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9

2002.01.24

막가파 대통령 무가베 ‘최후의 몸부림’

짐바브웨 21년 철권통치 … 선거 패배 우려되자 야당 탄압 등 반정부 세력 무차별 공격

  • < 고현주/ 요하네스버그 통신원 > hyunju_sa@hotmail.com

    입력2004-11-08 1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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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가파 대통령 무가베 ‘최후의 몸부림’
    오는 3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짐바브웨에선 21년간 정권을 독식해 온 무가베 대통령이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야당 대통령 후보와 당원에 대한 폭력과 살인, 가택수색, 체포, 구금 등 정치적 테러가 난무하고 있는 데다 이에 대한 보복성 폭력 또한 커지고 있어 짐바브웨 전체가 마치 내전을 치르는 듯하다. 무가베 정권의 젊은 당원들은 제멋대로 마을을 봉쇄하고 다니면서 주민들에게 집권당의 입당 카드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

    각종 법 개악 … 대통령 비난 땐 10년刑

    무가베는 최근 선거법을 개정, 선거 기간 동안 국내외 옵서버 참관을 금지해 공정하고 평화적인 선거를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 공공질서 및 치안에 관한 법과 언론법 조항을 새로 만들어 국회에 상정한 뒤 통과시켰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악랄한 독재자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국내 언론을 대부분 장악한 무가베는 자신과 추종세력에 쏟아지는 국제적 비난의 화살을 국내에서 활동중인 외국 특파원들에게 돌려 짐바브웨에서의 활동을 금지했다. 국내 기자들도 1년마다 ‘기자면허’를 갱신하게 해 무가베에게 불리한 보도를 전혀 할 수 없도록 족쇄를 채워놓았다.

    공공질서 및 치안에 관한 법 조항은 더 악랄하다. 예를 들면 정부를 비방하는 모임이 열리는 곳에 참석한 행위는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며, 특히 대통령을 비난하는 행위는 형법 위반으로 10년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대통령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거나 대중을 선동하는 글을 발표하는 사람 역시 10년 징역에 처하며, 정부 소유 건물에 돌을 던지는 행위는 테러로 간주해 20년 징역 또는 종신형에 처한다. 또한 자국민이 신분증을, 외국 여행객이 여권을 소지하지 않을 경우 경찰은 이들을 곧바로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무가베가 이처럼 시쳇말로 ‘막가는’ 독재를 휘두르는 까닭은 뭘까. 그가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가까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주변국들의 집중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무력을 동원하면서까지 초법적인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막가파 대통령 무가베 ‘최후의 몸부림’
    1980년 짐바브웨가 독립하기 전 영국령 로디지아 정권에 대항한 재향군인들이 참전 보상을 주장하며 2000년 2월부터 무력과 폭력으로 백인농장을 습격 점거한 이래, 불법적인 농장 점령이 계속되면서 콩고 내전 참여로 어려워진 국가경제는 급격히 피폐해졌다. 최근엔 100% 넘는 물가 상승, 실업자 급증, 극심한 식량난, 전년 대비 50% 가량의 환율 폭락으로 경제가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러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산이 불투명해졌다. 더욱이 야당인 MDC당의 대통령 후보 츠방기라이의 인기가 치솟고 있어 무가베를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안팎으로 위기에 몰리며 정치인으로서의 입지가 불안정해지자 무가베는 선거용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백인들에게서 압류한 8800만ha의 농장 토지에 대한 수여 대상자 명단을 공개한 것. 짐바브웨의 ‘토지개혁’은 식민지 시절 소수 백인들이 차지한 대규모 토지를 땅을 못 가진 다수의 짐바브웨 흑인들에게 공정하게 재분배한다는 것이 그 취지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명단엔 대통령을 지지하는 군인, 국회의원, 정부와 여당의 고위층 다수가 속해 있다. 선거를 앞두고 이들에게 노른자위 땅을 주어 자신에게 충성을 다짐하게 하려는 의도다.

    백인 농장 압류는 그 과정에서 인권침해와 보상문제 등 많은 잡음을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 압류농장 운영에도 큰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동안 10여명의 백인 농장주가 반항하다 살해됐고, 많은 사람들이 폭행과 함께 강제이주를 당했다.

    폭행당한 백인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은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경찰 간부는 압류대상 농장이 아닌 곳에 찾아가 자신이 농장을 분배받았다며 농장주와 그 가족을 쫓아내기까지 했다. 이런 부당한 토지압류 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농장주도 있지만 법원의 백인 판사는 거의 다 사직했고, 지난해 7월부터 새로 지명된 무가베 지지 판사들은 이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리고 있다.

    대다수 압류농장은 농업국인 짐바브웨의 주 소득원인 담배와 곡식을 재배하는 농장인데, 이중 350개 농장은 운영되지 않고 550개는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나머지 900개 농장은 농기구와 운영기술 부족으로 거의 이익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또한 농장을 새로 소유한 무가베 지지자 중 상당수는 농사경험이 없어 농토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지급된 농기구와 씨앗을 다 팔아버려 파종 시기마저 놓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년간 겪어온 식량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하자 해외에서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지만, 무가베 정권은 이들이 식량원조를 미끼로 내정간섭을 한다며 국제기구의 직접적 구호활동을 금하고 있다.

    미국과 EU는 토지점령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이유로 무가베와 정부 각료의 미국 입국을 불허하는 등 짐바브웨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무가베는 “미국은 이 나라를 자유국가로 만들어 흑인들의 나라를 되찾자는 짐바브웨 국민을 모욕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또 “영국은 짐바브웨를 식민지화할 때 수천명의 흑인을 학살했고 수많은 자원을 착취한 장본인”이라며 “EU의 제재는 권력 남용”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무가베는 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주의 통제경제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빵, 설탕, 식용유 등 기초 생필품의 가격인상을 동결해 판매가가 생산가를 훨씬 밑도는 기이한 상황까지 연출돼 제조업체들이 파산에 직면했다.

    독재자 무가베는 북한과도 군사적 인연을 갖고 있다.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은 후 정당간의 무력투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반정부 게릴라까지 출현하면서 골머리를 앓은 무가베는 1983년 북한의 특수부대인 제5연대를 불러와 게릴라 지역에 투입했다. 이로 인해 게릴라뿐만 아니라 2만명의 무고한 양민이 학살됐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짐바브웨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기아에 시달리는 대다수 국민을 구제할 뾰족한 대안이 없는 데다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피바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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