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6

2003.10.23

“남쪽 방송일꾼 자주 보니 좋구만요”

3사 방북 제작 경쟁에 북한 풍경 익숙 … ‘퍼주기’ 논란 속 일관된 교류 시스템 필요 목소리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10-16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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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방송일꾼 자주 보니 좋구만요”

    광복절 특집으로 8월15일 방송된 KBS의 ‘평양노래자랑’.

    10월6일 오후 6시20분, SBS를 통해 평양의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관기념 통일음악회’가 생중계되었다. 김동규 조영남 설운도 이선희 ‘신화’ ‘베이비복스’ 등이 북측 가수들과 함께 출연한 이 음악회의 사회는 아나운서 유정현과 북한 방송원 전성희가 맡았다. 전씨는 8월 KBS가 방송한 ‘평양노래자랑’ 때도 사회를 맡았던 인물이다.

    낯익은 사람은 전성희뿐만이 아니었다. 양복과 한복을 차려입고 체육관 객석을 메운 북한 관객들 역시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이처럼 북한 풍경이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SBS의 ‘통일음악회’는 10%라는 기대 이하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SBS측은 “프라임 타임이 아닌 평일 저녁시간이라는 어정쩡한 시간대 때문에 시청률이 낮게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통일음악회 시청률 겨우 10%

    최근 들어 남북한의 방송교류가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SBS는 ‘통일음악회’는 물론, 5일부터 8일까지 8시 뉴스와 아침 7시 뉴스 등을 서울과 북한에서 이원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모닝와이드’ ‘한밤의 TV 연예’ 등 오락 프로그램까지 북한에서 송출했다. KBS는 내년에 ‘평양노래자랑’과 유사한 ‘남북노래자랑’을 제작할 예정. 한편, 지난해 이미자 평양공연 ‘우리는 하나’를 제작했던 MBC는 올해 ‘나훈아쇼’의 방북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송교류에 대해 일부에서는 ‘퍼주기식 교류’가 아닌가 하는 비판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측이 국정감사 자료로 작성한 ‘남북 방송교류 현황’에 따르면, KBS가 남북 방송교류에 쓴 예산은 지난해 45억6200만원, 올해 9월 말 현재 17억2000만원에 달한다. 이의원측이 특히 문제삼은 점은 이 같은 제작비의 상당부분이 ‘지급수수료’라는 명목으로 북한에 제공된 금액이라는 것. 예를 들면, ‘평양노래자랑’의 경우 총 제작비 14억5000만원 중 12억2000만원이 코디료, 행사준비비, 촬영허가비 등으로 북에 제공된 ‘지급수수료’고 나머지 2억3000만원이 스태프의 체재비 등 실제 제작비라는 것이다. MBC 역시 지난해에 ‘우리는 하나’와 북한의 아시아경기대회 준비상황 위성생방송 제작을 위해 60만 달러와 TV 수상기 5000대를 북측에 제공했다고 이의원측은 밝혔다. 또 방송위원회는 이들 방송사와는 별도로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100만 달러어치의 방송장비를 북한에 제공했다.



    그러나 KBS측은 이의원측의 주장에는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KBS가 지난해 UN 본회의장에서 음악회를 열었을 때, UN측에 제공했던 장소 사용료가 80만 달러였습니다. 하물며 북한에서 공연을 하는데 그 정도의 비용이 들지 않겠습니까. 12억2000만원에는 조선중앙 TV의 스태프 70여명, 중계차와 스튜디오 대여료, ‘9시 뉴스’ 생방송을 위한 위성사용료 등이 모두 포함된 것입니다.” 박원기 KBS 남북교류협력단장의 말이다. KBS 재직 시절 남북 방송교류를 담당했던 중앙대 홍성규 객원교수(신문방송대학원) 역시 “‘퍼주기식 교류’라는 주장은 소아병적 사고이자 냉전적 논리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한 관계자는 오히려 비용 부분보다 방송 3사가 제각기 자신들의 방식으로 남북한 방송교류를 진행하고 있는 점이 더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방송 3사가 시청률을 의식해 불필요하게 평양이나 백두산 등지에서 뉴스를 방송하는 등, 남북한 방송교류를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남북한 방송교류가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보다 일관된 교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대 이정춘 교수(신문방송학과)는 “그동안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북한 프로그램을 수입하는 등 과열된 분위기가 있었으나 최근 들어 이런 경쟁 분위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며 방송 3사를 중심으로 방송인들이 자율규제 장치를 마련하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와중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육로로 이동해 경비를 대폭 줄인 SBS의 방북은 주목할 만하다. SBS의 이재명 스포츠본부장은 “이번 행사는 현대아산이 주최했고 SBS는 통일음악회와 농구경기 2회 중계에 대해 현대아산과 계약을 맺었다. 방북에 든 비용은 9억원 선으로 이 정도 규모의 제작진이 지방출장을 갈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앞으로는 방송위원회가 조선중앙 TV에 제공한 방송 기자재를 남측 방송인들이 사용할 수 있어 경비가 절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비용 문제를 들어 남북한 방송교류의 의의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남한에 방송되는 남북한 합동공연들은 북한의 조선중앙 TV에서도 방송된다. 방송 콘텐츠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같은 프로그램을 서너 번 재방송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남한 출연진들이 북한 시청자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셈이다.

    6일 ‘통일음악회’에 참가한 그룹 ‘신화’는 “예상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후 북측 분들께 ‘멋있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베이비복스’ 역시 “노래를 끝내고 나니 객석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렸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북한 관객들의 표정에서는 조금이나마 감정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남북한 방송교류에 대해 “주는 것은 가시적이나 얻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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