로부터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R-27 미사일의 4D10 엔진 설계를 확보해 무수단으로 만들었고, 무수단 엔진을 여러 개 결합하는 방식으로 ICBM KN-14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유일한 고체연료 미사일이던 KN-02였지만, 출력과 크기의 한계가 뚜렷해 이를 바탕으로 중·장거리 미사일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게 그간 로켓공학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그러나 이렇듯 ‘족보’가 명확한 이전 미사일과 달리 북한이 이번 SLBM 발사로 성공을 거둔 고체연료 미사일은 어디서 왔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다. 이 미사일과 관련해 북한이 그간 어떤 기술개발 경로를 걸어왔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3월 24일 북한 ‘노동신문’에 지상에 수평으로 고정된 고체연료 엔진이 불을 뿜는 연소실험 사진을 공개한 게 첫 번째 노출이었고, 4월 23일 사출실험에 성공해 30km를 날아간 것이 두 번째였을 따름이다. 이전까지 액체연료 미사일을 기반으로 쏘아 올리던 SLBM을 고체연료로 바꾸자마자 사출에 성공한 뒤 다시 4개월 만에 사거리 500km를 비행하는 ‘대박’을 만들어낸 셈이다.

‘북한이 보유한 미사일이 1000기가 넘는데, 요격미사일이 48기밖에 안 되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가 무슨 소용이 있나.’ 7월 이후 온 나라를 뒤흔든 ‘사드 논쟁’에서 자주 거론된 비판론 중 하나다. 이에 대한 미국 측 인사들의 설명은 간단하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면 한미연합군이 고정 발사대를 조기에 격파할 것이므로, 북한이 날릴 수 있는 미사일의 총 수량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사전 위치 파악에 실패한 이동식발사차량 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계산이 그것이다. 지하 기지에 아무리 미사일이 쌓여 있어봐야 발사대 없이는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뿐

현재 알려진 북한의 이동식발사차량 수량은 200대 안팎. 2013년 5월 미국 국방부가 의회 보고용으로 작성한 북한 군사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KN-02부터 스커드 사거리연장형(SCUD-ER)에 이르기까지 단거리 미사일 발사차량이 100대 미만, 노동과 무수단 발사차량이 각각 50대 미만이다. KN-14 등 ICBM은 이제까지 열병식에서 공개된 10대 미만이 전부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들 200대 발사차량의 위치를 사전에 추적해놓는 것이 ‘한반도 미사일 전쟁’의 관건이고, 위치 추적에 실패해 날아오는 미사일만을 PAC(패트리엇 개량형)-3와 사드 체계로 요격하면 된다는 게 그 대체적인 윤곽이었다.

그러나 8월 24일 SLBM의 발사 성공은 이러한 그간의 계산을 뿌리부터 흔든다. 앞서 설명한 대로 북한의 주요 전력이 고체연료 미사일로 대체된다면 이동식발사차량 위치를 사전에 파악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지고, 유사시 휴전선을 넘어 날아들 미사일의 수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정상궤도와 고각사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북측의 운용능력은 요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대부분 한 방향만을 주시할 수 있는 요격 레이더의 특성상, 동해로든 제주 앞바다로든 언제라도 날아들 수 있는 SLBM을 막아낼 방법은 더더욱 묘연하다.

2016년 평양은 그간 지하 기지 깊숙한 곳에 감춰뒀던 비장의 카드를 하나 둘씩 꺼내 들었다. R-27 설계를 확보한 후에도 20여 년간 한 번도 날리지 않던 무수단을 발사해 성공했고, 이를 기반으로 만든 미 본토 타격용 ICBM의 주요 구성물을 차례차례 공개했다. 어디서 왔는지 짐작조차 어려운 고체연료 미사일을 SLBM으로 만들어 수백km까지 날려 보냈다.

그간 우리는 북한이 전력을 다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 중이고, 그 성능을 최대한 과장해 우리를 위협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반복되는 ‘워싱턴 불바다’와 ‘조미(朝美) 핵 균형’은 허장성세일 뿐이라고 웃어넘겼다. 그러나 꼼꼼히 복기해보면 평양은 이미 오래전 관련 기술을 궤도 위에 올려놓은 상태였다. 다만 이를 온 세상에 드러낼 시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 단번에 핵보유국 위치를 차지할 최적의 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남는 염려는 하나다. 과연 이것으로 끝일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카드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주간동아 2016.08.31 1053호 (p19~21)

  • 황일도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 연구위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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