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6

2002.03.21

의사는 수입하고, 환자는 해외로…

흉부외과·해부병리과 전공의 기피 심각 … 의료사고 위험 크고 대우 낮아 ‘3D과’ 낙인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10-20 16: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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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는 수입하고, 환자는 해외로…
    이제 머지않아 조선족 출신 진단병리과(해부병리과) 전문의의 암 진단에 따라 필리핀 출신 흉부외과 전문의가 폐암 수술을 하는 시대가 옵니다. 돈 많은 환자들은 모두 외국으로 나갈 거고요.”





    올 2월 전공의(레지던트) 모집을 마친 각 대학병원 흉부외과와 해부병리과 교수들의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 같은 자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공의들의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 소위 ‘돈 되는 과’로의 집중현상과 ‘3D과’ 회피현상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 이에 따라 두 과 모두 정원 중 단 한 명의 레지던트도 확보하지 못해 전공의 대가 끊어진 대학병원이 속출하고 있다. 먼 훗날 일로만 여겼던 의사 수입과 환자들의 수술 해외여행은 코앞에 닥친 현실이다.





    2002년 전공의 모집현황은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표’ 참조). 기초의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들이 100%에 가까운 정원 대비 전공의 확보율을 보인 반면, 유독 흉부외과(42%, 지난해 61%)와 해부병리과(22%, 지난해 55%)만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연세대 의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흉부외과에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고, 서울대병원은 7명 정원에 3명만 확보했다. 충북대 병원을 비롯한 지방 국립대학 병원들은 3년째 흉부외과 전공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의사는 수입하고, 환자는 해외로…
    치열한 경쟁률을 보인 타과에 비해 이들 과는 지원자만 있으면 무조건 합격. 그러다 보니 인적 자원의 질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실제로 서울대의 경우 의대 졸업성적 1, 2, 4위가 모두 안과에 지원했다. ‘의사의 꽃’으로 불리며 최고 난이도의 실력과 전문 지식을 긍지로 삼아온 흉부외과 교수들로서는 이번 결과가 충격 그 자체다.

    세포와 조직을 채취해 최종 병명을 진단하고, 종양인 경우 수술시 절단 부위까지 지정해 주는 해부병리과 전문의의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흉부외과에 이어 해부병리과에서도 단 한 명의 전공의를 받지 못했고, 전국적으로도 49명 모집에 11명이 지원했지만 그나마 한 명은 이미 중도하차했다. 지난 3년간 이 과에 들어간 후 중도에서 포기한 레지던트만 25명.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4년 후 흉부외과와 해부병리학과에서 전문의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할 형편이다.

    문제는 암 사망률 1위가 위암에서 폐암으로 바뀌고, 암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 전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사실. 서울대병원 김철우 교수(해부병리과)는 “암 발생률이 증가하면서 병리 검사의 수요는 해마다 15~20%씩 자연증가하고 있다. 이에 반해 병리 의사의 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현재도 진단병리과 의사의 하루 진단 건수는 100건에 이른다. 진단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진단을 잘못하면 수술 결과는 뻔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이들 과의 인력부족 현상은 일선 대학병원의 수술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흉부외과 전문의 임모씨는 “단순한 염증인 줄 알고 개복을 했는데 종양으로 의심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종양 제거 수술을 해야 하는데 흉부외과에 전공의가 없으면 배를 닫고 재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 또 해부병리과 의사가 다른 수술에 들어가 있을 경우 5분 이내에 종양 유무와 절단 부위를 결정해 줘야 하는데(동결절편) 20분씩 환자의 배를 열어놓고 기다리는 사태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해부병리 의사의 경우 벌써 조선족 출신 전문의가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해부병리과 전문의에 따르면 서울시내 각 의원들에서 들어오는 세포와 조직 검사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5개 병리과 센터(병원)의 경우, 조선족 의사가 진단하고 진단 서류 사인만 한국인 전문의가 하는 곳도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인턴들이 유독 흉부외과와 해부병리과를 회피하는 이유는 뭘까. 영동 세브란스병원 김해균 교수(흉부외과)는 노동 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가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김교수는 “수술이나 검사에 대한 보험 수가(처치료)는 타과에 비해 같거나 더 낮은데 노동 강도는 몇 배로 높고, 의료사고 위험은 훨씬 크다. 미국의 경우 밤새워 수술하기 일쑤인 흉부외과 의사의 월급이 일반 의사의 3~5배에 이른다. 그만큼 기술료를 더 쳐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흉부외과 전공의의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이 폐암 치료에서 세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해부병리과의 세포나 조직 검사료의 경우도 국내 수가는 미국이나 일본의 20~40%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내과나 소아과 등 일반의원은 세포나 조직 검사를 병리과 병원에 의뢰하면서 검사비를 수가보다 턱없이 깎거나 아예 혈액이나 소변 검사에 끼워 무료로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건당 5100원에서 1만4000원 하는 검사를 의뢰하려면 택배비가 더 든다는 것이 이들 의원의 입장. 결국 매출이 오르지 않으니 병원에서는 이들을 푸대접하고 학생 때부터 이것을 본 인턴들은 이들 과를 회피한다.

    이런 현상은 의약분업 이후 소위 생명에 지장이 없는 미용이나 건강 관련 분야의 의사에게 소득이 집중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의 경우 의사의 월평균 수입은 소아과 75.6%, 성형외과 54.1%, 내과가 46.7% 오르는 등 평균 30.85%(건강보험공단 보험진료 수입 기준) 상승한 반면 흉부외과와 해부병리과의 수입만 각각 4.51%, 48.11% 감소했다.

    이처럼 전공의 수급에 심각한 불균형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전공의 선발과 의료인력의 수급을 담당하는 대한병원협회와 보건복지부는 손 놓고 쳐다만 보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가 줄고 있어 흉부외과 의사는 많지 않아도 된다. 또 해부병리학과 같은 기초의학 부분에 지원자가 없는 것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게 이들의 공식 입장이다.

    의료인력의 편중 현상을 시장의 수급 논리에만 맡겨도 되는 것일까.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사이 문제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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