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1

2003.09.11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 기획·진행/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9-03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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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신작로가 출현하면서 사라진다. 그것이 길의 운명이다. 비록 옛길이 됐지만 그 터에는 길손들의 애환과 사연이 ‘진주’처럼 숨어 있다. 보부상의 땀과 눈물이, 때로는 민초들의 한(恨)이 서려 있는 옛길. 그래서 옛 고개는 모두 ‘아리랑 고개’다.주간동아는 수천, 수백 년 동안 나그네의 사랑을 받아오다 이제는 등산로, 오솔길, 산책길로 남은 옛길 10곳을 엄선해 답사기를 싣고 각종 정보를 제공했다. 소개된 10곳은 원형이 잘 보존된 길 중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사연이 있는 옛길로, 때로 산행을 해야 하는 길도 있지만 대부분 가족 단위로 편안하게 걷기에 무리가 없는 길이다. 걷기의 기쁨과 삼림욕, 단풍관광 모두를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옛길에서 큰 만족을 느낄 수 있으리라.

    인제 새이령 - 길은 좁고 숲은 우거지고 …원시림이 따로 없네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원시림에 둘러싸인 새이령. 계곡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군락과 진흙집. 산림청이 벌목에 나섰을 만큼 숲이 울창한 새이령길(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창암마을과 고성군 토성면 입원리 사이에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옛길이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채 숨어 있다. 미시령과 진부령 사이의 백두대간을 활 모양으로 가르는 새이령(샛령·대간령) 옛길. 험준한 백두대간의 고개답지 않게 길이 워낙 부드럽게 이어져 1970년대 초반 한계령에 도로가 생기기 이전까지 미시령, 진부령, 구룡령 등 강원 북부의 동서를 연결하는 고개를 통틀어 가장 많이 애용된 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 지역주민과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길의 내력을 아는 이가 거의 없다.

    길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30여년, 이곳은 완벽한 원시림으로 변해 있다. 이깔나무와 전나무, 단풍나무 등 각종 침엽·활엽수림이 숲을 이루고 있어 길을 걷는 동안 햇빛 한 가닥이 그리울 정도. 원시림 속을 파고드는 한 가닥 햇빛이 마치 레이저 광선 같다. 계곡 주변의 양지바른 곳에 지천으로 핀 온갖 야생화와 키높이만큼 자란 억새를 헤치며 나아가는 맛이 일품이다.

    길의 들머리는 용대리 창암마을의 신선봉농산물할인점 뒤편 군사훈련장. 할인점 뒤편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면 사격장 옆으로 폐타이어로 만든 계단이 나오고 이 길을 지나면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걸을 만한 흙길이 이어진다. 비록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숲길이지만 길을 찾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산악인들이 곳곳에 리본을 매어둔 데다 길이 끊기면 계곡 자체가 길이 된다. 길은 부드럽다 못해 싱겁다. 등산화를 신고 걷는 게 머쓱할 정도.



    새이령 고갯길 답사의 또 하나의 묘미는 개울 나들이다. 새이령 정상까지 가는 3시간여 동안 무려 10차례나 개울을 건넌다. 건너기 좋게 바위를 옮겨다 놓은 옛 길손의 넉넉한 마음에 빙그레 미소부터 짓게 된다. 시리도록 맑은 계곡물에서는 말로만 듣던 산천어와 열목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소간령을 넘어서면 조선시대 말들이 쉬어 갔다는 마방터가 나오고 거기에는 아직도 귀틀집이 남아 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수도도 없는 이곳에서 뜻밖에 두 명의 남자가 길손을 반긴다(말만 잘하면 돌판에 구운 삼겹살을 얻어먹을 수도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없는 게 없었다”는 정씨 할아버지는 “이 길이 언론에 자꾸 알려지면 안 되는데…”라며 ‘원시의 훼손’을 걱정했다.

    ■ 글·사진/ 최영철 기자

    ◈ Tips

    - 교통: 인제나 원통에서 진부령 가는 버스를 타고 용대 삼거리(46번 국도)에서 내려 미시령 방향(56번 지방도)으로 1.5km 가량 가면 옛길 입구인 신선봉농산물할인점이 있다.

    - 숙박·먹을거리: 선녀와 나무꾼(033-462-3957), 옥미정(033-462-7606)에서는 숙식이 모두 가능하다. 황태찜, 토종닭, 마가목주, 머루주가 일품이다.

    - 볼거리: 백담사, 인제장, 양양장, 용대산 자연휴양림, 스키박물관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곧게 뻗은 소나무가 울창한 한계령 옛길. 한계령 옛길과 마주치는 한계천. 옛길 입구에 있는 ‘장수대 푯돌’. 길이 끊어진 듯하지만 좁은 흙길이 이어져 있다(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한계령 옛길은 원통장과 양양장을 이어주던 길이다. 전국의 장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행상인의 일종인 ‘선질꾼’들이 양양장을 출발해 한계령을 넘나들며 주로 이용했다. 옛길은 44번 국도 건설로 여러 군데 끊어져 있고 인적이 드물어 유실된 부분도 적지 않다. 옛길은 크게 두 구간으로 나뉜다. 첫번째는 한계령 쇠리마을에서 장수대휴게소까지 구간이며 두 번째는 장수대휴게소에서 다시 한계령휴게소까지 구간이다. 하지만 첫번째 길은 44번 국도와 거의 일치한다. 한계령 도로가 개설되면서 옛길이 고스란히 도로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 구간에서는 옛길의 정취를 발견할 수 있다. 장수대휴게소 내부로 들어가면 500평 정도 되는 널찍한 야영장이 있는데 이승만 대통령 시절 전방 군인들이 이곳에 와서 휴양을 하기 시작하면서 ‘장수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야영장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이 옛길의 시작 지점이다.

    초입은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고 길을 따라 흐르는 한계천의 물 흐름이 시원해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즐길 수 있다. 하지만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이내 길의 흔적이 사라져 당황하게 된다. 다행히 마을사람들로부터 “전신주를 따라가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간신히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2시간 가량 4km 정도를 따라가면 한계령휴게소가 나타난다. 주의할점은 마지막 10분 정도의 구간. 갑자기 길이 사라져 옆에 있는 계곡을 타고 싶은 충동이 생길 수도 있지만 가파른 비탈길을 곧장 따라 올라가야 한계령휴게소에 도달한다. 옛길도 정취를 간직하고 있지만 장수대까지 찾아가는 44번 국도의 풍경도 너무나 아름답다. 가로수가 높게 솟아 있어 마치 꿈길을 달리는 듯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이곳 인근에서 별미를 맛보기는 힘들다. 도시락을 싸 가거나 식도락가라면 한계령 가는 곳곳에 있는 토속음식점에서 미리 식사를 해결하는 게 좋을 듯하다.

    ■ 글·사진/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교통: 승용차로는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읍내로 들어가지 말고 바로 한계령 쪽으로 가야 한다. ‘한계령 전 마지막 SK주요소’라는 표지를 지나면 바로 쇠리마을. 버스로는 인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용대리행 시내버스를 타면 장수대휴게소(033-463-4837)에 도착한다.

    - 숙박·먹을거리: 쇠리마을과 장수대휴게소 마을 내에 내설악쉼터(033-463-3772) 등 여러 곳이 있다. 민박집의 소박한 식사와 휴게소 안에 설치되어 있는 매점 및 식당에 있는 먹을거리가 전부.

    - 볼거리: 장수대휴게소 직전 소공원 건너편에 석황사터가 있다. ‘장수대 푯돌’이 있는 이곳이 옛길의 출발지. 휴게소 맞은편 등산로를 따라가면 내설악 첫 고개인 대승령이 나온다.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 해서 대굴령이라고 불린 대관령 옛길. 제멩이 쪽 입구. 길은 굽이굽이 돌며 이어진다(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소나무가 이처럼 곧고 키가 컸던가.

    대관령에 올랐다. 동해가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고 소나무가 융단처럼 펼쳐진다. 백두대간의 삭풍에 당당하게 맞서온 소나무는 강건하다. 왜소하거나 굽지 않은 것은 찬 북서풍에 꺾이지 않은 소나무의 강단 덕이다. 소나무의 장대한 기상은 굽은 ‘나’를 걷어내고 당당한 ‘자아’를 되찾게 한다.

    옛 영동고속국도 대관령길 대관령휴게소에서 강릉 쪽으로 500m 가량 내려가면 ‘대관령 옛길 반정(반젱이·反程)’이라고 씌어진 비석이 있다. 옛길 입구. 옛날 사임당 신씨가 아들인 율곡 이이의 손을 잡고 넘었던, 더 옛날 궁예가 명주성(강릉)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를 몰았던 바로 그 ‘진짜’ 대관령이다. 대관령의 본디 이름은 ‘대굴령’.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 해서 그렇게 불렸단다. 대굴령을 한자로 적은 게 대관령이다.

    옛길이 남아 있는 구간은 반젱이에서 제멩이(강릉시 성산면 어흘리)까지 5km. 영동고속국도 대관령 구간이 직선화하면서 옛길은 고속국도에 막혀 또다시 반으로 끊겼다. 반젱이에서 시작해 반을 걷고, 반대편 어흘리부터 다시 반을 올라야 한다. 길은 대여섯 사람이 이야기를 하며 걸을 수 있는 너비. 동해에서 난 해산물은 이 길을 따라 영서로 넘어가고 뭍에서 만든 공산품은 괴나리봇짐에 실려 강릉 구산장 연공장 우계장에 넘쳐났다.

    옛길을 지나는 물빛과 바람결이 어느덧 가을을 느끼게 한다. 물기를 품은 선들바람은 가을의 전령이라 했다. 어흘리 사람들은 대관령 옛길의 진정한 풍취는 가을과 겨울에 느낄 수 있다 한다. 가을 소나무는 비바람이 불어야 제격이다. 솔바람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송성(松聲)이니 송운(松韻)이니 하는 조상들의 말이 허튼소리는 아닌가 보다. 빗소리에 운을 맞춘 솔숲 소리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걷기에, 대관령 옛길은 쉽지 않다. 대굴령이란 이름이 공연히 붙여진 것은 아닐 터. 사임당 신씨는 아흔아홉 구비구비 대관령을 넘으며 이렇게 읊었다. ‘늙으신 어머님을 강릉에 두고/ 이 몸은 홀로,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 글·송홍근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 Tips

    - 교통: 기차, 고속버스를 이용해 강릉에 도착한 뒤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이용. 시내버스: 강릉-어흘리(오전 6시~오후 10시), 시외버스: 강릉-횡계(오전 5시30분~오후 8시)

    - 숙박·먹을거리: 나무로 지은 오두막인 옛길쉼터(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033-641-9402)에서는 식사도 가능하다. 옛길농원(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033-641-9594)에서는 주인이 직접 기른 오리로 만든 오리요리가 일품.

    - 볼거리: 보현사, 명주군왕릉, 신사임당사친비, 대관령 자연휴양림, 대관령박물관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들꽃과 숲이 어우러진 고치령 옛길. 소에게 먹일 꼴을 지고 가는 마을 노인. 인적 드문 이 길 위에는 단종의 한 맺힌 역사가 쌓여 있다(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이 땅에 이처럼 아름다운 길이 또 있을까. 고치령(고칫재) 고개를 넘는 이라면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이 같은 경탄을 토해낼 듯하다. 한없이 투명해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맑은 하늘, 짙푸르게 우거진 나무 숲, 그 사이로 끊어질 듯 아련하게 이어지는 한 구비 옛길.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에서 경북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로 이어지는 고치령길 22.5km는 우리 길이 가진 아름다움의 극한을 보여준다. 이 길은 소박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고요하지만 외롭지 않다.

    가파른 외길도, 험한 골짜기도 없는 소박한 아름다움. 그리고 끝없는 고요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치령을 넘는 7시간 동안 단 한 명의 동행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따금 좁은 비포장도로를 지나느라 심하게 요동치는 자동차가 곁을 스치겠지만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고요를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은 찬란한 나뭇잎과 주저 없이 지저귀는 새들, 그리고 이 길에 쌓인 피맺힌 역사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길을 한없이 매력적으로 만든다.

    고치령은 조선시대 계유정난 이후 영월에 유배된 소년왕 단종의 복위를 꿈꾼 이들이 넘나들던 길. 당대의 ‘혁명가’들은 단종을 지키려다 순흥에 유배된 그의 숙부 금성대군의 소식을 단종에게 전하기 위해 이 길에 숨어들었다. 복위운동이 끝내 실패로 돌아간 후 그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지만 단종의 영은 태백산 신령이 되고, 금성대군은 소백산 신령으로 살아 두 산을 잇는 고갯마루 고치령을 지키고 있다.

    완만한 오르막이 끝나는 고치령 정상에는 이들을 기리는 산령각 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단산면 마락리에서 43년째 살고 있다는 정인흠씨(69)는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산령각은 불타 없어져 버렸지만 마락리 주민들은 지금도 매해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재를 올리며 두 분의 넋을 기린다”고 전했다. 고개가 끝나는 곳에는 이들이 몸을 피했던 피바위, 망을 보았다는 망바위가 서서 지난 역사를 묵묵히 전해준다. 길의 끝에서 멀지 않은 두렛골에는 금성대군을 모신 서낭당도 남아 있다.

    ■ 글·송화선 기자 / 사진·지재만 기자

    ◈ Tips

    - 교통: 영춘에서 의풍리로 들어가는 마을버스가 영춘면 구 신협 앞에서 오후 1시30분과 5시30분, 하루 두 번 출발한다. 나오는 시간은 오후 3시, 7시.

    - 숙박: 의풍리 담배가겟집(043-422-6309), 좌석리 고칫재 민박(054-638-4544)

    - 볼거리: 고치령 산령각 터, 연화폭포, 망바위, 두렛골 금성대군 서낭당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문명의 자취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죽령 옛길. 죽령 옛길 초입에 서 있는 장승들(위부터).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위치한 ‘죽령 옛길’은 무려 2000여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삼국사기’에는 ‘아달라왕 5년(서기 158년)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렸다’고 기록돼 있고, 1910년대까지 경상도 동북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다. 주로 서울로 과거 보러 올라가는 선비와 공무를 띤 관원들이 이곳의 객점과 마방(馬房)을 이용했다고 한다. 특히 이 길은 추풍령, 문경새재와 더불어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이자 영남권과 기호지방(畿湖地方)을 연결하는 3대 관문의 하나로 여겨져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길이다.

    근대에 들어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자연 유실된 곳이 많아졌지만, 최근 영주시청과 풍기읍이 이를 복원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길의 출발지점은 희방사역 뒤편으로 300여m 이어진 아스팔트 길을 지나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옛길의 시작을 알린다.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옛길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옛길이 그렇지만 이곳 또한 옛 정취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문명의 자취라고는 전봇대뿐이고, 물소리와 새소리만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비교적 널찍한 길이라 두 명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고 군데군데 자라난 잡초들이 발걸음을 한결 가뿐하게 해준다. 초입에서부터 고갯마루까지 1시간30분 가량 걸리며, 고개 정상에서 다시 단양군 용부원리까지 가려면 2시간을 걸어야 한다. 하산길에 죽령산신당에 들르면 옛길에 얽힌 전설과 민담을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풍기까지는 승용차로 2시간30분 가량 걸린다. 아침 7시경 서울을 출발, 오전 11시경부터 옛길을 타기 시작해 죽령주막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내려오면 당일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 글·사진/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교통: 승용차로는 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내려 희방사역을 찾으면 되고, 버스를 이용할 때는 풍기행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로 풍기에 도착 후 시내버스터미널(054-636-3848)에서 희방사행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기차는 서울 청량리역에서 희방사까지 가는 기차가 15시에 한 차례 운행된다.

    - 숙박·먹을거리: 희방사역 앞에 민박이 있지만 풍기읍내에 있는 황제모텔(054-633-0494)이나 풍기호텔(054-637-8800)을 이용하는 게 좋다. 풍기읍내의 풍기돼지갈비(054-637-4830)는 지역특산물인 풍기인삼을 넣어 숙성시킨 별미 돼지갈비로 유명하다. 죽령고개의 죽령주막(054-638-6151)과 죽령휴게소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도 좋다.

    - 볼거리: 죽령 옛길 고개에서 대강면 샛골로 가는 길에 ‘머리 없는 불상’인 보국사 미륵불(신라시대)이 있다.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말구리재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간간이 섞여 있는 침엽수림이 재를 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가좌목에서 시작하는 말구리재 입구.널찍한 굽이길이 인상적이다(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말구리재는 고요하다. 자신의 옛 영화를 추억하는 양 쓸쓸하게 그냥 거기 존재한다. 이제 이 길을 통해 충주, 청주 혹은 경성으로 발길을 다잡는 나그네는 없다.

    도시 이름부터 순박한 문경 점촌. 1970년대 석탄 광산으로 흥하여 ‘경북 점촌에서 돈자랑 하지 말라’던 소문은 오간 데 없다. 점촌에서 출발한 버스가 가좌목에 이르자 식당 하나 없는 소박함에 놀라게 된다. 가좌목(佳佐目)은 홍건적의 침공을 받아 복주로 피난 온 고려 공민왕이 이곳의 산수가 수려하고 주민들의 정성이 지극하다 하여 붙인 이름.

    “총각이래요, 아저씨래요? 총각이면 사위 삼으려고 그래요. 우리 집에서 자고 가래요.” 마을 어귀에 모여 있는 중년 아낙들이 짓궂은 농을 걸어온다.

    행정구역상 경상도지만 강원도 사투리가 살포시 묻어나온다. 구비구비 민가를 지나 말구리재 입구에 당도하니 예상치 못한 규모에 마음을 뺏긴다. 탁 트인 전망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굽이길. 인적 없는 산중에 펼쳐져 있는, 2차선 도로를 내고도 남을 만큼 널찍한 옛길은 놀라움 그 자체다. 문경시 산북면 가좌목에서 문경읍 갈평리까지 6.8km에 이르는 말구리재는 신라시대부터 이웃한 하늘재(2km)와 함께 널리 애용되던 길이다. 말구리재는 마전령(馬轉嶺)이라 불릴 정도로 말이 달리기 좋게 포장되어 걷기에도 그만이다.

    1시간 남짓 계속 걸으니 말구리재 정상에 다다른다. 사방천지가 온통 녹색인데 인적은 없고 곤충들만이 이방인을 반긴다.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를 3시간 남짓 계속 가니 민가가 나타난다. 바로 말구리재가 끝나는 갈평마을. 물소리로 뒤덮인 마을에는 사과 향내가 그윽하다. 관음리에서 시작하는 하늘목이 저만치 눈에 들어온다. 말구리재에 만족 못하는 이라면 하늘재에 가보는 것이 좋다. 관음리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편은 아니지만 교통편이 여의치 않다면 걸어가는 것도 좋다. 하늘재는 한반도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신라 제8대 아달라왕(서기 156년)이 북진을 위해 개척했다고 한다. 깨끗하게 포장돼 있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신라의 정취가 정겹게 펼쳐진다.

    ■ 글·사진/ 정호재 기자

    ◈ Tips

    - 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해 문경시(점촌)에 도착한 뒤 터미널 앞에서 가좌목행 시내버스를 탄다(하루 5회: 오전 7시10분 이후 2시간30분 간격). 갈평리행 버스는 하루 20회 운행한다(오전 7시30분~오후 6시35분).

    - 숙박·먹을거리 : 김룡 송어장 가든(김룡사 입구 043-553-2211), 새재골(갈평리에서 문경읍 가는 길에 위치, 043-571-9980)은 나물 맛이 일품.

    - 볼거리 : 김룡사, 갈평리 오층석탑, 관음리 석불입상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제1관문 ‘주흘관’. 제1관문 앞에는 너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계곡과 어우러진 제2관문. KBS 드라마 촬영장. 제3관문으로 향하는 그림 같은 숲길(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던 영남대로. 이중에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고개, 문경새재에는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KBS드라마 세트장이 들어서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진 문경새재는 ‘옛길의 자연스러움’과 ‘정돈된 인공미’를 동시에 자랑한다.

    주차장을 가득 메운 자동차와 ‘원조’를 내세우는 음식점들의 요란한 간판. 문경새재 초입에서는 전혀 예스러움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제1관문, 주흘관에 들어서면 21세기 문경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수백년 역사를 지닌 옛길의 풍모가 수줍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거진 숲은 따가운 햇살을 가린 채 활력을 담은 향기를 뿜어낸다. 계곡을 타고 힘차게 흐르는 물줄기 소리는 병풍처럼 둘러싼 산자락의 고요함과 완벽하게 협연한다. KBS 드라마 ‘무인시대’의 세트장을 벗어난 뒤 신발을 벗어 들고 고운 흙길 위에 맨발을 내딛는다.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흙의 감촉이 온몸으로 전해져 온다.

    제1관문을 지나며 만나는 반가운 공간은 조령원터. 길을 지나는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여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돌담만이 남은 그곳에 드라마 세트장이 자리잡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주막과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는 ‘산불됴심비’를 지나면, 충주 사람 신충원이 축조했다는 제2관문 조곡관이 나온다. 특히 제2관문을 지나면 민중의 한이 서린 역사가 곳곳에 스며 있다. ‘문경새재 아리랑비’와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농민군 제2진을 설치했던 ‘이진터’에 이르면, 가슴 한구석이 숙연해진다.

    제3관문 조령관까지 가는 길은 보다 가파르다. 쭉 뻗은 잘생긴 전나무가 나그네의 길동무가 되어준다. 조령관을 지나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를 밟으면서 3 시간에 걸친 옛길 여행은 끝이 난다. 한양에 한 걸음 가까워진 나그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친다.

    ■ 글·이남희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 Tips

    - 교통: 문경새재를 찾아가는 데는 기차보다 고속버스가 편리하다. 점촌에서 시외버스로 40분.

    - 숙박·먹을거리: 문경시내에 있는 문경관광호텔(054-571-8001)이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영양가마솥밥을 전문으로 하는 새재 이화정(054-571-8553)의 음식이 입맛을 돋운다.

    - 볼거리: 문경관광사격장, 문경활공랜드, 불정자연휴양림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회남재에서 바라본 하동군 일대. 회남재 중에서 가장 완만한 길. 회남재에서는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가 훤히 보인다(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경남 하동의 회남재는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됐던 지역이다. ‘지리산으로 곧장 연결된 마을’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빨치산의 물자보급로 역할을 했다. 회남재의 출발지는 악양면 덕기마을이고 종착지는 청암면 묵계리. 이 길은 묵계 사람들이 하동장에 오는 길이자 악양면에서 청학동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회남(回南)재’란 이름은 남명 조식 선생이 이 터를 보고 골이 좁고 물이 섬진강으로 곧장 빠져 ‘길지(吉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돌아섰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악양면 덕기마을 끝자락에 있는 요양시설 ‘사랑의 집’ 바로 옆길이 옛길 출발지. 경사가 가팔라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세 번씩 숨을 쉬어야 한다 하여 ‘삼아령(三阿嶺)’이라 불리는 곳이다. 실제 이곳의 경사도는 40도가 넘는 듯하다. 사랑의 집에서 400여m 정도는 도로가 포장되어 있어 그나마 견딜 만하지만 실제 옛사람들이 거닐었다는 길은 그야말로 험하다. 키만큼이나 자란 잡풀들 사이로 실낱처럼 남은 옛길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빨치산 유격대의 기민함과 민첩함이 필요한 구간. 그 길을 따라 ‘인내의 1시간’을 지나면 회남재다.

    올라가는 길과 달리 고개 정상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회남재의 역사와 유래를 알리는 안내 그림판이 세 개나 서 있다. 구름에 걸려 바라보이는 하동과 묵계의 풍광이 올라올 때의 고생을 단숨에 잊게 한다. 섬진강과 악양들판을 바라보며 먹는 점심은 너무나 맛있다. ‘옛사람들은 주먹밥을 먹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묵계로 내려가는 회남이골은 80여m쯤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그 다음부터는 완만한 대나무숲 오솔길이다. 서걱서걱 내려오다 보면 귀틀집 한 채만 겨우 남은 회남이 마을을 지나 어느덧 묵계에 도착한다. 해마다 큰 폭우가 쏟아져 냇물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묵계(默溪). 올라오는 길이 워낙 힘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묵계마을의 침묵 때문일까. 길손들은 말이 없다.

    ■ 글·사진/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교통: 경남 하동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등촌리 덕기마을에 도착한 후 차가 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 출발지점. 하동 시외버스정류장(055-883-2662)에서 약수장행 완행버스를 타고 20분 가면 도착.

    - 숙박·먹을거리: 19번 국도에 위치한 고소성 식당(055-883-6642)이 유명하다. 닭도리탕, 닭백숙, 향어회, 고로쇠 약수 등을 파는 악양면 내의 삼거리식당슈퍼(055-882-7087) 등 작은 민박집이 있지만 좀더 편안한 잠자리를 원한다면 하동에 가야 한다.

    - 볼거리: 소설 ‘토지’에 나오는 평사리 최참판댁, 한산사, 고소산성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굴목이재에는 나무로 둘러싸인 아치형 길이 많다.옛길 들머리에 있는 선암사 일주문. 남도의 향취가 전해져 오는 굴목이재의 대나무 숲길(위부터 시계 반대방향).

    전남 순천의 조계산은 고색창연한 대사찰과 울창한 숲의 정취를 한 걸음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높이 884m의 높지 않은 산이 동·서쪽 자락으로 펼쳐져 천년고찰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고 있고 절을 지나 산으로 들어서는 숲길은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조계산 자락 선암사-선암 굴목재-송광 굴목재-송광사에 이르는 옛길은 총 6.8km. 길 중간에서 벗어나 산 정상까지 올라가봐야 총 길이가 1.8km밖에 안 돼 잠시 ‘외도’할 만하다.

    출발지인 선암사는 고풍스럽고 은근한 멋을 자랑한다. 특히 절 앞에 아름답기로 이름난 승선교가 있는데 지금은 보수중이라 볼 수 없어 아쉽다. 도선국사가 팠다는 작은 연못 삼인당과 선암사 제2 부도밭을 지나면 연못 맞은편에 위치한 찻집 뒷길이 굴목이재로 오르는 길이다. 거기엔 60~70년 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숲이 펼쳐져 있고 풀섶엔 노란 피나물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단, 독성이 있어 함부로 만지면 큰일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이어주는 산길이 굴목이재다. 선암사 쪽의 선암 굴목이재(큰 굴목이재)와 송광사 쪽의 송광 굴목이재(작은 굴목이재)로 나뉘는데 작은 굴목이재에는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숲이 아늑하고 길이 험하지 않아 연인이나 가족이 산행하기에 안성맞춤. 우리 역사와 자연을 진하게 맛볼 수 있는 코스다.

    송광 굴목이재부터 송광사까지는 줄곧 내리막 돌밭 길이라 뛰어다니다 발목을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작은 대피소를 지나 참나무 우거진 시누대밭길로 내려가면 물소리가 크게 들리고 송광사 옆길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송광사는 국사와 전각, 보물이 많다고 해 삼다사찰로 불려질 만큼 볼거리가 많은 명찰이다.

    ■ 글·사진/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교통: 승용차로는 남해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에서 857번 지방도를 이용한다. 대중교통은 각 대도시에서 버스(30~40분 간격)를 이용해 순천에 도착한 뒤 선암사행(1번, 111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 숙박·먹을거리: 선암사 들머리에 위치한 아젤리아호텔(061-754-6000)이 머물기에 편하다. 선암 굴목이재와 송광 굴목이재 사이에 위치한 조계산 보리밥집(061-754-3756)의 푸짐한 보리밥과 도토리묵, 야채파전, 동동주는 배고픈 길손에겐 최고의 식사다. 선암사와 송광사 초입에서 맛볼 수 있는 5000원짜리 산채비빔밥도 허기를 달래주는 데는 만점.

    - 볼거리: 낙안읍성, 금둔사, 동화사, 검단산성, 주암호변 고인돌공원 등. 순천시가 운영하는 무료 시티 투어 버스를 이용한다(061-749-3328).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해남 띠밭재에서 바라본 대둔산 두륜봉. 옛길 어귀에 세워진 대둔사 일주문. 띠밭재 고개 정상(왼쪽부터 시계 방향).

    전남 해남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명산 대둔산. 기암들이 산꼭대기를 에워싸고 있어 마치 산이 머리에 왕관을 쓴 듯하다 해서 두륜산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북쪽으로는 장추구곡이 펼쳐져 있고 동·서·남쪽 모두 발굽 형태로 둥글게 연결돼 있다.

    그 남쪽 자락에 천년고찰 ‘대둔사(대흥사)’가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않고 1만년 동안 마르지 않을 땅이라며 명당 터로 지목한 곳. 또한 제주도나 남도의 외딴섬으로 유배길에 올랐던 옛 선비들이 거쳐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제주도로 가려면 해남군 북평면의 이진항을 이용해야 했는데, 바로 띠밭재가 그 연결통로 역할을 했다. 북평면 주민들이 대흥사 행사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이 길을 거쳤다. 대둔사에는 대웅보전을 비롯해 명부전 백설당, 천불전, 용화당, 표충사 등의 건물이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자리잡고 있다. 대둔사에서 산길을 20여분 오르면 일지암에 이른다. 우리나라 차문화의 산실로 이름 높은 이곳은 초의선사가 김정희, 정약용 등과 함께 다도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다.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의 우정이 숨쉬는 곳인 띠밭재 옛길은 표충사 오른쪽 담벼락을 끼고 도는 길에서 출발한다. 물소리와 숲 향기 가득한 길이 1.9km 가량 이어진다.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은 한낮에도 어둑어둑한 새벽 분위기를 내며 나그네의 마음을 이끈다.

    물통거리골과 가파른 비탈길, 계곡길을 따라가다 보면 진불암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세 갈래로 갈라진 콘크리트 길 가운데 오른쪽 길로 50여m 가량 가다 곧게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띠밭재가 나온다. 대둔사에서 추사 김정희의 친필을 구경하고, 이곳에 올라 다도해의 절경을 바라보며 김정희의 유배길을 음미해보자. 길이 그리 험하거나 길지 않아 당일에 주변 관광지까지 모두 구경할 수 있다.

    ■ 글·사진/ 이남훈 프리랜서

    ◈ Tips

    - 교통: 해남군까지 가는 데는 광주를 거치는 기차보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해남 버스터미널(061-534-0881)에서 30분 간격으로 대둔사 입구행 군내버스가 운행된다.

    - 숙박·먹을거리: 대둔산 초입에 해남 유스호스텔(061-533-0170)과‘남도음식축제’에서 대상을 받은 전주식당(061-532-7696)이 있다. 해남의 특산물인 ‘땅끝햇쌀’로 지은 기름진 밥에 각종 산나물을 곁들인 산채정식이 별미다.

    - 볼거리: 대둔사에서는 당일코스의 여행지가 많다. 주요 관광지로는 땅끝마을(30분), 송호해수욕장(25분), 달마산 미황사(30분), 다산초당(50분), 우항리 공룡화석지(30분) 등이 있다.

    걷다가 쉬다가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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