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北, 히든카드 더 남았나

NPT 탈퇴·미사일 실험 등 연일 초강수 … 미국과의 협상에서 기선제압 노림수

  • 이기동/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geedong@hotmail.com

    입력2003-01-16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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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히든카드 더 남았나

    한미 외무당국자 만남

    북한은 1월10일 정부 성명을 통해 1993년 6월11일 북미 제1단계 4차 고위급 회담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기간만큼 일방적으로 임시 정지키로’ 합의한 핵확산금지조약(이하 NPT) 잔류 결정을 포기하고 NPT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또 최진수 주중 북한대사는 다음날인 11일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사일 발사 임시 중지 조치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물론 ‘탈퇴 선언 이후 90일이 지나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NPT 규정과 93년 탈퇴 선언 이후 북한은 ‘특수 지위’를 누려왔기 때문에 탈퇴 효력이 즉각적으로 발생한다는 북한의 주장 간에 해석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쨌든 북한의 NPT 탈퇴 선언과 미사일 실험 재개 의사 표명은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美, 군사적 해결 선택 않을 것’ 판단한 듯

    북한의 탈퇴 선언은 켈리 미 특사의 방북 이후 야기된 북한의 핵개발 시인 파동과 그 후 북한이 취해온 일련의 핵동결 해제 조치에 대해 ‘맞춤형 봉쇄’로 대응하겠다는 미국의 강경 입장이 한·미·일 고위대북정책협의회(TCOG)를 계기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이후에 나온 것인 데다 파월 미 국무장관이 북한에 대해 공식적인 안전보장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 직후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북한의 의도를 두고 국제사회의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미묘한 시점에 북한은 왜 NPT 탈퇴라는 초강수를 던졌을까. 더구나 줄곧 미국과 대화와 협상의 문호를 열어두고 있던 북한이 미국으로 하여금 오히려 그 문호를 더욱 굳게 닫도록 명분을 제공할 수 있는 조치를 단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현 정세에 대한 북한의 세 가지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북한이 초강수를 내밀더라도 미국이 군사적 해결 방식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 기저에는 북핵 문제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상정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나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걱정하는 한국 정부의 반발 등이 있을 것이다. 둘째, 핵 봉인시설 해제 및 사찰단 철수 등 북한이 취한 일련의 조치에 대한 미국의 대응 태도를 감안할 때 미국은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다. 셋째, 미국이 대화를 통한 해결 방식으로 가닥을 잡은 이유를 이라크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시간 벌기로 판단, 미국과의 ‘핵 테이블’을 계속 유지시킬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NPT 탈퇴 선언을 통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향후 예상되는 미국과의 대화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당장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될 경우 지금까지 북한이 취해온 일련의 핵동결 해제 조치의 복원, 미국 정부가 요구해온 핵개발 프로그램의 폐기방법, 그리고 중유 공급 재개 등이 대화 의제로 설정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지향적 의제들은 북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뿐만 아니라, 결국 시간만 끄는 대화에 그칠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NPT 탈퇴라는 극약 처방을 사용해 대미 협상 의제를 하나 더 추가한 다음, 향후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 주 의제를 북한의 NPT 복귀와 불가침조약을 포함한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조치 쪽으로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93년에 NPT 탈퇴를 통해 북미 협상의 주 의제를 핵사찰 문제에서 NPT 복귀 문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이렇게 하여 북한은 핵동결 해제 조치 복원, 제네바합의로의 복귀와 같은 과거지향적이고 복잡한 경로보다는,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는 대신 북미 수교의 전 단계인 미국으로부터의 체제안전 보장을 맞교환하는 일괄타결식 단순경로로 미국을 끌어들이려는 것 같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이 탈퇴 성명에서 밝힌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담보협정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조·미 사이에 별도의 검증’이라는 대목은 핵문제를 다자적 관계가 아닌 미국과의 양자관계에서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핵 없다면 핵사찰 수용도 손해 안 보는 장사

    그렇다면 북한의 핵사찰 수용이 북한에게는 모험이 아닐까. 만일 북한이 핵개발을 하지 않았다면 북한으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 반대로 미국 정부가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북한이 1, 2개의 핵무기를 이미 개발했다면 북한에게는 큰 모험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할 때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첫째, 과거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개발은 성공한 이후 그 흔적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둘째, 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은 도중에 포기하고 그 시설을 완전히 철거했다. 셋째, 최악의 경우 핵개발 사실이 발각되더라도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마당에 불리할 것이 없으므로 완성된 핵무기의 폐기를 조건으로 미국과의 수교를 보장하는 또 다른 협상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번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미국은 IAEA와 안보리를 통한 다자적 접근과 기존의 북미 채널을 통한 양자적 접근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자적 접근에서는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과 같은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양자적 접근에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북한은 93년의 경험에 비추어 다자적 압력이 군사적 해결을 배제할 경우 그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미국과의 직접 담판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서 북한은 1월20일부터 열기로 한 3차 남북적십자실무접촉과 21일부터 개최하기로 합의한 9차 장관급 회담 등 남북회담에 성의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회담 테이블에 앉은 우리 정부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로서는 핵문제가 갈수록 악화되는 국면에서 이를 무시한 채 회담에 적극 나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남북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는 핵문제 해결의 가닥이 잡힐 때까지는 당분간 기존의 합의 이행을 점검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다. 한편 북한은 각종 남북회담에서 ‘민족공조’ 요구의 강도를 높여 올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핵문제만큼은 남북협력이 불가능하다는 확고한 원칙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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