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2003.03.13

개혁 특명! 강금실·김두관 투톱 띄웠다

강금실 “법무부와 검찰 분리 고유기능 수행” … 김두관 “행자부는 지방분권 사령탑 역할”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3-05 16: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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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 특명! 강금실·김두관 투톱 띄웠다
    노무현 정부의 첫 조각은 개혁과 안정의 조화라는 대원칙 아래 이뤄졌다. 그러나 기존 관점에서 볼 때 파격이 돋보인 인사였음은 분명하다. 특히 해당 분야의 비주류라 할 수 있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 김두관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 장관의 발탁은 이번 인사의 하이라이트로 볼 수 있다. 언론과 해당 관청에서는 충격적인 인사라는 평이 쏟아졌다. 여성과 민변 부회장, 이장과 군수라는 파격요소가 겹친 40대 두 장관의 발탁의 배경에는 노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가 숨어 있다. 노대통령은 ‘검찰개혁과 지방분권’이라는 노무현 정부 첫 미션을 두 장관에게 맡겼다. 이들이 몰고 올 변화의 바람이 어디서, 어떻게 불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

    노대통령이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여권 일각에서도 반대의 뜻을 비쳤는데도 판사 출신의 40대 여성 변호사인 강금실씨를 파격적으로 법무장관에 임명한 의도는 무엇일까. 노대통령은 이에 대해 2월27일 스스로 국민 앞에 나서 “법무부는 변화가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법무부가 검찰의 대변인 역할을 해온 대신 검찰 수사에 개입해 검찰 수사를 망쳐놓았기 때문에 이를 분리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판사 출신의 강장관이 적임자라는 취지의 설명이었다.

    노대통령의 강장관 카드에는 물론 검찰에 대한 불신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대통령은 의원 시절에도 자주 검찰에 대한 불신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87년 6·29 선언 이후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는 양심적인 세력이 나타나 해당 분야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으나 검찰은 그런 경험을 겪지 않은 집단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는 것.

    강금실 카드에 대해 강력히 반발한 검찰 일각에선 현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도 있다. “검찰이 실험대상이냐” “정치권력의 간섭으로 검찰 독립이 이뤄지지 못했는데, 정치권에서 검찰개혁 운운한다는 것은 난센스다”라는 등의 불만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제는 “장관이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검찰 독자적으로 수사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노대통령 주변인사들에 따르면 노대통령은 일찍부터 강금실 법무장관 카드를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초 법무장관 후보 5배수에는 강금실 변호사 이름이 빠졌으나 노당선자가 ‘강변호사를 왜 뺐느냐, 빼야 할 논리적 근거를 만들어 나를 설득해보라’고 했고, 결국 3배수 후보에 들게 됐다”고 말했다.

    개혁 특명! 강금실·김두관 투톱 띄웠다

    2월27일 오후 고건 국무총리(앞줄 왼쪽)를 비롯한 새 정부 첫 내각의 각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장관 인선 배경에 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노대통령이 강장관을 염두에 둔 것은 무엇보다 그의 개혁성을 높이 샀기 때문으로 보인다. 83년 판사로 임명된 강장관은 서슬 퍼렇던 5공화국 시절에도 불법시위 혐의로 검거돼 즉심에 회부된 학생들을 잇따라 훈방조치함으로써 화제를 모았다. 93년 ‘사법파동’ 땐 ‘평판사 회의’ 설립을 주도하고 김덕주 당시 대법원장에게 사법개혁 건의서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강금실 카드에 대해 여당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송영길 이종걸 의원 등 법조인 출신 민주당 의원들은 당선자 시절 노대통령을 만나 반대의 뜻을 완곡히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그렇다면 검찰개혁을 하지 말란 얘기냐”면서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앞서 당선자 시절 노대통령을 독대한 민주당 함승희 의원도 “강금실 장관 카드는 검찰을 충격에 빠뜨릴 수 있다고 건의했으나 오히려 노대통령에게 설득당했다”고 말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다. 여전히 강금실 장관 임명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의원들이 포진해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강금실 장관의 법조 경력이란 것은 한마디로 말해 ‘악으로, 깡으로’가 아니냐”면서 “법사위 보고 때 강장관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를 것”이라고 잔뜩 벼르고 있다. 강장관을 인정하기 싫다는 얘기였다.

    반면 재야 법조계에서는 강금실 장관 임명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법적으로 검찰청은 법무부의 하급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처럼 법무부가 검찰에 의해 장악된 곳은 드물다”면서 “강금실 장관 임명은 법무부와 검찰을 분리시켜 각각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학계의 오랜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환영했다.

    강장관은 이런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취임 직후부터 법무부 개혁 방안을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강장관은 2월27일 취임사에서 법무부를 전문행정기관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법무부의 역할은 법의 집행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인권보호, 출입국 관리 사무와 난민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등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강장관은 이어 법무부의 일부 참모진을 검사가 아닌 일반 행정관료로 대체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동안 검찰에서는 동기생 중 선두를 달리는 그룹들이 법무부 파견 근무를 하는 게 관행이었다. 가령 검찰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던 검찰국 검찰1과장은 ‘검찰의 황태자’로 불렸고, 1년 정도 근무 후에는 서울지검의 주요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검찰1과장을 역임한 간부들은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정권이 바뀌어도 적어도 검사장급 이상은 승진이 보장됐다.

    개혁 특명! 강금실·김두관 투톱 띄웠다

    2월27일 발표된 신임 각료 가운데 여성장관 4명이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강금실 법무, 지은희 여성, 김화중 보건복지, 한명숙 환경부 장관(왼쪽).2월27일 오후 김두관 행자부 장관(왼쪽)과 고건 국무총리가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당선자 시절 노대통령을 만나 검찰개혁안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진 한 변호사는 “88년 무렵 법무부에서 근무할 때 범죄인인도법을 제정하면서 만나본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법무부 관계자들은 한 분야에서 10년, 20년씩 근무하고 있었다”면서 강장관의 방침을 환영했다. 지금처럼 법무부 근무가 출세 코스가 돼서는 안 되고, 평생 법무부에만 몸담을 각오가 돼 있는 검사들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러나 강장관의 법무부 개혁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법무부에서 검사들을 내보내는 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법무부의 검사장급 자리도 없어지고, 이는 검찰로 파급돼 검찰에서도 검사장급 보직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당연히 예상되는 검찰의 반발을 어떻게 추스를지 관심사다. 당장 검찰 인사위원회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시민단체에서는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그 사람들이 검찰에 대해 뭘 아는데”라는 냉소적인 분위기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인권단체 간부의 법무부 인권담당관 영입, 대검 감찰부장에 외부인사 영입을 통한 강력한 내부 사정 등 재야 법조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각종 개혁 방안을 실천해가는 과정에서 더 많은 반발이 예상된다. 강장관이 이런 난관을 뚫고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빈농의 아들, 학업 포기, 시민운동, 투옥 등 김장관의 인생역정은 비주류의 전형이다. 과거 노대통령이 걸어온 길과 흡사하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도 빼다 박았다. 도전적인 실험정신도 두 사람이 공유하는 트레이드마크. 그래서 김장관에게 붙여진 별명이 ‘작은 노무현’이다.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정치적 지향점이 비슷하다. 노대통령이 지나온 길에 김장관이 있고, 김장관이 가는 길에 노대통령이 숨어 있다.

    95년 지방선거에서 전국 최연소 군수로 당선된 김장관의 취임 일성은 “내게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인사원칙이었다. 그 직후 세상물정 모르고 돈을 들고 찾아온 부하직원은 곧바로 인사조치됐다. 노대통령은 지난해 연말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의 당선 일성과 김장관의 소신행정은 닮은꼴이다. 96년 9월, 김두관 남해군수는 군청 기자실을 폐쇄했다. 신문 홍보비(촌지)와 계도지 구독도 중단시켰다. 당연히 언론의 반발이 뒤따랐다. 김장관의 한 측근의 기억이다.

    “10여개 언론이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사회면에 비판기사를 게재했다.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군 관계자들이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김군수는 ‘불의한 언론과는 타협할 수 없다’고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뚝심의 김군수는 언론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지난해 대선 때 노대통령은 특정언론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선거를 치렀다. 측근들이 ‘화해’를 요청했지만 노대통령은 이를 뿌리쳤다. 노대통령과 김장관이 벌인 언론전쟁의 전략과 전술은 마치 한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흡사하다. 95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김장관은 빈털터리였다. 이때 그의 선거자금은 대부분 농민운동을 했던 동지와 개혁을 바라는 일부 젊은 유권자들의 5000원 내지 1만원 ‘정성’이 전부였다. 김장관의 한 측근은 “지난 대선 때 노사모를 중심으로 물결쳤던 희망돼지의 원조가 바로 95년 남해선거”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행자부가 지방분권과 행정개혁의 선봉에 서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대선공약인 행정수도 이전도 행자부 몫이다. 문제는 누구를 ‘사령탑’으로 앉히느냐는 것. 인수위 및 측근들은 원혜영 부천시장, 테크노크라트 그룹 및 행정 고위 관료 등의 이름을 거론했지만 노대통령은 의중을 밝히지 않았다. 1월 초 노대통령은 몇몇 측근과 김장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지나가는 말로 “김(두관)군수님, 행자부 장관 후보로 추천이 제일 많이 들어오대요”라고 말했다. 1월20일, 노대통령은 김장관을 따로 불러 지방분권과 행정개혁 방안 등에 대해 2시간30분 동안 비밀 테스트를 실시, 발탁을 암시했다.

    위기도 있었다. 인선 막판 고건 국무총리가 ‘지나친 파격’이라며 김장관 앞길을 막아섰다고 한다. 노대통령의 핵심 측근 A씨도 “당선자는 혜영이(원혜영)를 좋아한다. 두고봐라. 혜영이가 중용될 거다”라며 바람을 잡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행정개혁에 그(김두관)만한 적임자도 없다”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고 한다. 김장관에 대한 노대통령의 믿음은 2월27일 춘추관에서 재확인됐다. 기자들이 김장관 발탁을 문제 삼자 노대통령은 “지방자치의 오리지널 모범을 보여준 사람으로 여러 차례 검증되었으며 뜻을 가지고, 생각을 가지고 발탁했다”고 절대적인 신뢰를 표시했다.

    노대통령은 김장관을 지방분권과 관련해 확실한 경험과 비전을 가진 개혁가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이 장관의 발탁 배경을 이처럼 장황하게 설명한 적은 거의 없다. 김장관과 노대통령이 공유하는 공통의 코드는 ‘지방분권’이다. 김장관은 행정개혁과 지방분권이라는 행자부 역할 가운데 지방분권에 우선 순위와 무게를 둔다. 노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다. 김장관은 장관 발탁 직후 한 인터뷰에서 “행자부가 개혁대상이지만 개혁주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행자부는 지방분권화의 본부이자 사령탑”이라는 게 김장관의 지론이자 신념이다. 김장관은 “지방분권화와 행정개혁이라는 시대과제에 대해 행자부 공무원들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는 희생정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

    “행자부 소속 공무원들의 자질은 우수하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가는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나 국민이 요구하기 전에 미리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행자부 개혁의 1차 목표는 이런 마인드로의 전환이다.”

    김장관은 교육을 통해 공무원들의 이런 인식을 바꿀 예정이다. 과거 뜬구름 잡듯 형식적으로 진행됐던 교육 프로그램은 버리고, 실사구시형 새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할 예정이다. 조용한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런 장관을 맞는 행자부는 기대감보다 당혹감이 더 커 보인다. 한 관계자는 “민선 광역단체장들이 기초단체장 출신인 젊은 장관과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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