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3

2002.09.26

자원봉사도 이젠 4强이다

엄청난 수해 겪으며 전국민 대대적 참여 … 나눔과 희생의 기쁨 흐르는 거대한 ‘시민혁명’

  •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5-23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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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봉사도 이젠 4强이다
    ‘인간 그린벨트’ 자원봉사 열풍이 불고 있다. 그간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자원봉사 문화가 이번 수해를 통해 빛을 발하고 있다. 규모와 열기 면에서 이전의 재난사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 6월 월드컵 당시의 전 국민적 열광의 기운이 수재현장으로 옮겨간 듯한 분위기다.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할퀴고 간 뒤인 9월1일부터 13일 까지 복구작업에 참가한 순수 민간 자원봉사자는 63만1630명에 이르고 있다.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이 열기는 추석 이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cafe.daum.net/ Typhoon RUSA) 등을 통해 ‘자봉(자원봉사)’ 열기가 확산되고 있는 데다 겉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수해현장은 아직도 신음중이기 때문.

    우리 사회 한편에서는 아직도 부동산투기 등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처럼 남을 위한 희생정신이 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인의 자원봉사 의식 및 활동현황’을 분석중인 자원봉사단체 볼런티어21(이사장 이명현)은 올들어 9월14일까지 20세 이상 성인의 25%가 1회 이상 봉사활동에 참여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단체 이강현 사무총장은 “3년 전 15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4%가 연간 1회 이상, 8%는 월 1회 이상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올해는 월드컵과 수재 등을 겪으면서 자원봉사자들이 크게 늘었고, 몇몇 지역 조사 결과 예년보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월드컵 때는 1만6196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매끄러운 경기운영을 위해 묵묵히 일해온 이들의 존재가 특히 빛났던 때였다.



    오염된 사회 정화시키는 ‘인간 그린벨트’

    자원봉사도 이젠 4强이다
    재난현장이나 월드컵 등에서의 빛나는 활동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이뤄진 자원봉사 활동이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화장실 지킴이’ ‘숲 해설가’ ‘조선족동포 도우미’ 등 자원봉사 영역은 실로 다양하다.

    90년대 초부터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쓰레기 줄이기 운동, 교복 재활용 운동 등을 벌여왔던 이강숙씨(59·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월드컵 기간에 서울 시내 곳곳의 화장실을 돌며 ‘화장실 깨끗이 쓰기’ 캠페인과 화장실 청소에 나섰다.

    “화장실은 우리의 얼굴입니다. 국가의 문화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고요. 나라의 얼굴이 더러워서야 되겠습니까.”

    이씨가 화장실문화시민연대 회원들과 지하철역 등의 화장실을 돌며 붙인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란 문구가 담긴 스티커는 화장실 문화를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월드컵 이후 이씨는 장애인들의 ‘도우미’로 나섰다. 노원구 쉼터요양원에서 뇌성마비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것. 그는 “주말에 장애인들을 돌보면 1주일 동안 쌓인 피로가 깨끗이 가신다”고 말했다.

    전문영역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도 돋보인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한대웅씨(53·성남시 수정구 신흥동)는 98년 국민대에서 자연환경안내자 과정을 이수한 뒤 ‘숲 해설가’로 전국의 휴양림을 돌며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회사원, 대학교수, 가정주부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전국의 산과 들에서 한씨처럼 ‘숲 해설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숲을 찾은 사람들에게 곤충과 동물, 계곡과 물, 신선한 솔바람 등 숲속에서 벌어지는 숱한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한씨는 “등산로에 떨어진 오물을 청소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시민들에게 가르치면서 느끼는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부 공무원 출신인 이종만씨(66)도 전문지식을 활용해 자원봉사에 나선 경우. 김씨는 임금을 착취당하고 산재 피해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중국동포 노동자들의 ‘해결사’ 노릇을 하고 있다.

    96년 공직을 은퇴한 뒤 등산 여행 등 취미생활을 하며 소일하던 김씨가 중국동포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2000년 5월 그들의 인권 실태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김씨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며 “경제적인 여유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집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어 자원봉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노동부 퇴직공무원 7명과 함께 지금까지 중국동포의 민원 1000여건을 해결했고, 중국동포의 밀린 임금을 받아준 것도 10억원이 넘는다.

    한국재활복지대 이성록 교수(46·재활복지과)는 이렇듯 소중한 자원봉사자들을 두고 “오염된 사회에 산소를 제공하는 인간 그린벨트”라고 말했다.

    자원봉사도 이젠 4强이다
    “자원봉사자의 논리는 나눔의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공동체의 논리입니다. 이는 사실 적게 투자하고 많이 얻으려는 시장경제 논리와는 어긋납니다. 그러나 사회가 윤택해지려면 그런 인간적인 면이 밑바탕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만들어 사람들이 숨쉴 공간을 제공하는 이들이 바로 자원봉사자들인 것입니다.”

    비록 봉사자들은 무임금노동을 하고 있지만 그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닐까. 볼런티어21의 계산에 따르면 99년 기준 2조4500억원이었다. 이는 자원봉사자 참가수와 시간당 평균임금 등을 고려한 수치로, 당시 국내총생산의 0.6%. 선진국의 2~3%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자원봉사 열풍이 지속된다면 그 경제적 가치도 한층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최근의 자원봉사 열풍은 이전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참여동기가 바뀌었고 참여계층이 다양해졌다.

    단순히 이웃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에 참여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자신을 위해’ 봉사활동에 나서는 이가 많아졌다. 이성록 교수는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봉사에 나설 경우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시작한 봉사라야 지속성을 가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교수는 ‘자신을 위해’ 봉사활동에 나서는 20, 30대 봉사 참가자들이 자원봉사 열풍의 주역이라고 풀이했다.

    따라서 이런 봉사자들은 계기만 주어지면 혼자라도 현장으로 달려가는 적극성을 보인다. 이번 수해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나홀로 봉사자’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그래선지 이들에게 참가동기를 물으면 한결같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우리 사회 ‘엄청난 에너지’ 체계적 대책 세워야

    자원봉사도 이젠 4强이다
    참여계층의 다양화도 열풍에 한몫했다. 80년대 후반에는 50대 주부들과 화이트칼라가 자원봉사자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지만 요즘엔 남녀노소, 빈부, 직종이 구별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서비스 대상이었던 블루칼라나 노인도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

    지금의 자원봉사 열풍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성록 교수는 “자원봉사를 강렬하게 경험한 이들은 그 체험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게 된다”면서 “다음의 국가 대사나 위기에도 이들은 다시 참가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상균 서울대 교수(56·사회복지학과)는 요즘의 자원봉사 열풍을 ‘불안한 출발’로 보고 있다. 자원봉사 열풍은 시민사회가 성숙돼갈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반길 만한 일이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빈부격차 등 사회적 명암이 너무 뚜렷하기 때문에 그 한계도 뚜렷하다는 것.

    자원봉사자들은 이런 한계를 인정한다고 해도 지금의 열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봉사자들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하고, 봉사자들을 체계적으로 교육시키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강릉시자원봉사센터 서성윤 소장(44)은 “봉사자들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왔다’고 말하지만 그 말 속에는 명분과 사회적 인정이 뒷받침될 때라는 단서가 붙게 마련이다”면서 “언론 등을 통해 이들을 ‘중요한 사람들’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는다면 그 힘은 몇 배로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고 필요할 경우 적절하게 배치하는 노력도 계속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봉사자들은 마음만 앞서 자칫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봉사자 교육과 배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시·군·구 지자체에 자원봉사센터가 설치돼 있고, 민간 자원봉사단체도 많지만 대부분은 인력과 예산 부족이라는 이중고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김상균 교수는 “현재의 열풍이 하나의 시민사회 문화로 발전하려면 밝은 면을 더 확대시키려는 의식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최근의 기부문화 시민운동 인권운동이 열매를 맺으면 자원봉사가 지금보다 더 우리 사회에 굳건히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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