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9

2002.08.29

‘삽화’로 풍류를 즐길까 ‘주석’으로 해설의 묘미 맛볼까

  • 입력2004-10-04 14: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삽화’로 풍류를 즐길까 ‘주석’으로 해설의 묘미 맛볼까
    최근 출판계에서 저작권이 소멸된 책들을 재출간하면서 초판 때의 삽화를 게재하는 ‘복고풍’이 유행이다. 황금가지 출판사의 셜록 홈즈 전집은 1890년대 잡지 ‘스트랜드’에 사용했던 삽화를 넣었고,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레 미제라블’(6권) 완역판도 프랑스의 유그판에 실렸던 300여장의 그림을 모두 담았다. ‘레 미제라블’의 초판은 삽화가 없었으나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다시 에첼판을 내면서 에밀 비야르의 목판화 200점을 수록했다. 이후 삽화들을 더욱 보강해 재출간한 것이 유그판이다.

    한국에서는 개화기 소설부터 삽화를 사용했고 김기창, 김환기 등 대가들도 기꺼이 삽화를 그렸다. 이 전통은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으나 동양화 붐으로 화가들의 몸값이 크게 높아지면서 출판사들이 삽화를 포기했다. 그나마 삽화의 명맥을 이어온 신문·잡지의 연재소설도 단행본 출간 때는 그림을 빼고 편집했다. 결국 화가들은 소모적인 삽화작업을 기피하고, 출판사들은 그림보다 사진 쪽을 선호하면서 삽화가 있는 소설은 독자들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삽화의 전통이 부활할 기미가 보인다. 근래 삽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이 조성기씨의 ‘삼국지’(열림원)다. 7~8쪽 걸러 실려 있는 임향한씨의 삽화는 어린이책 분위기가 나지만 장면마다 상황묘사가 충실해 본문을 잘 뒷받침하고 있다.

    김탁환씨의 역사소설 ‘나, 황진이’(푸른역사)와 동양화가 백범영씨의 그림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3~4쪽마다 등장하는 60여점의 수묵화 삽화만 따로 놓고 보아도 이야기의 흐름이 읽힐 만큼 섬세하게 소설을 따라잡는다.

    ‘나, 황진이’는 철저한 고증으로 쓴 역사소설이다. 김탁환씨는 ‘황진이 소설’의 모태인 이태준의 ‘황진이’를 넘어서기 위해 각종 사료를 추적해 새로운 황진이 상을 정립했다. 상사병에 걸린 청년의 죽음으로 황진이가 기생의 길을 택했다는 억측(이태준 소설을 통해 일반화된 이야기) 대신 아전-기생 집안 출신으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기생이 됐다는 사료에 나타난 사실들을 취했다. 이 소설은 황진이가 1인칭 화자로 등장해 서경덕 밑에서 동문수학했던 허엽(허균의 아버지)에게 50년 남짓한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형식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생 황진이 대신 ‘지식인 황진이’를, 뭇남성의 가슴을 설레게 한 여인 대신 ‘서경덕 에콜의 대모’의 모습을 복원했다. 문제는 서화에 능하고 풍류를 알고 아름답기까지 한 이 여인을 어떻게 그릴 것이냐였다. 화가 백범영씨(용인대 교수)는 “황진이의 얼굴이 아닌 분위기를 전하려고 했다. 아무리 잘 그려도 이게 황진이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황진이 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산수화풍의 삽화들로 16세기 조선사회의 풍류를 담은 소설 ‘나, 황진이’. 그러나 막상 두 권의 각기 다른 ‘나, 황진이’ 앞에서 당황하게 된다. 삽화가 충실한 소설 ‘나, 황진이’를 택할 것인가, 창작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600여개의 주석과 관련 문헌 해설이 실려 있는 주석판 ‘나, 황진이’를 택할 것인가.



    확대경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