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4

2002.05.16

나는 ‘나만의 것’을 원한다!

한번 빠지면 탈출 어려운 ‘셀프메이드’… 가구·액세서리는 기본, 맥주까지 만들어 마셔

  • < 구미화 기자 > mhkoo@donga.com

    입력2004-09-30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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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과 똑같은 건 싫다. 나의 손길이 담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만 쓴다.’

    즉석식품과 기성복이 넘쳐나고, 식단도 매일매일 남이 대신 짜주는 시대. 고객이 원하는 것이라면 팔지 않는 게 없는 세상이지만 바쁜 시간 쪼개고 발품 팔아가며 ‘나만의 제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셀프메이드족’이다. 이들은 가구와 액세서리는 물론 맥주와 웨딩드레스까지 손수 만들어 사용한다. 인터넷 동호회를 ‘종족 번영의 발판’으로 삼는 것은 모든 셀프메이드족의 공통점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마약’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셀프메이드족의 세계를 엿본다.

    뚝딱뚝딱 ‘가구의 장인’ - 표석경씨

    나는 ‘나만의 것’을 원한다!
    “기존의 것들은 식상하잖아요.”



    홍대 앞 ‘내가 디자인하고 내가 만드는 가구’ 매장에서 만난 표석경씨(29)는 책장, 장식장, 수납장을 겸한 소파 등을 직접 만들었다. “결혼을 일찍 한 탓에 번듯한 혼수 가구를 마련하지 못했는데 어디서도 살 수 없는 가구들로 집 안을 가득 채웠죠.”

    표씨는 1년 전쯤 기존 제품과는 달리 실용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원하는 크기로 가질 수 있다는 데 매력을 느껴 가구 만들기 인터넷 동호회(www. my-diy.co.kr)에 가입했다. 연회비 5만원에 재료비만 들이면 모든 공구와 제작방법을 제공받고, 전국 11개 작업장을 이용할 수 있다. 이후 일주일에 3일을 홍대 앞 매장에 딸린 작업장에 나와 톱질, 망치질하며 보낸 결과, 이제는 2~3일 만에 서랍장 하나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이런 건 어디서 사나요?” 여섯 가지 색으로 칠한 서랍장을 가리키며 남편의 직장동료가 건넨 한마디에 표씨는 우쭐해지기도 한다. 표씨가 가구를 직접 만드는 데 푹 빠진 또 하나의 이유는 쉽게 변형되지 않는 원목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 문짝, 손잡이 등을 부분개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직접 만들어 쓴다는 건 마약 같아요. 한번 시작하면 직접 만든 게 아닌 다른 건 쓸 수 없게 되거든요.”

    ‘생맥주’는 신선함이 생명 - 전영걸씨

    나는 ‘나만의 것’을 원한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맥주 만들기’ 동호회(cafe.daum.net/ microbrewery)의 최고 연장자 전영걸씨(46)는 자신이 직접 공들여 만든 맥주들로 가득한 냉장고를 열어 보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덴마크산 오디오를 수입·판매하는 ‘벵&올룹센’ 한국 대표로, 사업상 외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세계 곳곳의 맥주를 맛보았다.

    스키, 스카이다이빙,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그는 땀 흘린 뒤에 들이켜는 맥주 한잔의 짜릿함을 사랑하다 보니 맥주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이 됐다. 일반 호프집에서 생맥주 한 모금을 마셔도 혀끝에 닿는 떨떠름함과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으로 신선도를 단번에 알아맞힐 정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맥주를 마셨으니 벌써 30년이 넘은 베테랑이잖아요.”

    그런 그는 지난 1월, 같은 요트 동호회 회원으로부터 맥주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 즉시 맥주보리 농축액과 발효통 등을 구입해 맥주 만들기에 나섰다. 국내에도 간편한 맥주제조기 세트가 판매되고 있지만 전씨는 맥주 원액에 물과 이스트, 설탕 등을 조절해 가며 끓이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즐긴다. 맥주를 만들어 먹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주 정도. 그는 “소독하고, 발효하는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직접 만든 맥주는 신선하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을 낸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맛이 부드러우면서 도수 높은 맥주를 만들어보려고요.” 현재는 맥주보리를 농축한 원액을 수입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원액까지도 손수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오늘 저녁엔 피자 한 판과 신선한 생맥주를 먹어보세요. 정말 끝내줍니다.”

    나는 ‘나만의 것’을 원한다!
    인생에 단 한 번,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순간에 손수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는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직장인 김명옥씨(28)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로, 자신이 입을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있다. 소극적인 성격이지만 인터넷에서 ‘웨딩드레스 만들기’ 동호회(cafe. daum.net/taragae)를 접하고는 그 즉시 회원으로 가입하고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했다. 재봉틀을 전혀 다루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해 벌써 1년이 지났다. 웨딩플래너를 본업으로 하는 동호회원 손윤경씨(35)가 주말마다 한 번씩, 배워두면 다음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꼼꼼히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김씨가 완성한 작품은 아기용 드레스와 결혼식 야외 촬영 때 입을 수 있는 파티복 한 벌. “인내심이 필요해요.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입는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긴 기다림을 참아내고 있어요.” 웨딩드레스 한 벌을 만드는 데 재료비 20만원과 회비 월 2만원이 필요하고, 패턴 연습서부터 어린이용 드레스, 파티복, 웨딩드레스까지 완성하는 데 1년2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김씨는 3개월 만에 완성한 아기용 드레스를 친구의 딸에게 돌 기념 선물로 주었다가 다시 찾아왔을 정도로 애정이 깊다. “첫 작품이라 누구에게도 줄 수 없었어요.”

    현재 파티복을 완성하고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있는 김씨는 사각 네크라인에 레이스로 장식을 더한 심플하고 우아한 웨딩드레스를 마음에 두고 있다. “결혼하면 아이와 똑같은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싶어요.”

    ‘특별한 선물’ 비드 액세서리 - 김미성씨

    나는 ‘나만의 것’을 원한다!
    백화점에서 수십만원 하는 고급 비드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어 착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리, 크리스탈 등 구멍이 뚫린 구슬을 의미하는 비드는 그 모양, 색깔,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삼성화재에 다니는 김미성씨(25)는 2년 전 회사에서 마련한 단기 특강을 통해 비드 액세서리를 처음 알게 됐다. 이후 인터넷을 검색해 이대 앞에서 ‘헤디스 비즈’란 이름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이준희씨의 인터넷 카페(cafe.daum.net/ beadshands)를 통해 비드 액세서리의 화려한 세계를 만났다.

    “매장에 나와 본 뒤 깜짝 놀랐어요. 비드가 이처럼 다양할 줄은 몰랐거든요.” 그때부터 인터넷으로 문의하고, 한 달에 한두 번씩 매장을 방문해 비드 액세서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유난히 핑크색을 좋아하는 김씨는 머리핀,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모두 같은 계열의 색으로 만들어 세트로 착용했다. “비드는 불빛에 반사될 때 정말 예뻐요. 이렇게 세트로 착용하고 회사에 나가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만들어 달라며 조르곤 하죠.” 김씨는 가지각색의 액세서리 세트를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날을 위한 선물로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셀프메이드족의 시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에서 유행한 DIY 가구. 국내에는 외환위기와 함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전해졌지만, 이제는 하나의 취미이자 문화생활로 자리잡았다. 남과 구별되는 독특한 것을 스스로 완성해 가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셀프메이드족에게서는 마니아적 기질이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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