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8

2002.06.13

“정연씨 체중 측정한 2명 국내 거주”

현역으로 입대, 보충대 신체검사 후 軍 면제 … 179cm엔 48kg 아닌 45kg이 ‘커트라인’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04-10-11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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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씨 체중 측정한 2명 국내 거주”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병역면제를 둘러싼 ‘진실게임’이 다시 시작됐다. 최근 한 언론은 ‘김길부 전 병무청장이 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측과 이회창 후보 아들 정연씨의 병무비리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진술을 2002년 1월 검찰에 했다’고 보도했다.

    김대업씨(41)는 김 전 청장의 진술을 자신이 직접 들어서 담당검사에게 전해줬다고 밝힌 인물이다. 그러나 담당검사는 김대업씨로부터 그런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의정(醫政)하사관’ 출신인 김씨는 지난 1월 당시 사기죄로 복역중인 수감자 신분이었지만 ‘병무비리 노하우’를 검찰이 인정해 줘 서울지검의 병무비리 수사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병무비리 은폐 대책회의’ 주장은 그것이 사실일 경우 이후보가 밝힌 대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교체되어야 할 사안이다. 거짓일 경우에는 문제를 처음 제기한 측과 이를 정치 쟁점화한 쪽에 그에 상응하는 법적·정치적 책임이 돌아가는 문제다. 그런데 김대업씨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김대업씨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정연씨 병역면제 의혹과 관련, 진실을 말해줄 증인들과 물증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공신력 있는 시민단체와 이 문제를 논의하는 중인데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내가 자료를 제시하면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만약 내가 틀렸으면 구속을 감수하겠다. 그러나 내 얘기에서 책임질 부분이 증명된다면 이후보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 정치인 자제의 병역면제 의혹에 대해서도 함께 거론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와는 별도로 민주당도 이회창 후보 두 아들 병역면제 부분과 관련된 자료와 증언자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업씨가 은폐 대책회의에 참석했다고 언급한 김길부 전 병무청장은 최근 석방됐지만 인터뷰를 거부하고 있다. 또 다른 병무청 고위간부 Y씨는 소재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면제 문제는 이번에도 대선정국의 뇌관이 될 듯하다. 그러나 97년 때와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미 1997~2001년에 걸쳐 걸러진 일이기 때문이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도 이 사안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유력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역풍에 휩싸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연씨가 ‘체중미달이 아닌 불법으로’ 군대를 가지 않은 것을 증명해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주간동아’가 정연씨 병역면제 과정을 구체적으로 추적한 결과 몇 가지 새로운 포인트가 드러나고 있다.

    우선 ‘정연씨는 현역병으로 입대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처음부터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것이 아니라 현역입대 직후 재검을 통해 면제됐다는 것이다. 정연씨는 1983년 3월 서울지방병무청 신체검사에서 현역판정을 받았다. 그는 키 179cm, 몸무게는 55kg으로 나왔다. 체중으로 면제받으려면 179cm의 경우 몸무게 49kg 미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연씨가 정작 군대에 간 것은 이로부터 8년이 지난 1991년 2월11일. 이날 정연씨는 ‘현역’ 신분으로 강원도 춘천의 102보충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입대한 하루 이틀 뒤쯤 ‘신병 이정연’은 춘천병원에서 다시 신체검사를 받았다. 여기서 정연씨는 179cm, 몸무게 45kg이라는 측정 결과가 나와 면제판정을 받고 귀가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황이 사실로 인정되기 위해선 한 가지 필수조건이 따른다. 102보충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부대는 모든 신병에 대해 입대 당일부터 3일에 걸쳐 의무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한다. 여기서 이상이 발견된 신병에 한해서만 춘천병원에 보내 재검사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연씨는 이 부대 입대 직후 춘천병원으로 보내졌으므로 반드시 부대 신검에서 ‘체중 부적격 판정’을 받았어야 한다. 부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남겨둔다고 한다. 90년대 초 병무비리는 일선 군부대가 아닌 신검 병원에서 이뤄지는 것이 통례였다. 따라서 이 부대가 정연씨에 대해 체중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면 정연씨가 불법 면제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고, 그 반대로 부대가 체중정상 판정을 내렸다면 정상인 신병을 재검받게 한 점, 하루나 이틀 만에 체중이 크게 줄어든 점으로 미뤄 불법 면제의 결정적 정황이 된다.

    102보충대 관계자는 “부대 원칙상 신병에 대한 신검기록은 대개 5년이 지나면 폐기 처분한다”고 밝혔다. 문서로 확인할 가능성은 희박해진 셈이다. 그러나 정연씨의 신검을 맡았던 102보충대 관계자는 당시 정황을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춘천병원에서 정연씨의 체중을 측정해 기록해 둔 병역판정부표도 97년 폐기 처분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연씨의 체중 측정-기록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은 아직 생존해 있다. 두 사람이 어떤 증언을 하느냐에 따라 진실게임의 승부는 금세 판가름날 수 있다. 5년에 걸친 병역면제 논쟁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정치권의 한 인사는 “두 사람은 국내에 거주하고 있으며 소재가 파악됐다. 두 사람은 정연씨의 체중 측정-군 면제 경위에 대해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연씨 군 면제에 의문을 갖는 측은 ‘45kg’(정연씨가 춘천병원에서 측정받은 체중)이라는 숫자에 주목한다. 군 면제 기준은 179cm의 경우 49kg 미만이지만, ‘주간동아’가 병무청 관계자를 상대로 확인한 결과 90년대 초 심사관은 측정한 체중에서 3kg을 임의로 더 갖다붙여 판정을 내릴 수 있었다. 고의감량으로 인한 병역기피 의도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따라서 실제로 179cm의 남성이 군 면제를 받아내기 위한 확실한 커트라인은 48kg이 아니라 45kg이었다는 것이다.

    정연씨의 군 면제가 어떻게 결론나느냐는 것은 이회창 후보의 둘째 아들 수연씨에게도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두 형제의 군 면제 과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수연씨도 1989년 7월19일 육군 제306보충대에 현역으로 입대했으나 체중미달로 5급 판정을 받고 귀가 조치됐다. 수연씨의 경우 귀가 이후 특수층 자제 관리대상으로 분류돼 체중 재검사를 받아 4급으로 상향판정 받았다. 공교롭게도 위에서 언급된 ‘3kg 임의상향 조정’에 걸려 그렇게 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수연씨는 90년 1월11일 육군 제56사단에 방위병으로 입대했으나 여기서 또다시 체중 재측정 대상자에 분류돼 다시 체중을 측정, 5급 판정을 받고 90년 1월 군 면제됐다. 정연씨가 45kg의 몸무게로 춘천병원에서 군 면제를 받은 것은 수연씨가 이런 우여곡절 끝에 군대에서 면제된 지 1년 뒤였다.

    83년 신검 당시 55kg이었던 정연씨의 체중이 91년 현역면제 판정을 받을 땐 45kg으로 줄었다가 97년 직장 신체검사에선 다시 58kg으로 늘어난 것은 엄격히 얘기하면 법적·논리적 구속력이 없는 정황증거에 불과하다.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논란’도 사실 본류의 곁가지 사안이다.

    두 아들 병역면제에 대해 이회창 후보는 후보 사퇴의 배수진을 쳤다. 사람들은 분명한 매듭을 원한다. 사안의 핵심은 정연씨의 체중판정 과정에 부정이 개입됐느냐의 여부다. 그것은 정연씨의 체중을 직접 측정한 당사자 두 사람이 증언하면 분명히 가려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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