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9

2016.08.03

안보

北엔 미소, 南엔 냉랭 中 ‘기획외교戰’ 시작

은밀하게 北 지원해 제재 무력화…南에 장기적, 지속적으로 간접 보복할 것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07-29 16: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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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미군의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대북제재를 풀면서 대남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급속히 현실화하고 있다. 북한은 끌어안고 한국엔 냉랭한 중국 측의 급격한 태도 변화를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7월 하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연례 외교장관 회의가 주 무대였다. 국내 언론들은 라오스에서 중국이 보인 남북한 차별대우 소식을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뤘다.

    7월 23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ARF 참석차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할 때 리진쥔(李進軍) 북한 주재 중국대사가 주북한 라오스대사와 함께 이 외무상을 배웅했다. 이 외무상이 중국을 정식 방문하는 것도 아닌데 주북한 중국대사가 배웅했다는 것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4일 이 외무상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베이징에서 라오스로 가는 중국 둥팡(東方) 항공편에 올랐다. 이들은 기내에서 6시간 반 동안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이 비엔티안에서 머문 숙소도 같은 호텔이었다. 



    北과 친밀 과시, 南엔 외교적 결례

    7월 25일 정오쯤 이 외무상과 왕 외교부장은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 회의장에서 양자 회담을 했다. 당시 모습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왕 외교부장이 미리 회담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 외무상이 오자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언론 앞에서 포즈를 취한 뒤 왕 외교부장은 이 외무상의 등에 오른손을 얹으며 정겨운 모습으로 함께 입장했다.

    그런데 비공개로 진행되는 북·중 회담을 앞두고 중국 외교부 측이 회담장 취재를 나온 한국 기자들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회담장 모두발언 취재를 허용한 것이다. 북한이나 중국이 한국 언론의 북·중 회담 취재를 허용한 것은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언론에 공개된 회담에서 왕 외교부장은 5월 북한 7차 당대회 이후 취임한 이 외무상을 축하하면서 “중·조(북·중) 관계 발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용의가 있다. 중·조 관계를 비롯한 공동 관심사인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 외무상은 “왕 외교부장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위해 축전을 보내준 데 대해 매우 감사해 마지않는다”며 “조·중 친선을 위해 앞으로 적극 협력하는 외교관계를 맺고 싶다”고 화답했다. 축전은 7월 11일 북·중 우호조약체결 55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회담이 끝난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단 대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북측 인사는 기자들에게 “이번 접촉은 두 나라 간 정상적인 의사소통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며 “두 나라 외무상이 조·중 쌍무관계 발전 문제를 토의했다”고 밝혔다. 왕 외교부장도 “이 외무상과의 회담이 어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좋았다(good)”고 답했다. 이 외무상이나 왕 외교부장 모두 회담 결과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다.

    북한과 중국이 ARF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한 것은 2년 만이다. 2년 전인 2014년  8월 미얀마에서 열린 ARF에서는 이수용 당시 외무상과 왕 외교부장이 회담을 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북·중 외교장관 회담이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양국 관계가 좋지 않았던 탓이다.



    지자체 행사 방문 거부, 화장품에 딴지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은 미국을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7월 26일 회담장에서 이 외무상은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을 정면 비난했다. 주요 발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자체가 미국에 의해 이제는 그저 하늘로 날아간 것이나 같게 됐다.” “우리가 추가 핵실험을 하는가 마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 “미국은 몸서리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 외무상은 특히 “미국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다른 해상 분쟁 문제에도 제멋대로 끼어들어 이 지역 정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하며 중국을 응원했다.

    북한에게 이처럼 친밀하던 왕 외교부장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는 차갑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북·중 회담 하루 전인    7월 24일 밤에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 외교부장은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왕 외교부장은 “최근 한국 측 행위는 양국 상호 신뢰의 기초를 해쳤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국 측이 식지 않은 양국 관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실질적인 행동을 취할 것인지 들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왕 외교부장의 발언에 윤 장관은 고사성어까지 써가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피력했다. 추신지불(抽薪止沸·장작불을 빼면 물을 식힐 수 있다), 전초제근(剪草除根·풀을 없애려면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을 인용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근본적인 문제고, 이 근본적 문제를 없애려면 사드 배치가 불가피하다고 비유한 것이다.

    당초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언론 공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추진됐지만, 회담 직전 중국 측이 언론 공개를 요구하면서 회담 첫 부분이 공개되고 한국 취재진의 규모도 큰 폭으로 허용됐다고 한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특히 왕 외교부장이 윤 장관의 발언 도중 불만이 있는 듯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괸 모습을 보여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불쾌감을 한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중국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불만은 한중 교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7월 27일 대구에서 열린 치맥페스티벌에는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의 공식사절단이 참여할 예정이었다. 칭다오와 대구는 1993년 12월 자매결연을 해 올해로 23년째를 맞았다. 그런데 22일 칭다오시 대외교류 담당 실무진이 갑자기 대구시에 전화를 걸어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며 치맥페스티벌 방문 일정을 취소한다고 알려왔다. 또 8월 1일로 예정됐던 권영진 대구시장 등 우리 대표단의 칭다오국제맥주축제 참가도 함께 취소했다.

    대구시에 이어 강원도가 추진하는 행사도 차질을 빚었다. 강원도는 8월 7일부터 14일까지 중국 파워블로거 초청 팸투어(사전답사여행) 행사를 계획했다. 중국 파워블로거 1명과 연예인 1명이 철원과 인제, 홍천 등 강원 여행지를 돌며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는 행사였다. 하지만 중국 파워블로거 측으로부터 사드 배치 문제로 난처하게 됐다며 미뤄달라는 연락이 오면서 이 행사 역시 취소됐다. 강원도는 올해 중국을 제2 내수시장으로 개척하고자 관련 예산을 확보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대구시 역시 올해를 ‘대구·경북 방문의 해’로 정해 많은 중국인이 찾아오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측 움직임에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 결정 후폭풍은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 화장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신화왕과 중국중앙(CC)TV 등 중국 관영매체들은 “한국산 화장품이 검역검사에서 불합격하거나 불량품을 밀수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만큼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거나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서울 명동 등을 찾아 화장품을 사오지만 이 제품들은 품질을 믿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은 중국 중앙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베이징은 한중 양국 관계와 관련된 각종 현황 자료를 조사했을 테고, 이를 토대로 압박 수단을 단계적으로 한국에 적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일각에선 사드 배치 결정 때문에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 보복을 하리라는 예측은 기우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물론 중국은 한국과 교류 단절 식의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 대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사드 배치 결정에 불만을 드러내려 할 것이다. 최근 보여준 것처럼,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를 취소하거나 한국산 화장품에 대한 문제 제기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북, 정세 이용 협박과 선전전 개시

    이는 북·중 관계에도 적용된다. 중국은 북한 핵을 용인하거나 북한의 잘못을 옹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교묘하게 피하는 방식으로 북한과 경제교류를 더욱 활성화할 개연성이 크다. 결국 올해 초 북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가 ‘가장 강한 강도’라며 마련한 대북제재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후견국으로 불리는 중국이 은밀하게 북한을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라오스에서 남북을 상대로 철저히 계산된 외교적 행보를 하며 그런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이런 가운데 북한 측 동향도 심상치 않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과 동남아지역 주재 재외공관 측에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정찰총국 등 북한 대남공작기관들이 중국과 동남아지역에 10여 개 테러 실행 조를 파견해 우리 국민을 상대로 테러를 준비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이는 4월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 13명 집단탈출 사건과 관련해 보복테러를 감행하라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전해졌다.

    북한은 또 처음으로 한강을 이용해 대남전단을 유포했다. 7월 27일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7월 22일 오전 한강으로 대남전단이 포장된 비닐봉지 수십 개를 띄워 보낸 것을 발견해 수거했다”고 밝혔다. 전단에는 무수단 미사일을 이용해 남한을 공격하겠다는 협박,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북한의 전쟁 승리 기념일이라고 우기며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북한은 사드 배치 결정에 분노한 중국을 등에 업고 추가 도발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 속에서 혹독한 시험을 치르는 한국의 ‘사드 외교’는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활로를 찾을 수 있을까. 최고통치자 간 소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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