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7

2002.01.10

‘돈 먹는 하마’ 김포 매립지

1년 이자만 600억원씩 꿀꺽 … 정부, 농사 늘려봤자 본전 못 빼고 개발하자니 ‘전용 불가’에 발목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1-03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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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먹는 하마’ 김포 매립지
    인천광역시 서구 경서동 일대.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가 바로 마주 보이는 서해안 끝자락에 ‘김포 매립지’라고 불리는 광활한 땅이 자리잡고 있다. 487만평이라는 면적만 따지면 일산 신도시와 거의 맞먹는 규모다. 그러나 지금 이 땅은 매립이 끝난 지 10년이 넘은 데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갈대들로 이곳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다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허허벌판에 불과하다. 게다가 인천공항 코앞에 자리잡아 동북아 물류 및 교역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이 황금의 땅은 지금 연간 600억원이라는 땅값 아닌 땅값만 까먹으며 버려져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최근 김포 매립지 활용방안과 관련해 지난해 7월 국토연구원이 농업기반공사의 의뢰를 받아 내놓은 용역보고서를 기초로 저밀도 농업도시 개발방안을 밝힌 바 있다. 전체 면적의 52%에 해당하는 252만평을 농업용지로 보존하고 나머지 48%인 235만평을 관광·레저 단지와 국제업무 지구, 외국인 주거 단지 등으로 개발한다는 방안. 국토연구원측은 이 경우에도 골프장이나 관광용지 등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녹지 면적은 75%가 넘는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매립지의 절반이 넘는 면적을 농지로 확보했기 때문에 농지 보존이라는 명분도 살리고 관광·레저 단지 등으로 어느 정도 수익도 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땅을 정부가 사들이는 데 들어간 비용과 현행 유지비용 등을 감안하면 문제는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돈 먹는 하마’ 김포 매립지
    지난해 파산한 동아건설이 매립한 이 땅을 98년부터 용도 변경하려다 실패한 뒤 이를 사들인 것은 정부였다. 현재 정부는 비어 있는 이 땅의 활용방안을 결정하기까지 일부에는 영농위탁 방식으로 벼농사를 짓고 일부에는 염분에 강한 사료용 녹비식물을 심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 임시 활용방안 역시 수익과는 전혀 무관한 형편. 안 그래도 쌀 생산 과잉으로 감산정책이 시급한 마당에 쌀 수확으로 인한 수익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고, 사료식물조차 염분이 너무 많아 한 번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바다를 메운 지 10년이 지난 매립지 곳곳에는 허연 소금 성분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라다 만 사료용 식물이 한겨울 날씨가 무색하리만큼 을씨년스럽게 펼쳐져 있다. 농업기반공사 김포관리단의 최동환 토지이용계획부장은 “토양 개선 효과도 있고 사료도 수확할 수 있다고 해 일부러 외국산 종자를 수입해 심었더니, 염분이 너무 많아 그런지 파릇파릇 나는 듯하다 모두 죽어버렸다”며 현재 상태에서 이 땅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 땅을 당초 ‘전용 절대 불가’라는 기존의 정부 방침에 가장 부합하도록 농지로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미 드러난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487만평 중 현재 벼농사를 짓는 면적은 159만평. 이 정도 규모는 현재 김포 매립지를 관통해 흐르는 공촌천의 용수를 이용해 지을 수 있는 최대 면적이다. 현재 짓고 있는 벼농사 면적 이상으로 농사를 지으려면 한강에서 물을 끌어와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 400억원을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편이라 관개(灌漑)시설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의 노하우를 자랑하는, 땅 주인인 농업기반공사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돈 먹는 하마’ 김포 매립지
    그러나 이 땅을 농지로 사용할 수 없는 좀더 현실적인 이유는 농업기반공사가 이를 매입한 비용을 감안할 때 농지만으로는 전혀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점이다. 공사가 이 땅을 매입한 비용은 평당 17만원. 당시 전문가들은 농지 활용을 전제로 하면 평당 3만원 이상의 지가로 매입해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매입가는 이 가격의 5배가 넘는 17만원으로 결정됐고 이는 김포 매립지 개발 방안과 관련해 하나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또 정부가 이 땅을 매입한다는 방침을 전격적으로 결정한 뒤 매입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던 농업기반공사는 땅값 총액 6355억원을 전액 공사채 발행(4470억원)과 은행 차입(1885억원)으로만 충당했다. 현재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만 연간 600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공사측의 설명. 공사 입장에서는 김포 매립지 개발방안이 결정되고 여기서 수익이 발생해 차입금을 완전 상환하기 전까지는 이만한 돈을 매년 꼬박꼬박 까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렇게 까먹고만 있는 돈을 어떻게 회수할 것인지로 모아진다. 농림부는 국토연구원의 용역 결과를 들어 10년간 단계적으로 김포 매립지를 개발하면 총 2388억원의 이익이 남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2388억원이라는 액수는 그동안 쏟아부은 관리비용과 이자비용을 감안하면 이를 겨우 충당할 만한 액수인데도 이를 모두 개발 이익으로 추정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농업기반공사를 내세워 이 땅을 사들일 당시 농림부는 김포 매립지를 개발한 후 매입비용과 이자 등을 제외하고 해당기관에 손실이 발생하면 정부재정에서 보전해 주고 이익이 남으면 전액 국고에 귀속토록 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농지냐 아니냐, 택지냐 산업단지냐 등과 관련해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손실 발생시 정부 재정 투입’이라고 약속해 준 것은 무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손실 보전 약속을 정부가 앞으로도 계속 지켜갈 수 있을지 또한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정부가 손실 보전 약속을 한 이상 김포 매립지 활용방안과 관련해서도 농지 비중을 줄이고 관광·레저 단지 등 기타시설 비중을 높여 수익 극대화를 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초 국토연구원의 52대 48 비율의 개발방안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수익성 제고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손실만 내지 않는 최소한의 개발방안이라는 성격이 짙다. 용역작업을 주도한 국토연구원 박상우 선임연구위원은 “적어도 절반 이상을 농업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전제 아래, 활용에 따른 수익성 면에서는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 정도의 손익분기점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곧 절반 이상을 농지로 사용한다는 전제만 해소되면 개발과 활용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말이다.

    ‘돈 먹는 하마’ 김포 매립지
    그러나 농지를 포기하고 개발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의 문제는 주변환경상 농업용지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 많다는 것이다. 매립지 북쪽으로는 동아건설이 정부에 기부채납한 쓰레기 매립장이 위치해 있어 지금도 매립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남쪽으로는 대형 철탑에 고압선이 지나가는 데다 오염이 심한 심곡천이 흐르고 있다. 이런 주변환경 탓에 국제업무 시설 등을 조성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농지 비중을 줄이고 개발 비중을 높인다 하더라도 이런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 또 하나의 과제가 정부 앞에 가로놓인 셈이다. 유일한 방법은 농업용지를 포기하고 대대적인 개발에 착수해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수익성 전망을 기초로 발전소, 고압선 등 각종 장애물까지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안. 그러나 과연 정부가 농지 전용 불가라는 입장을 뒤집은 데 대한 비난 여론이 일고 있는 마당에 환경단체의 반대까지 무릅쓰면서 이렇게까지 대대적인 개발 방식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농림부, 재경부, 기획예산처 등 경제부처간 논의와는 별도로 인천시의 입장 변화 여부다. 인천시측은 지난 99년 동아건설이 용도변경을 추진할 당시 개발을 허용해 주려고 했다. 그러나 농림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후 김포 매립지 개발을 포기하고 송도 신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것. 당시 인천시는 농림부 반대로 개발을 관철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한 감정적 앙금 같은 것을 갖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또 개발 여부에 관해서도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인천시가 개발방안 확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근거는 인천공항이나 인천시가 야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송도 신도시 및 테크노 파크 등과 기능이 상당 부분 중복된다는 것이다. 특히 송도 신도시는 인천시가 김포 매립지의 용도 변경 불가라는 중앙정부 방침에 부딪혀 그 대안으로 개발에 착수한 지역. 게다가 인천시는 김포 매립지 개발에 따른 교통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조8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데도 정부가 4800억원 정도의 예산밖에 책정하지 않고 있다며 교통망 건설계획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김포 매립지 개발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연간 600억원의 이자비용 부담은 국민경제적 차원에서도 엄청난 낭비기 때문에 하루빨리 개발 방안을 확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인천시측은 ‘우리와는 관계없는 문제’라는 입장. 인천시 최순길 도시계획국장은 “지난 98년 동아가 김포 매립지를 첨단 산업단지로 개발하겠다고 할 때는 경제성은 뒷전이고 농업이 갖는 특수성만 강조해 개발에 반대하더니 지금 와서 이자비용 등 경제논리만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천시는 올해 새로 시작되는 도시기본계획에 김포 매립지를 포함한다는 구상만 내놓았을 뿐, 어떤 구체적인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제는 중앙정부로서도 인천시가 동의하지 않는 형태의 개발계획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인천시가 개발에 찬성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애를 태워 이 지역에 대한 교통 기반시설 구축 예산을 따내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책 결정을 늦추고 번복한 정부가 스스로 덫에 걸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법하다. 결국 10년 넘게 끌어온 김포 매립지 문제는 이제 농토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쏟아부은 돈을 얼마나 뽑아낼 수 있느냐의 경제성 문제로 좁혀진 가운데 지방자치단체를 어떻게 달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압축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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