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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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운동’ 팀 로빈스 부부 왕따

인터넷·라디오 통해 비방에 살해 위협까지 … 각종 행사에서도 초청 취소 잇따라

  • LA=신복례 통신원 boreshin@hanmail.net

    입력2003-12-18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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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 반전 목소리를 높였던 할리우드 스타 영화배우 팀 로빈스(45)가 이번엔 이라크 침공을 풍자한 연극을 제작해 로스앤젤레스 무대에 올렸다.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임베디드’(Embedded·깊숙이 묻힌)란 작품으로, 11월 중순 막을 올려 12월 말까지 공연된다. 줄거리는 산유국 고모라를 침공한 미군 병사와 전쟁을 취재하러 들어온 언론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고모라는 ‘바빌론의 도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독재자가 지배하는 땅으로 물론 이라크를 빗댄 표현이다. 아버지 혹은 아들을 전쟁에 빼앗긴 남은 가족들의 불안, 뜻하지 않게 민간인을 학살한 미군 병사의 심적 고통, 포로로 붙잡혔다 구출돼 전쟁영웅이 된 제시카 린치 일병 캐릭터, 전략회의를 한다고 둘러앉은 대통령 보좌관들이 자아내는 웃지 못할 풍경, 군의 기사검열에 무릎을 꿇는 언론인 등 전쟁과 정치판을 풍자하는 극들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것들을 엮어내는 연출력에선 역시 ‘팀 로빈스!’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로빈스가 이 연극을 쓰게 된 이유는 애국주의를 앞세운 극우주의자들이 그와 그의 가족에게 가하는 비난과 협박, 생명에의 위협 등 더러운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로빈스는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는 스타지만, 정치 사회 문제에 진보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예술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고등학생 때는 연극에 빠져 친구들과 함께 반전 가두공연에 몰두하기도 했던 그에게 반골 기질의 자유주의는 아마 그의 핏속을 흐르며 살아 숨쉬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전 풍자한 연극 연출로 화제

    1991년 걸프전 당시에도 반전대열에 나섰던 로빈스는 이번 이라크 침공과 관련해서 역시 대열의 선봉에 섰다. 2002년 10월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2만여명이 모인 반전집회에 아내인 배우 수전 서랜던과 함께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집회 때마다 이 스타 커플의 모습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3월 오스카 시상식 때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석유 개발 확보를 위한 전쟁이라는 것을 비난하기 위해 리무진 대신 소형 전기차를 타고 행사장에 도착하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서랜던은 부시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전후해 30초짜리 케이블 방송 광고를 통해 반전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렇게 로빈스 커플이 반전 목소리를 드높이자 두 사람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와 친척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거세졌다. 지난 4월 야구 명예의 전당측은 로빈스와 서랜던이 함께 출연한 야구 영화 ‘불 더햄’ 제작 15돌을 기념해 뉴욕의 본부로 두 사람을 초청해 시사회를 열고 연설을 들을 예정이었으나, “공인은 책임 있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는 비겁자, 이데올로그들과 함께 불명예와 수치의 전당에 자리잡게 될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행사를 취소해버렸다. 비슷한 시기 서랜던은 자선모금단체인 유나이티드 웨이로부터 여성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받았으나 취소당했다. 어느 라디오에선 그들을 공공연히 반역자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들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들한테서조차 부모의 활동에 대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인터넷과 라디오에서 쏟아지는 악성 비방에 살해 위협까지 이어져 로빈스로 하여금 임베디드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오스카 시상식을 두어 달 앞두고 요즘 할리우드 스타들은 투표인단의 표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시사회, 파티 등 공식석상에 얼굴 내밀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로빈스가 숀 펜과 멋진 앙상블 연기를 펼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미스틱 리버’는 현재 유력한 오스카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팀 로빈스가 지금 씨름하고 있는 건 오스카 트로피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숨죽인 자유주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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