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9

2004.01.22

여섯 고개 넘어 ‘유권자 만나기’

총선까지 곳곳 돌발변수로 안개 정국 … 급변하는 선거판 환경 적응에 몸부림칠 판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1-15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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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고개 넘어 ‘유권자 만나기’

    지난해 12월30일 한나라당 의총에 참석한 의원들이 최근 불거진 의원 등급분류 문제를 놓고 토의하던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나라당 김문수 대외인사영입위원장은 “불출마를 선언하는 현역의원과 원외위원장이 최소 5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당무감사 및 여론조사 등을 통해 확인한 유권자들의 현역의원 교체지수는 50%대. 유권자 2명 가운데 1명이 “우리 지역 현역의원을 교체해달라”는 물갈이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최근 아름다운 용퇴 대열에 이름을 올린 한나라당 J, P의원 등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읽은 사람들. P의원은 “불법 대선자금 뉴스를 함께 보다가 아들과 눈이 마주친 후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야박한 물갈이 흐름에 저항하는 인사들도 물론 있다. 영남권의 K의원은 1월초, 불출마 선언자로 언론에 소개되자 “나도 모르는 불출마 입장을 누가 밝혔느냐”며 당내 특정세력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K씨는 “그래 봐야 결국 공천장은 다른 사람이 쥘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당무감사와 여론조사를 보면 그는 절대 공천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당 중진들의 불출마를 유도하기 위한 ‘정교한’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당무감사 및 여론조사 결과를 당사자에게 통보하면서 “지금이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적기다. 이 기회를 놓치면 쫓겨나는 모습이 될 것”이라는 분위기를 형성, 불출마 결단을 유도한다는 것. 당무감사 자료 유출이 이 프로그램의 1막1장으로 알려졌다.

    물갈이의 앞과 뒤

    17대 총선, 신호탄이 울렸다. 이번 총선의 최대 화두는 물갈이. 물갈이 성공 여부가 각 당의 총선 경쟁력을 결정할 만큼 민감한 문제로 떠올랐다. 총선을 노리는 후보들은 우선 물갈이의 벽을 넘어야 한다. 한국일보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현역의원을 찍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57.2%로 나왔다. 1월12일 현재 불출마선언을 한 여야 현역의원들은 20명을 넘어섰다. 그 가운데 한나라당 인사들의 불출마선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출마 행렬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물갈이 지수도 높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호남과 수도권 중진들이 타깃이다. 추미애 상임중앙위원 등 소장개혁파들이 주장하는 호남 물갈이론이 탄력을 받아 원군을 늘려가고 있다. “한화갑 김홍일 의원 등을 전국구로 보내자”는 주장은 호남 물갈이를 실현하려는 소장파의 아이디어. 호남 물갈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동교동 캠프에서도 목소리가 높다. 대거 출사표를 던진 DJ 비서진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는 호남 중진들의 물갈이를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도 비리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정대철·천용택·송영진 의원 등에 대해 불출마 압력을 전달했고, 이 가운데 설송웅·송영진 의원이 불출마 입장을 공식화했다. ‘4·15’ 총선을 노리는 출마 후보들이 물갈이 벽을 넘었다고 가시밭길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선거구도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각처에 널려 있다. 어느 때 어떤 돌발 변수가 총선 흐름을 뒤집어놓을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 가운데 활화산 같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여야 모두를 위협한다.

    대선자금과 ‘출구’



    여섯 고개 넘어 ‘유권자 만나기’

    2003년 10월25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원기 열린우리당 창당주비위원장과 회동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위). 1월11일 열린 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춤을 함께 추며 축제 한마당을 벌이고 있다.

    1월1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전격 출국했다. 그의 출국은 미스터리투성이다. 지난 연말 여야 대선 캠프에 불법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그의 턱밑을 파고들었다. 그러다가 출금 조치 하루 전 검찰 뒤통수를 치며 도피성 외유에 올랐다. 김회장의 출국 직후 정치권, 특히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김회장 출국 뒤에 여야 정치권의 담합 행위가 있었다”는 묘한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의 진원지는 지난해 12월20일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 수사를 눈치챈 김회장측은 지난 대선 때 형성했던 여야 ‘채널들’과 비밀리에 회동, 대책을 강구했다고 한다. 전격 출국 아이디어는 이 과정에 등장한 해법이라는 것. 소문대로라면 여야 정치권이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김회장의 출국을 방조한 셈이다. 정치권은 그동안 검찰의 편파수사를 극렬하게 비난했지만 김회장의 도피성 출국에 대해서는 짤막한 논평이 전부였다.

    대선자금은 양날의 칼이다. 한나라당도 위험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선 곳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양날을 가진 이 칼의 향배는 오로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안대희 부장만이 짐작한다.

    검찰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모금된 대선자금의 ‘출구’. 불법모금된 대선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느냐 하는 용도에 관한 문제다. 검찰은 일부 자금에 대해 계좌추적 등을 통해 치밀한 출구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안중수부장이 말한 미국에 빌딩을 산 정치인, 대선자금을 생활비로 전용한 정치인 등 검찰 주변에 떠도는 ‘출구’의 성격은 대부분 부도덕하거나 파렴치하다. 이런 사실이 공개되면 여야 정치권은 또 한번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노대통령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대통령은 새해 벽두부터 측근비리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 노대통령은 이미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을 경우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친 상태다.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과의 관계가 이미 의혹의 핵으로 떠올라 있는 것도 노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이다. 당초 문회장의 자금 지원과 관련해 노대통령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검찰은 썬앤문그룹 김성래 전 부회장을 통해 “노대통령이 직접 돈을 요구하고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놓고 있다. ‘이원호 게이트’도 또 다른 화약고다. 활동을 시작한 김진흥 특검팀은 최근 노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생인 J씨, 그리고 이원호씨의 3각관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부산 386그룹의 대표주자인 J씨는 1월8일 청와대 핵심 인사인 L씨로부터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 의원과 오차범위(32.5~28.8%)에서 접전 중”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통보받았다. L씨는 “당신 지역이 부산에서 가장 가능성 있다. 우리도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를 듣고 큰 힘을 얻었다. L씨는 J씨에게 대외비에 해당하는 1월부터 총선 때까지의 여권 내 정치 ‘스케줄’을 보너스로 챙겨 주기도 했다. 중앙 정치권과 청와대의 움직임을 감안, 선거 플랜을 짜라는 배려였다. 청와대가 직·간접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노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총선과 재신임 문제를 연계하겠다는 청와대 일각의 구상은 노대통령이 총선을 진두지휘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노대통령은 이미 시민혁명 및 양강구도론 설파를 통해 사실상 선거전에 나섰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노대통령의 다음 수.

    청와대 L씨를 만나고 온 J씨는 먼저 ‘총동원령’을 입에 올린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 등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모두 총선에 올인하는 전략이다. 이 가운데 J씨가 보는 화룡점정은 2월 중순을 전후해 단행될 노대통령의 우리당 입당이다.

    노대통령은 왜 언론과 여론의 뭇매에도 총선에 집착할까. 우리당 김성호 의원은 “총선에서 지면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고 임기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소수여당으로는 지난 1년처럼 혼란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는 것. 김의원은 “야당이 3분의 2 의석을 차지할 경우 탄핵 가능성도 매우 높고 국회에서 이런 분위기가 잡히면 국민들도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탄핵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분당, 민주-우리당의 연대?

    한나라당의 공천 갈등은 지루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주류 비주류의 헤게모니 쟁탈전도 끝없이 이어질 게 뻔하다. 여기에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출구조사 내용이 보태질 경우 한나라당은 ‘공공의 적’으로 전락한다. 당이 개인의 지지도를 밑돌며 표심을 좇는 최악의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한나라당 출마후보들은 대규모 ‘엑소더스’가 불가피하다. 여권 일각에서 말하는 4자구도의 출발점이다. 노대통령은 지난 연말 청와대를 찾은 지인들에게 한나라당의 분열 및 분당을 예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분당을 전제로 한 4당구도(자민련 제외)의 경우 우리당의 경쟁력은 지금보다 배가된다는 게 우리당의 판단이다.

    민주당과 우리당의 재통합론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안감을 느끼는 민주당 수도권 의원들은 “흩어지면 죽는다”며 통합을 부르짖는다. 같은 당이라도 호남 출신 의원들은 통합에 부정적이다. 조순형 대표도 이런 쪽에 가깝다. 그러나 섣부른 단정은 금물이다. 당대당 통합 또는 연대라는 1차 방정식이 풀리지 않을 경우 우열에 따라 단일화를 시도하는 대안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등에서 우열이 가려질 경우 분산된 지지표를 한쪽으로 몰아주는 형태로 사실상 연대와 유사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 수도권 인사들의 분석이다.

    선거법, 이곳을 파고든다

    선거구 획정의 인구 기준은 하한 10만명 대 상한 30만명일까. 아니면 다른 안이 제시될까. 늘어나는 지역구는 과연 몇 개나 될까. 지역구가 늘어날 경우 전국구는 줄어들까, 아니면 국회의원 총수를 늘릴 것인가. 석패율과 양성평등지역, 그리고 도농복합선거구제는 가능한가.

    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치권은 아직 선거 규칙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출마를 노리는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아직 기초적인 선거전략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1월8일 정치개혁특위 구성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한 여야는 우선 사상 초유의 선거구 위헌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한 의원정수에 대한 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현행 273명(지역구 227명)을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와 우리당은 한때 책임총리제를 앞세워 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 도농복합선거구제) 빅딜을 시도했다. 지역정당의 벽을 허물자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를 거부했다. 최근 수도권 의원 중심으로 도농복합선거구제가 부각하고 있다. 선거 규칙이 정해지기까지 적지 않은 산고가 뒤따를 전망이다.

    2000년 16대 총선에 이어 17대 총선도 출마 후보들에게 시민단체는 공포의 대상이다. 1월15일 ‘2004년 총선 물갈이 국민주권연대’(가칭·이하 물갈이연대)가 출범하면 분위기는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물갈이연대 회원들에게 후보별, 지역별 정보를 제공한 뒤 토론과 평가 과정을 거쳐 ‘국민후보’를 선택, 당선을 지원할 예정이다.

    선거법 위반 논란과 관련, 정대화 교수(상지대)는 “후보에 대한 가부와 지지의사 표현은 기본적으로 정당한 것이므로 합법적인 운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대 도우미는 인터넷이다. 2000년처럼 네거티브 캠페인을 지향하는 시민단체도 있다. 참여연대와 전국교수노조 등 394개 시민·사회단체는 16대 총선 당시의 낙선운동에 대한 법원의 위법 판결에도 불구하고 17대 총선에서도 다시 낙선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16대 총선 당시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 대상에 오른 86명 중 59명(68.6%)이 선거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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