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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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애니는 ‘플래시 대세론’

캐릭터 등 타 분야에 파급 효과 막강… 미·일보다 경쟁력 월등 ‘종주국 부푼 꿈’

  •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입력2004-10-29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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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애니는 ‘플래시 대세론’
    요즘 인터넷 세상의 최대 화두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다. 간단한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그램에 불과했던 ‘플래시’가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양식으로 등장하면서 사이버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

    네티즌들은 풍자적이고 엽기적인 내용이 담긴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이메일로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고, 플래시의 각종 캐릭터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검색 포털사이트에서 ‘플래시’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1000개가 넘는 관련 사이트가 뜬다. 그 정도로 국내의 플래시 열풍은 대단하다. 이제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인터넷 공간을 넘어 캐릭터 상품과 광고 모델, 게임, 교육 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종횡무진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애니는 ‘플래시 대세론’
    얼마 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국내 캐릭터 산업계 동향 조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캐릭터는 놀랍게도 토종인 ‘마시마로’(엽기토끼). 그 뒤를 졸라맨과 곰돌이 푸, 키티, 둘리 등이 이었다.

    얼마 전까지 꼬마들의 친구인 캐릭터 인형들은 미국에서 온 미키마우스나 도널드덕, 일본에서 온 키티와 피카츄 등이 주류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크게 바뀌었다. 마시마로, 졸라맨, 홀맨, 우비소년, 둘리, 딸기 같은 토종 캐릭터가 급부상하면서 국산 캐릭터 선호도가 전체의 50%에 이르고 있다. ‘인기 캐릭터 베스트10’에 미국 캐릭터는 ‘푸’ 하나만이, 일본 캐릭터는 ‘키티’ ‘토토로’ ‘짱구’ 등 3개만이 겨우 이름을 올렸다.



    21세기 애니는 ‘플래시 대세론’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마시마로’ ‘졸라맨’, 그리고 9위에 랭크된 ‘우비소년’의 공통점은 바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끈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라는 것. 이들은 모두 웹에서 태어나 오프라인으로 진출했다. 일본이나 미국의 TV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캐릭터와는 출신 성분이 다르다.

    그렇다면 왜 플래시일까. 어떻게 해서 플래시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 것일까.

    우선 제작 방법이 간단하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만 있으면 짧은 시간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낼 수 있고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다. 아마추어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기회의 확대’가 플래시 애니메이션 인기의 비결인 셈.

    21세기 애니는 ‘플래시 대세론’
    쉽게 배울 수 있고, 누구나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플래시의 가능성은 불과 2∼3년 사이에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등장시켰다. 창작 단위도 닷컴 회사부터 개인 독립 애니메이터까지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

    “기존 극장이나 TV용 애니메이션은 대규모 자본과 배급력, 그리고 철저한 기획력을 필요로 한다. 자본, 기술 등 각종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국내 상황에선 웬만해서는 애니메이션이 대박을 터뜨리기 어려운 실정이었고, 창작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공 사례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저렴한 가격으로 빠른 시일 내에 제작이 가능하고 인터넷을 통해 무한대로 퍼져 나갈 수 있는 특성상 배급에 대한 걱정도 없어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고 있다.”

    21세기 애니는 ‘플래시 대세론’
    DR디지털의 안성일 이사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이 가장 최근에 발견한 신천지”라고 말한다. 더구나 이 분야는 국내 인터넷 업계가 세계 최고 수준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만큼 한국이 종주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국의 경우 플래시는 아직 도입 단계다. 본고장 미국에서조차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만 쓰일 정도고, 일본은 인터넷 환경이 우리보다 뒤떨어져 플래시가 인기를 끌지 못한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미국이 주도하고, TV용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세계 선두 자리에 있는 지금 상황에서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다.”(애니메이션 평론가 황의웅씨)

    21세기 애니는 ‘플래시 대세론’
    황씨의 말대로 최근 국내 플래시 작품들이 해외 유수 방송국과 시리즈 계약을 맺는가 하면, 극장용 시험판 제작에까지 나서는 등 세계 시장 선점을 위한 국내 업체들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서울무비는 국내 최초로 플래시를 이용한 극장판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서 미국 회사와 합작을 추진하고 있다. 선우엔터테인먼트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시리즈 ‘내스티 보이’(Nasty Boy)에 대해 전 세계에서 200여개 방송국을 운영하는 미디어그룹 비아콤의 어린이 방송국 니켈로디언 UK와 온라인 및 오프라인 방영 계약을 맺었다고 최근 밝혔다. 니켈로디언 UK는 선우의 플래시 작품 ‘지하철도 999’ 시리즈를 보고 그 완성도를 인정, ‘내스티 보이’의 기획 단계부터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우측은 TV 시리즈까지 방영될 경우 연간 26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산업적 효과는 캐릭터 산업으로 이어진다. 마시마로와 졸라맨 등에서 보듯 인기 플래시 작품은 캐릭터 제품으로 생산돼 큰 부가가치를 낳고 있다. 마시마로는 2000가지에 가까운 캐릭터 상품으로 제조되어 국내에서만 10개월 동안 1200억원의 수익을 얻었고 현재 일본 동남아 미국 유럽 등으로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 졸라맨, 뿌까, 우비소년 등도 인터넷상의 파급 효과를 통해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1세기 애니는 ‘플래시 대세론’
    4조원(2001년 기준)에 이르는 캐릭터 산업 시장에서 국산 캐릭터의 시장점유율은 2∼3년 전 15∼20%에서 작년에는 30∼40%로 증가했다. 이러한 토종 캐릭터의 강세는 90년대 후반까지 외국 디자인의 모방 수준에 그쳤던 우리나라 캐릭터 산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플래시 작품의 인기가 이처럼 수십억, 수백억원대의 수익사업으로 연결되는 사례는 미국이나 일본 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선우엔터테인먼트 이헌숙 이사는 “국산 캐릭터가 지금처럼 히트 친 적은 이제까지 없었다. 플래시라는 툴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21세기 애니는 ‘플래시 대세론’
    이처럼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산업적·문화적으로 활용 가능성이 높은 분야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재밋거리로만 접근하고 있어 ‘냄비 인기’에 머물 위험도 있다. 상대적으로 표현이 자유롭다 보니 과격하고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분위기의 ‘엽기’적 작품이 많은 것도 국내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특징. 간단하고 부담 없이 제작되는 만큼 완성도나 질에 있어 현재의 2D나 3D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도 있다.

    세종대 김세훈 교수(애니메이션학)는 “캐릭터 중심의 가벼운 만화영화 스타일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실험성을 기반으로 한 작가주의적 작품이 많이 나오고 예술적 인프라가 뒷받침될 때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우수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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