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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오~ 코리아 마침내 해냈다!

부평고 “스타 산실이라 불러다오”

김남일 이천수 최태욱 ‘히딩크 트리오’ 배출 … 20년 역사에 국가대표 40여명 ‘축구명가’

부평고 “스타 산실이라 불러다오”

부평고 “스타 산실이라 불러다오”
후반 47분 마침내 이천수가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부평고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3000여명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이천수를 연호하기 시작한다.

“이천수! 이천수! 이천수!”

이천수를 외치던 함성은 곧 “16강! 16강! 이겼다! 이겼다!…”로 바뀌어 메아리쳤다.

부평고 2회 졸업생 김승찬씨(46)는 경기 종료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이렇게 내뱉었다.

“가슴이 터질 듯한 전율을 느껴보았는가. 이천수 만세! 김남일 만세! 최태욱 만세!”



6월14일 인천 부평구 부평역 광장. 포르투갈과의 경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역 광장은 ‘대~한민국’을 외치는 다섯 박자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넓은 광장은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붉은색 일색(一色)이었다.

인천은 한국 축구의 고향. 1882년 6월 영국 전함 프라잉 피시호 갑판에서 축구공이 내려진 곳이 바로 인천항이다. 한 시민에게 인천 축구의 산 역사 부평고에 대해 물었다. “김남일, 이천수가 한 골씩 넣을 겁니다!” 대답 대신 응원이 되돌아왔다. 그만큼 지역사회에서 부평고의 위상은 높았다.

노정윤 이상헌 이임생 곽경근 안효연…. 부평고는 20년 축구부 역사 동안 40여명의 청소년대표, 국가대표를 배출했고 17차례나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꼭 국가대표가 아니더라도 이름만 대면 귀에 익은 수많은 스타들이 부평고를 거쳐갔다.

부평고 “스타 산실이라 불러다오”
현재 ‘히딩크 사단’의 부평고 출신은 최태욱 이천수 김남일 등 3명이 포진해 대표팀 내 최대 고교 ‘파벌’을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대표 박원홍 이현민 김재성(이상 3학년)이 부평고 재학생이다. 이들은 99년 부평고를 시즌 3관왕으로 이끈 ‘3인방’ 최태욱 이천수 박용호에 빗대 ‘신(新)3인방’이라고 불린다.

버스가 부평고 입구에 이르자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거센 함성이 들려왔다. 학교 정문에 걸려 있는 대형 현수막에는 부평고 출신들을 응원하는 격문이 내걸렸고, 운동장 한쪽에선 바비큐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선배들은 맥주를, 솜털이 보송보송한 신입생들은 음료수를 마시며 긴장을 달랬다.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던 15회 졸업생 설필한 송채면 김기철씨는 “이천수가 큰일을 낼 것”이라며 한 목소리로 “부평고 파이팅”을 외쳤다. 졸업 후 20여년 만에 처음 만난 동문들도 있었다. 졸업하고 뿔뿔이 헤어졌던 고교 친구를 4명이나 만났다는 5회 졸업생 김필호씨는 “3명의 후배들이 지더라도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평고 “스타 산실이라 불러다오”
부평고의 축구 역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2년 창단됐으니 이제 겨우 약관(弱冠)의 나이를 맞이한 셈이다. 중동고의 74년, 동북고의 49년 역사와 비교하면 ‘축구명가’라고 부르기엔 조금 어색할 정도. 82년 창단 당시 김남일 이천수의 모교인 부평동중 선수들은 지역에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가 없어 졸업 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집을 떠나 거제고에서 축구를 해야 할 처지였다. 이때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안병원씨(세림병원 원장) 등 지역 유지들이 부평고 축구부 창단을 지원, 축구명가의 역사가 시작됐다.

“창단 초기부터 부평고 축구부는 매우 강했습니다. 창단 2년째인 84년 전국대회 2관왕을 차지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뒤 인천의 유능한 선수들이 모두 부평고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선수들이 모여 훌륭한 지도자에게 교육을 받으니 성적이 좋을 수밖에요. 태욱이 천수가 뛰던 99년엔 우리를 이길 팀이 한 곳도 없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인천의 최고 명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평고 김실 교장의 자랑이다.

부평고 “스타 산실이라 불러다오”
현재 부평고에 재학중인 선수들도 고교 최강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부평고는 4월5일 백운기대회 결승전에서 강릉 제일고를 맞아 좌천수-우태욱이 이끌던 99년 차지한 백운기를 3년 만에 되찾아왔다. 스트라이커 박원홍의 2골을 비롯해 후반에만 3골을 몰아쳐 3대 1로 승리했다. 지난해 12월 부평고에 부임한 임종헌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 4개월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임감독은 1997년부터 3년간 모교인 부평고 코치로 재직하며 이천수 최태욱 등을 길러내 부평고 축구부의 재도약을 이끈 주인공이다. 2000년부터는 고려대 코치로 이천수를 2년간 더 가르쳤다. 임감독은 부평고 창단멤버로 고려대, 프로축구 일화, 현대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태극마크를 달기도 했다. 임감독은 “99년 고교 3관왕을 달성할 때처럼 특출한 선수들은 없지만 국가대표팀처럼 주전과 비주전의 전력 차가 거의 없는 두꺼운 선수층을 갖고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부평고 “스타 산실이라 불러다오”
이천수와 최태욱을 직접 지도한 임감독에 따르면, 두 선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라이벌 의식이 대단했다. 승부 근성과 센스가 뛰어난 이천수는 최태욱보다 스피드가 뒤지는 것을 참지 못해 밤늦게까지 야간훈련을 했고, 최태욱은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이천수에게 질 수 없다며 함께 훈련에 나섰다고 한다. 두 선수의 ‘트레이드마크’인 결코 물러서지 않는 근성, 쏜살같이 터치라인을 돌파하는 스피드, 한 템포 빠른 전광석화 같은 슈팅은 이렇게 길러진 것이다.

‘압박축구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김남일은 고교시절부터 ‘독종’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플레이는 투박했지만 소리없이 남들보다 두 배를 뛰고 마크를 지시받은 선수를 놓치는 법이 없어 감독이 특히 좋아하는 선수였다. 히딩크 감독이 김남일을 소개하면서 ‘진공청소기’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탁월한 그의 압박수비는 부평고 시절부터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14일 밤 부평고 운동장에 모인 재학생 졸업생들의 환호와 함성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후배들은 삼삼오오 ‘대~한민국’을 다시 외치기 시작했고, 선배들은 “16강전에선 부평고 출신들이 골을 넣을 것”이라며 기쁨을 술자리로 이어갔다. 부평고 개교 이래 벌어진 가장 큰 축제는 밤새도록 계속됐다.

그러나 부평고 축구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동문들은 “아스팔트나 다름없는 맨땅에서 아슬아슬하게 운동을 하는 후배들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동문회와 후원회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아 축구부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 공중파 방송의 ‘러브하우스’ 프로그램을 통해 낡은 숙소를 고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해낸 국가대표의 산실(産室) 부평고 축구부. 국가대표팀의 쾌거에 기꺼워하며 울고 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주간동아 2002.06.27 340호 (p44~45)

  •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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