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2

2004.02.19

철창에 갇힌 권력 “아~ 옛날이여”

서울구치소 불법자금 연루 정치인들로 북적 … 의욕 잃고 건강 잃고 한숨과 눈물로 하루하루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2-12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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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창에 갇힌 권력 “아~ 옛날이여”
    굿모닝시티 윤창열 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정대철 의원의 ‘옥살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의왕구치소의 ‘범털(거물급 인사들)’인 그는 처음 이곳을 찾은 사람들보다 적응 속도가 빠르다. 그는 구치소가 제공하는 음식을 다 비우고, 면회 오는 사람들에게 ‘나라와 당’에 대한 걱정을 곧잘 한다. 그는 스스럼없이 교도관들을 대한다. 따르는 교도관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 1월 중순, 교도관들과 대화를 나누던 정의원은 교도행정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다. 그는 곧바로 비서진들에게 “교도행정 개선을 위한 방안을 연구해보라”고 지시해 ‘교도행정 법안 발의설’을 낳았다. 정의원을 만나고 온 동료의원들은 “구치소에서도 왕성한 의정활동을 한다”고 치켜세운다. 정의원의 일상은 여의도에 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게 그를 만난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수감된 의원과 면회 온 의원들로 ‘작은 국회’ 방불

    경기 의왕시 포일동 산 18의 1번지 서울구치소. 이곳을 ‘제2의 국회’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13명의 현역의원이 지난해 연말부터 하나 둘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적지 않은 전직 범털들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면회하러 오는 동료의원들의 수가 하루 평균 10여명에서 20여명. 이 때문에 서울구치소는 하루 종일 ‘금배지’들로 붐비고, 그들이 엮는 ‘의왕별곡’은 다양한 리듬과 형상으로 표출된다.

    이 가운데 정의원이 쓰는 의왕별곡이 가장 감각적이고 인상적이다. 정의원은 2월5일, 형이 확정된 사형수 27명 모두에게 영치금 5만원씩을 넣어주었다. 사형제도 폐지를 주창했던 평소 소신의 실천이라고 측근들은 전했다. 그런 그도 주체 못할 분노에 평상심을 잃을 때가 있다. 측근으로 활동했던 민주당 민영삼 부대변인은 “서청원, 김영일, 이상수 의원 등 대선 당시 여야 지도부 인사들이 하나 둘 구속되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찾아온 지인의 손을 붙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철창에 갇힌 권력 “아~ 옛날이여”

    서울구치소 전경.

    민주당 권노갑 전 고문이 쓰는 의왕별곡은 슬픈 발라드풍이다. 권 전 고문은 2월8일(음력 1월18일) 1.2평 독거방에서 75번째 생일을 맞았다. 하필 일요일이라 면회객도 없었다.



    다섯 번째 옥살이에 나선 권 전 고문은 모두 15가지의 병을 앓고 있다. 당뇨, 혈압, 불면증, 녹내장, 고지혈증, 화병, 불면증, 우울증, 뇌경색 등. 그래서 그는 움직이는 ‘병동’으로 통한다.(인터뷰 기사 참조) 그 가운데 측근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게 결벽증이다. 엽기에 가까운 권 전 고문의 결벽증을 증명하는 일화 한 토막. 1987년 대선 때의 일이다. 지방유세에 나섰던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충청도 어느 시골 유세를 마치고 유권자들과 식사를 하던 중 상추쌈을 싸 노인들에게 돌렸다. 옆에 있던 권 전 고문도 얼떨결에 이를 받아 입에 넣었다. 이후 권 전 고문은 3일 동안 구토를 했다고 한다. 이런 결벽증은 지금도 여전하다.

    결벽증 있는 권노갑 전 고문 구치소 식사 고역

    권 전 고문은 지금도 구치소 밥을 먹는 데 서툴다. 어쩔 수 없이 먹을 때는 밥을 물에 ‘씻어’ 먹는다. 집에서 덮고 자던 침구가 아니면 잠도 자지 않는다. 부인이 “제발 그러지 말라. 그러다 죽는다”고 만류하지만 “난들 하고 싶어 하느냐”고 항변한다. 권 전 고문 앞에서 측근들이 쉬쉬하는 이름이 있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다. 이름만 들어도 권 전 고문의 혈압이 수직상승하기 때문이다. 결벽증의 한 단면이다.

    의왕은 ‘버려야’ 갈 수 있고, 그래야 생존할 수 있는 곳이다. 권력을 버려야 하고, 특권을 포기해야 한다. 버림과 단절, 포기에 서툴면 의왕은 ‘지옥 다음으로 처참한 곳’으로 다가온다. 버릴 줄 모르고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잃는 것은 건강이다.

    철창에 갇힌 권력 “아~ 옛날이여”

    서울구치소 재소자들.

    1941년생인 박주천 의원(한나라당)은 정신적으로 넉넉하게 세상을 산 정치인이다. 박의원은 검찰이 제시한 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웠다. 감옥 속 현실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환경.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억울함은 분노로 이어졌고, 평소 좋지 않던 혈압과 관절에 동시다발적으로 이상신호가 왔다. 선거 뒤 관절 수술을 하겠다며 미뤘던 게 후회막급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세속으로 통하는 질긴 끈을 부여잡고 “정치검찰의 폭력에 희생양이 된 것”이라며 항변했던 박주선 의원(민주당)은 그 대가로 변비와 얼굴이 붓는 증세에 시달렸다.

    자살한 안상영 부산시장이 서울구치소의 최대 화제로 떠올랐던 2월 초, 서울구치소 ‘사랑방(특별면회대기실)’에서 야당 중진의원의 수발을 들던 A비서관은 면회 때마다 신세를 한탄하던 의원의 하소연이 떠올라 의원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보다 면회를 자주 가시라”는 비서의 말에 의원 부인은 안시장이 당연히 떠올랐을 것이다. “약 없이 잘 수 없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는 안시장의 일기 내용은 의원들이 수시로 호소하는 증상. ‘안상영 임팩트’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게 A비서관의 전언이다.

    부와 권력, 명예를 하루아침에 잃고 1평 남짓한 독방에 감금되면 누구라도 반은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수감생활보다 이들이 더 힘들어하는 것은 비리인사로 낙인 찍혀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는 일이다.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은 1심 재판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이 선고된 게 결정적이었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그는 이후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30여년 전 왼쪽 눈을 실명해 의안을 끼고 있는 그는 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다른 눈에 녹내장을 불러왔다는 것. 녹내장으로 실명 상태를 맞은 최규선씨도 기약 없는 옥살이에 대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 구속됐던 김방림 의원은 6개월 옥살이로 몸무게가 16kg이나 빠졌다.

    외부적 충격과 몸의 이상은 비례한다. “더 이상 살길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검찰에 출두했던 한 중진의원의 측근 L씨는 2월 초 황당한 경험을 했다. ‘천장이 자꾸 내려앉고 사방의 벽이 좁혀 들어오는’ 면벽증을 호소하던 의원이 갑자기 시간을 물으며 “국회는 몇 시에 열리느냐”고 물어온 것. 야당의 또 다른 중진의원의 부인은 강릉에 사는 역술가로부터 “남편의 정치 운이 꺼져가는 촛불”이란 운세를 듣고 자리에 몸져눕기도 했다.

    최근 치료차 일시 석방된 권 전 고문도 권력무상을 뼈저리게 느꼈다. 1997년 한보사건으로 구속됐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줄을 섰던 면회객들을 이번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 측근은 “그때 병원비를 내겠다는 사람이 20명이 넘었지만 이번 병원비(500만원)는 사모님이 직접 냈다”며 달라진 세태를 설명했다.

    억울함과 분노로 한동안 가슴앓이를 했던 박주천 의원은 “이렇게 하면 무너지겠구나”라는 위기감에 목민심서와 손자병법을 집어들었다. 수시로 면회를 오는 부인(디자이너 이신우씨)의 조언을 받아들여 박의원은 요즘 좁은 독거방에서 팔굽혀펴기를 한다. 쪼그려 뛰기도 또래보다 훨씬 많이 할 자신이 있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하는 1시간 운동시간도 빼놓지 않고 건강 챙기기에 투자한다. 의왕별곡의 주역이 된 지 2개월째인 박의원은 이제 TV나 신문에 나오는 자신에 대한 보도를 담담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심적인 위기관리 시스템이 구축됐다고 자평한다.

    김영일 의원(한나라당)의 하루 일과는 108배로 시작한다. 하루도 쉬지 않는 이 ‘의식’을 통해 김의원은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 측근 K씨는 면회 후 “도사가 다 된 것 같다”며 “구치소에 가기 전에는 지옥 같다고 말했는데 들어가니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고 전했다.

    철창에 갇힌 권력 “아~ 옛날이여”

    서울 구치소 주차장을 가득 메운 고급 차량들.

    한나라당은 법률지원단을 구성, 김의원에 대한 각별한 예우에 나섰다. 그가 대선자금의 비밀을 안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잊혀져가는 인사들도 있다. 설 연휴 전 한나라당 법률지원단 소속 박원홍 의원은 최돈웅 의원 면회에 나섰다가 깜짝 놀랐다. 20여명으로 구성된 면회조 인사들 가운데 자신만 구치소를 찾았기 때문이다. 신부 출신인 이재정 의원(열린우리당)은 “왜 정치에 발을 넣었나”라는 자괴감으로 의왕별곡을 쓰고 있다.

    범털들의 의왕별곡은 사실 별 것 아닌 경우가 더 많다. 1월9일 선물투자와 옛 계열사 부당지원 등에 1조원대에 달하는 회사 돈을 사용한 혐의로 구속 수감된 손길승 SK그룹 회장의 하루는 오전 6시에 시작된다. 1조원대의 불법자금을 주무른 재벌회장이지만, 지금은 담요를 개고 방 청소를 하는 게 주요 일과다. 세수와 화장실 청소 등을 다 해도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SK그룹측이 서울구치소 인근 사무실을 임대해 2∼3명의 직원을 상주시키며 수발을 들고 있지만 손회장의 하루 일과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정치자금 가운데 반은 먹는 데 들어간다”고 했다. 그만큼 정치권의 음식문화는 화려하고 풍성하다. 그런 문화에 젖어 살던 범털들의 의왕 식단은 차마 말로 옮기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다. 재소자들에게 제공되는 밥상은 1식 3찬이 기본. 범털들도 예외는 없다. 부의 상징으로 평가되던 사식은 없어졌다. 대신 영치금으로 고추장, 된장, 김, 훈제 닭 등을 사 먹는다. 대식가인 정대철 의원은 1식 3찬을 모두 비우며 ‘범털’다운 면모를 보인다. 김치를 좋아하는 그는 영치금 상당액을 김치 값으로 지불한다.

    신경식(한나라당), 이훈평(민주당) 의원도 “교도소 밥도 맛있다”는 낙관론 그룹의 일원이다. 김영일 의원은 “밥은 마음으로 먹는 것”이라며 측근들의 영치금 제공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입이 짧은 사람은 식사시간이 고역이다. 권 전 고문이 대표적으로 구치소 반찬을 입에 대지 못한다. 대신 김 된장 고추장 등 팩에 담긴 ‘깨끗한’ 반찬을 애용한다. 지난 연초 구속된 K의원의 경우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지금까지 변비로 고생하고 있다. 당뇨 등이 있는 경우 죽이 지급되기도 한다.

    구치소가 바깥사회와 다른 점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점이다. 한화그룹에서 1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2월9일 국회에서 석방결의안이 통과돼 풀려난 서청원 의원(한나라당)의 경우 이런 제한 때문에 낭패를 겪었다.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골초. 수감 첫날,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과 분노에 휩싸여 있었지만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대표적인 ‘체인스모커’인 정대철 의원도 비슷한 고통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특히 술을 즐겨온 그로서는 이중고통에 직면한 셈이다.

    이들이 세상과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면회다. 범털들의 바깥세상은 비서진들에 의해 열린다. 구치소 내에는 사랑방으로 불리는 ‘특별면회대기실’이 있다. 이곳에는 수감된 의원들의 면회업무 등을 지원하기 위해 비서관들이 상주하다시피 한다. (상자기사 참조) 한 중진의원의 측근은 “아침에 이곳으로 출근, 이곳에서 퇴근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다른 정치인 등 특별면회를 청하는 사람들이 찾을 경우 서무과 등을 다니며 수속을 밟는다. 범털들은 구치소 면회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의왕구치소에 있는 특별면회실은 총 5개.

    이 가운데 하나는 안상영 자살과 관련 법무부·국회조사단 등이 상주, 4개의 면회실만 가동된다. 40여명이 넘는 범털들이 4개의 면회실을 놓고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배경이다. 범털 세계의 대부 권 전 고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1시30분이면 보안과 2층에 마련된 특별면회실에 얼굴을 들이민다. 이 시간대는 구치소측이 비공식적으로 인정한 권 전 고문의 면회시간. 그 뒤를 이어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2시를 강력하게 요구해 범털들의 양해를 얻었다. 이들은 하루 1회 일반면회와 특별면회가 가능하다. 일부 의원의 경우 검찰에 소환돼 보강조사를 받을 때가 많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청사에서 면회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집사변호사들의 도움을 받는 인사들의 경우 특별면회 외에 변호사 접견실에서 따뜻한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한 의원은 ‘집사변호사 역할을 잘한다’는 모 로펌에 변론을 의뢰해 ‘속이 보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면회실은 단절된 바깥세상을 열어주는 창이기도 하지만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특별면회실을 찾던 박지원 전 비서실장은 지난해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면회실 앞에서 조우,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배석한 교도관의 제지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는 후문이다. 권 전 고문을 만난 이훈평 의원은 “아이고, 형님…”이라며 면회실을 울음바다로 만들었고,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서청원 의원은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김영일 의원과 ‘면회실 고당(고위당직자회의)’을 열 기회를 맞기도 했다. 이상수 의원을 만난 정대철 의원은 “아무 말 말자”며 돌아섰지만 끝내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쩌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권 전 고문은 다른 뜻(?)을 가진 이훈평 의원에게 “책이나 보라”며 자신이 읽던 대망·삼국지를 전달, 입장이 바뀐 상태에서도 동교동 보스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구치소라고 돈이 필요없다고 판단하면 잘못이다. 감옥도 돈의 위력은바깥세계와 다르지 않다. 신문을 보는 데도 돈이 필요하고, 반찬과 속내의·이불을 살 때도 돈이 들어간다. 범털들의 경우 한 달 50만~100만원 정도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때로 돈은 특권을 사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40여명의 범털들이 쓰는 의왕별곡은 지금도 쉼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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