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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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0살 인간 쉬맹이를 징치하다

소별왕, 이승과 저승 질서 바로잡기 위해 결단 … 인간·신 경계 긋고 신들의 시대 ‘활짝’

  •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입력2004-02-19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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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00살 인간 쉬맹이를 징치하다

    소별왕은 후춧가루를 불어 물고기, 새의 혀를 친친 감아 잘라서 말 못하게 만들고, 사람은 저울에 달아 백근이 되면 인간으로, 백근에 미치지 못하면 귀신으로 구분해 인간 세상을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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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 노랫말을 통해서 우리 신화가 하늘과 땅의 우주 공간과 이승과 저승이라는 삶과 죽음의 시·공간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옥황과 인간 세상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을 떼어내어 세상을 창조한 이는 여신 마고였다. 여신 마고는 태초의 혼돈을 끝내고 세상을 열었다. 하늘과 땅의 우주 공간을 연 것이다. 신화 세계에서 여신 마고를 제치고 그 하늘과 땅을 차지한 이는 천지왕과 총명왕총명부인이다.

    그때는 “요 하늘엔 낮에는 햇볕이 둘이 뜨고 밤에는 달빛이 둘이 뜰 때, 낮에는 만민 백성 잦아(몹시 더워 말라) 죽고 밤에는 만민 백성 곳아(얼어서 꼿꼿하게 굳어) 시려(추위에 떨어) 죽을” 천지혼합과 개벽의 시절이었다.

    하늘에 해가 둘, 달이 둘이던 시절은 우리 신화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마디는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우선 몽고와 퉁구스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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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발까마귀’, 즉 삼족오(三足烏)가 원래 해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는 중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신화에서 모두 다 같다. 활을 쏘아서 떨어뜨린다는 점도 같다.

    해와 달이 각각 둘이라는 천지개벽시대의 이야기는 상고대를 살았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단순한 상상력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천전리 바위그림에서 ‘외계충격시대’의 신화를 보았다. ‘외계충격시대’에는 작은 떠돌이별과 꼬리별, 그리고 그 잔해가 지구 대기권으로 돌입하여 충돌을 일으키고 우주 먼지가 대량으로 들어와서 지구 대재난이 계속되었다. 하늘에는 어마어마한 불덩어리가 폭발하고 지진이 나고 큰 홍수가 지고 몇몇 문명들이 파괴되어 사라졌다. 우리 상고대 신화의 천지개벽시대는 바로 ‘외계충격시대’의 지구 대재난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천지개벽은 여러 번에 걸쳐서 일어났다. 하늘땅은 늘 다시 열렸다. 하늘에 해가 둘, 달이 둘이던 시절도 있었고, 10개의 해 가운데 9개가 떨어지기도 한 시절도 있었다. 떨어지는 해는 물론 꼬리별이나 작은 떠돌이별이었을 것이다. 낮에 떨어지는 꼬리별은 해라고 불렀고, 밤에 떨어지는 작은 떠돌이별은 달이라 불렀다.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그렸던 바위그림의 신화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해와 달이 그냥 떨어질 리 만무하니까, 하늘의 신이나 영웅이 화살로 쏘아 떨어뜨렸다고 믿었던 시대. 천지개벽은 한꺼번에 일어나서 끝났던 게 아니다. 외계충격은 BC 3600년부터 AD 600년까지 한 번에 수백년씩 수차례에 걸쳐서 계속되었던 대재난이었다. 해가 66개, 달이 77개 있었던 시절도 분명 존재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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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와 달이 떨어지던 시절, 곳아 죽고 잦아 죽던 시절에 사람과 짐승과 귀신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었으랴. 사람이 짐승과 귀신과 구별 없이 함께 섞여 살던 이 천지개벽시대를 끝낸 이는 천지왕이 아니다. 천지왕이 총명왕총명부인과 결연하여 얻은 소별왕 대별왕이었던 것이다.

    소별왕은 대별왕과 힘을 합해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 떨어뜨리고 나서 형을 저승에 보내고 자신은 이승으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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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별왕이 백 근을 달아서 인간을 추려냄으로써 귀신과 생인을 가른다. 백 근이라…. 60kg이다. 백 근이 넘는 사람들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어도 좋다. 당시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시라. 아마도 괴물 취급을 당했을 수도 있으니까…. 인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근수로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신화는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원시적인 사유이자 상징적인 사유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인간과 귀신을 구별할 수 있을까?

    이때의 무게라는 것은 다름아닌 ‘실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인간의 진정한 실체가 아니다.

    생인과 귀신을 이승과 저승으로 나눈 다음 소별왕은 인간의 말을 바로잡는다.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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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짐승, 인간과 귀신 사이에 커뮤니케이션 ‘장벽’을 설치하여 서로 말을 못하도록 한다. 나무, 돌, 푸싶새들, 까마귀 등 모든 짐승이 인간의 말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귀신과 생인 사이에 말이 통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이승 저승을 가르고 생인 귀신을 나누는 데 성공할 뿐만 아니라 생인이 인간으로 환생하고 번성하도록 인간 세상을 새로이 만든 것이다.

    3800살 인간 쉬맹이를 징치하다

    소별왕의 아버지인 하늘땅신 천지왕.

    그러나 이것으로써 이승과 저승이 나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저승에 가지 않고 영원토록 살겠다고 하면 어찌할 것인가? 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터.

    이승과 저승을 나눈다는 것은 곧 인간에게 삶과 죽음을 준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나고 늙고 죽는 존재의 시작과 끝을 정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시간의 시작이자 운행이며, 하늘과 땅이라는 우주 공간으로 확장되는 시·공간의 새로운 질서다.

    인간 생명의 시작과 끝은 곧 수명이다. 인간에게 생명을 준다는 뜻은 수명을 주는 것이다. 유한한 존재, 시간에 얽매인 존재로서의 인간인 것이다. 영생을 주는 것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천지왕과 소별왕은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그것은 곧 쉬맹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원토록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 덩어리, 그것이 쉬맹이의 캐릭터다.

    쉬맹이는 수명장자(壽命長子)다. ‘수명(壽命)이’에서 쉬맹이 또는 쇠맹이로 변한 것이다. 물론 수명장자로도 부른다. 쉬맹이는 3800년을 살았다고 한다. 쉬맹이는 영원히 살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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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한 대, 30년 정도를 사는데 두 대를 살았으니 너무 살았다고? 이 노랫말로 미루어봐서 옛날에는 인간의 수명이 30세 정도였나 보다. 근대에 들어와서야 평균 수명이 45.5세가 되었으니, 상고대에 60세까지 살았다면 대단히 오래 산 것이다. 하물며 3800년을 산 쉬맹이야 말할 것도 없다.

    쉬맹이는 ‘최초로 신에게 도전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무엇으로? 수명으로. 3800년을 산 쉬맹이는 이승과 저승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간임이 분명했다. 천지왕에게 들으란 듯이 “이 세상에 나를 당할 자 누가 있으랴?”라며 호언장담을 하는 쉬맹이를 그냥 두고서는 이승과 저승을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렷다.

    천지왕이 쉬맹이를 징치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쉬맹이가 아버지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든지 고리대로 민중을 착취했다든지 하는 것은 명분에 불과하다.

    천지왕은 쉬맹이를 징치하는 데 실패한다. 그것은 이승과 저승을 나누고 귀신과 생인을 갈라서 인간 세상을 창조한 소별왕의 몫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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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별왕은 쉬맹이를 징치함으로써 인간의 수명을 한 대(30세)로 정했다. 오늘날 인간의 수명은 한 대에서 두 대로, 다시 세 대로 늘어났지만 쉬맹이처럼 ‘천 년을 사는 인간’은 땅 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쉬맹이는 옛날에 천년을 사는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다. 인간의 수명과 존재를 이야기하는 신화의 상징인 것이다.

    자! 다시 돌이켜보자. 소별왕은 이승 차지 경쟁에서 형 대별왕의 꽃 피우는 능력을 훔쳐냈다. 우리는 그 꽃 피우는 능력이 생명 능력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더욱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그래서 곧 스러질 운명이기도 하지만, 꽃은 그 생식작용으로 자신을 이어나가는 ‘생명’을 상징한다.

    소별왕이 꽃 피우는 능력을 훔쳤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소별왕은 인간에게 생명을 줌으로써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인간 세상을 새롭게 창조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꽃 피우는 능력을 속임수로 훔친 탓에 그 인간 세상에는 도적이 들끓고 서로 다투는 자가 많고 나쁜 일이 많이 생기게 되었으니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가 없다. ‘좋은 일에는 흔히 탈이 끼어들기 쉽다’고 하더라니!

    이제 인간의 시간이 새로 흐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태어남과 삶과 죽음의 시간이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인간의 시대가 오지 않았다.

    인간에게 수명을 주고 이승과 저승으로 나누었다는 것은 또한 인간과 신들의 경계를 그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한한 존재로서 생명을 갖게 된 인간은 이제 신들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게 되었다. 소별왕은 쉬맹이를 징치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의 권위를 세웠다.

    이제 천지왕의 천지개벽시대의 혼합과 혼란은 끝났다. 바야흐로 신들의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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