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6

2002.03.21

잡힐 듯 말 듯 ‘신당 밑그림’

이삭 줍기론 국민 지지 못 얻어 … 영남+호남+ α = 전국당이 목표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10-20 1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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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힐 듯 말 듯 ‘신당 밑그림’
    가설 속의 ‘박근혜 신당’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 의원의 비서진은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언론의 앞질러가기에 우려를 표명하지만, 정치권은 이미 정계개편 소용돌이에 휘말린 듯하다.

    박의원은 3월8일 이수성 전 총리와 만나 신당 창당 원칙에 합의, 창당을 공식화했다. 10일엔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이 가세할 뜻을 내비쳤고, 그 뒤를 이어 강삼재 이부영 홍사덕 의원 등 한나라당 중진 인사들이 이회창 총재의 비민주적 당 운영에 반기를 들어 신당 바람을 고조시켰다. 박의원 주변에는 이미 여러 가지 창당의 밑그림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중 일부 안은 이미 공론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창당 작업을 추진중인 L씨(이 전 총리측)의 설명이다.

    L씨에 따르면 창당파들은 기존 정당과 전혀 다른 신당을 구상하고 있다. 철저한 차별화 전략으로 기존 대선구도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 설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 L씨는 “반(反)DJ, 비(非)이회창 정서에만 의존해서는 신당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차별화의 근간은 참신한 인물, 국민으로부터 신망받는 인물의 영입에서 출발한다. 박의원의 한 측근 인사는 “이삭줍기를 통한 급조된 철새 정당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박의원을 비롯한 창당파들의 한결같은 인식”이라고 설명한다.

    손짓만 하면 달려올 것 같은 자민련 김종필 총재나 민국당 김윤환 대표 대신 정치적 때가 덜 묻은 이수성 전 총리를 우선적으로 만난 것도 이 같은 계산 때문이다. 이 전 총리에게는 ‘화합의 이미지’가 강하고, 이런 이미지가 창당에 필요하다는 것. 이 전 총리를 만난 후 숨 고르기를 하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임시집행위원회에 참석중인 정몽준 의원을 기다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의원의 이런 자세는 신당의 1차 토대가 박근혜-정몽준 연대가 될 것이라는 일반의 관측을 뒷받침한다. 박의원측의 한 인사는 “박근혜-정몽준 의원 중 한 사람이 신당의 대선주자로 나서고 김덕룡 의원이 당 대표를 맡는 역할 분담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신당 움직임의 저변에는 물론 ‘비이회창’ 세력 결집이란 흐름이 깔려 있다. 따라서 신당을 둘러싼 각종 창당 시나리오에도 이회창 비토 세력의 강력한 결집이란 틀이 고스란히 이어진다.

    김윤환 대표가 주장했던 영남신당은 그런 점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논의되고 또 현실적으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정계개편 방안. 박의원과 이 전 총리에 무소속 정몽준 의원 등 영남 연고 정치인들의 얼굴로 신당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2차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 민주계 인사 및 TK(대구·경북) 인사들이 동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재 진행 상황으로 보면 신당의 초기 모습은 영남당의 형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박의원과 이 전 총리측은 이 같은 세간의 지적을 한마디로 묵살한다. 박의원과 이 전 총리는 지난 8일 “신당은 반드시 전국당이 돼야 한다”면서 “정치적 결합의 명분은 국가위기 타파”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전 총리의 측근 S씨는 전국 정당이 창당 목표임을 강조한 뒤 동서연대를 통한 영호남 화합당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박의원과 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영남 세력에다 민주당 일부 인사들을 헤쳐 모여 형태로 동참시켜 지역당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 물론 아직 구상 단계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제주·울산 경선 직전 한화갑 후보 등 민주당 경선 주자 중 일부가 정계개편에 관심을 기울이며 시기를 엿보고 있다는 관측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박의원과 이 전 총리는 민주당 경선 주자 중 일부와 개인적 친분을 앞세워 접촉을 시도할 계획이다.

    김원기 정대철 부총재 등이 동참하는 개혁신당설도 박의원의 창당 작업과 연계돼 거론되고 있으나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최근 민주당에 입당한 김상현 전 의원의 역할도 자못 관심을 끈다. 그렇지만 민주당 경선이 혼전양상을 띠고 있어 아직 윤곽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개혁과 보수신당 추진 세력이 일단 각개 약진한 뒤 지방선거 후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의 연대라는 이름으로 손잡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큰 맥락에서 창당파들이 구상하는 동서연대를 통한 영호남 화합 신당과 궤를 같이하는 것.

    신당의 중심부가 구성돼 정치권에 안착할 경우 세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자민련과 JP, 민국당과 김윤환 대표 등과의 통합이 뒷수순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만 이들은 상수가 아닌 철저한 종속변수로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창당파의 일치된 견해다. 만약 이 같은 구상이 탄력을 받을 경우 실질적인 ‘3김 연대’를 통한 비이회창 세력의 결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창당파는 당초 계획대로 신당 창당이 순조로울 경우 오는 6월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세울 생각이다. 특히 영남지역의 경우 광역단체장을 중심으로 승부수를 던져 신당의 거점을 확보한다는 계획. 이를 위해 후보를 물색중인 것으로 이 전 총리의 측근 S씨는 전한다. 그러나 민주당 인사들을 동참시킨 동서화합형 신당을 구상할 경우 지방선거에 임하는 전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큰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을 통해 대규모 정치세력의 영입을 꾀할 가능성이 높은 것.

    박의원과 창당파가 가야 할 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YS와 민주계 및 TK 인사 등 여야의 잠재적 신당 참여 세력들의 동참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불투명한 향후 정국과 각 주체간 미묘한 경쟁관계도 극복하기 힘든 대목이다. 박의원은 물론 정의원, 이 전 총리 등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영남후보 단일화라는 동상이몽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특히 박의원과 정의원의 역할분담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는 창당파 내부의 진단도 흘러나온다. 창당 자금에 대한 대책도 없어 보이고, 급조 정당으로서의 불명확한 정체성과 이념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존 세력과 구도를 유지하려는 여야 정당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창당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과 난관이 따를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신당 창당 등을 포함한 정계개편의 흐름은 3월 중순이 첫번째 고비가 될 전망이다. 탈당 초읽기에 들어간 김덕룡 의원은 10일 방일한 이회창 총재가 귀국하는 13일 이후 탈당 등 거취를 표명키로 했고, 홍사덕 의원 주변에서 새어나오는 ‘결기’도 아직은 설익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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