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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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없는 이-팔 방정식 ‘스리톱의 딜레마’

피의 보복 악순환 속 샤론·부시 ‘아라파트 처리 고민’ … 아라파트는 ‘하마스 어쩌나’

  • < 김문혁/ 테러리즘 전문기자 > aporiak@hotmail.com

    입력2004-12-10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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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 없는 이-팔 방정식 ‘스리톱의 딜레마’
    중동의 불길은 꺼질 줄 모른다. 오히려 기름을 끼얹는 형국이다. 팔레스타인 ‘위험인물’ 제거를 위해 이스라엘 헬기가 미사일로 표적사살을 한다. 어김없이 며칠 뒤 하마스, 이슬람지하드 등이 자살폭탄으로 맞선다. 다시 F-16 전폭기가 날고 탱크가 동원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응징’을 가한다. 피가 피를 부른다.

    폭발력을 지닌 뇌관의 하나는 자살폭탄이다. 특히 12월 초 잇따른 자살폭탄에 이스라엘 시민 28명이 희생되자, 사태는 준(準)전쟁 양상으로 번지는 조짐이다. 이스라엘 강경파는 아라파트 제거를 심각히 논의하고, 위기에 몰린 아라파트는 하마스 등 과격파 검속에 나섰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민중의 반발은 아라파트를 벼랑으로 더 밀어넣는 모양새다. 샤론의 정치적 대부인 부시 미 대통령도 속이 탄다.

    중동 정치의 성격을 읽어내는 이즈음의 키워드는 ‘딜레마’다. 중동 정치의 핵심인물 3인은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그리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이다. 샤론은 샤론대로, 그를 배후 지원해 온 부시는 부시대로, 위기에 몰린 아라파트는 그 나름대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샤론판(版) ‘테러와의 전쟁’은 지난 10월 극우파 각료가 피살된 뒤 막이 올랐고, 첫 1주일간 42명이 이스라엘군의 사격에 숨졌다. 12월 들어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사건은 샤론에게 보복전에 걸맞은 구실을 더해줬다. 이스라엘 초강경파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아라파트를 제거하는 문제를 심각히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게 그들의 딜레마다.

    아라파트 제거 시나리오는 이렇다. 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정신을 ‘없던 일’로 돌리고, 예전처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무단통치한다. 그럴 경우 아라파트는 거추장스런 인물이고 효용가치도 없다. 이스라엘의 시각에서 아라파트의 ‘효용가치’는 지금까지처럼 하마스, 이슬람지하드와 같은 팔레스타인 과격 저항조직을 이스라엘 대신 손봐주는 대리인 역할이다. 예전처럼 직할통치를 편다면 이스라엘의 강한 무력으로 하마스 등 ‘테러리스트 단체’들을 검속, 뿌리 뽑으려 들면 된다는 시각이다.



    이스라엘 여론도 심상치 않다. 예루살렘의 영자신문 ‘예루살렘포스트’가 실시중인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당신은 야세르 아라파트를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자치정부를 해체하길 바라는가?” 이 섬뜩한(?) 질문에 2만3000여 응답자 중 79%가 ‘바란다’고 답한 반면 ‘바라지 않는다’는 21%에 그쳤다. 강경파 샤론도 마음만은 굴뚝같다. 그러나 냉정한 판단을 요하는 게 현실정치다. 국제사회에서 ‘아라파트는 중동평화 협상에서 이스라엘에겐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아라파트 제거 뒤 불어닥칠 회오리바람도 감당하기 어렵다. 하마스 같은 저항세력보다 아라파트를 상대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시 미 대통령도 고민에 빠져 있다. 그는 초조하다. 예루살렘의 불똥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자신의 회심작인 부시 독트린에 영향을 미칠까 해서다. 부시도 체질상 아라파트를 고운 눈으로 보지 못한다. 예루살렘에 진을 친 미 CIA 요원들의 보고에 따라 이스라엘 일각에서 아라파트 제거 논의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부시도 잘 안다. 혹 아라파트가 살해될 경우 오사마 빈 라덴 세력을 비롯한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에서 아랍권의 지지(적어도 우호적인 방관 자세)를 받아내기 어려워진다. 막 아프간전을 승리로 끝내고 이라크 후세인을 비롯한 다음 먹이사냥에 나서려는 판이다. “아라파트 말고는 대안이 없다.” 이것이 샤론과 부시의 딜레마다. 아라파트는 밉지만 현실정치의 안정(샤론), 테러전쟁(부시)이란 실리적 측면에선 소중한 존재다.

    아라파트(72)가 누군가. 1960년대 초부터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이끌며 대 이스라엘 항쟁에 일생을 바쳐 아랍의 전설에 이름이 오른 인물이다. 이곳 저곳 망명지를 옮기며 숱한 어려움을 견뎌낸 만큼 생존술에 관한 한 도가 텄다. 그는 샤론과 부시의 생각들을 조심스레 읽어왔고, 따라서 자신의 ‘몸값’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최대의 정치적 위기위식을 느끼는 그는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 건 이스라엘이 아니다. 원인 제공자는 하마스다.

    하마스 등 과격단체를 다스릴 묘책이 없는 게 아라파트의 딜레마다. 인티파다 기간 중 하마스의 대중적 지지도는 무척 높아졌다. 아라파트 입장에선 자신의 대중정치 기반을 흔드는 게 하마스다. 이번 인티파다 과정에서는 함께 투쟁해 왔다. 지난 5월 라말라에서 만난 파타 서안지구 책임자(사무총장) 마르완 바르구티(47)는 필자에게 “하마스, 이슬람지하드와 함께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다”고 거리낌없이 밝혔다. 아라파트를 이을 차세대 지도자로 꼽히는 바르구티가 그런 말을 할 만큼 분위기는 하마스에 동조적이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요구를 아라파트가 쉽게 들어주지 못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잡아들이자니 하마스 지지자들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대중에게 말발이 안 설 것이고, 놓아두자니 자신의 지도력을 급속히 갉아먹는 존재가 하마스다.

    하마스는 1차 인티파다 첫해인 1987년 PLO 산하 저항조직으로 출범했으나, 93년 아라파트가 오슬로 평화협정에 서명하자 이를 비판하며 PLO를 탈퇴했다. 그 후 내내 강경노선을 걸으며 아라파트의 정치기반을 위협해 왔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아라파트와 하마스는 주적인 이스라엘에 맞서 공동전선을 펴왔다. 지난해 9월 시작된 2차 인티파다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89년 이스라엘 당국에 체포된 하마스 지도자 아흐메드 야신(63)이 97년 석방된 뒤 가자로 돌아오자, 그의 이마에 축하키스를 한 아라파트다. 이스라엘과 미국으로부터 ‘테러분자 검속’ 압력을 받을 때마다 과격파 가운데 만만한 일부를 잡아들이는 시늉으로 적당히 넘어갔던 아라파트는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라야 한다”는 주문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헛발을 디뎠다. 12월5일 야신을 가택연금하려다 그를 막는 지지자들과 총격전을 벌여 1명을 죽인 것. 팔레스타인 내부에 금이 갔고, 이는 샤론이 바라던 바다.

    아라파트의 이스라엘 쪽 협상 파트너는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이다. 지난해 10월 텔아비브에서 페레스를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아라파트와 그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사이다. 이스라엘 강경파의 아라파트 제거론을 강력히 견제해 온 인물도 페레스다. 그러나 최근 그는 아라파트에게 36명의 체포대상자 명단을 건네며 그들의 체포를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라파트는 12월 초부터 1주일간 하마스, 이슬람지하드,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 요원 180명을 체포했다. 샤론이 만족할 리 없다. ‘송사리’나 ‘퇴역 테러리스트’가 아닌 지도급을 잡아들이라 요구하며 미사일로 아라파트의 집무실 바로 옆을 폭격했다. 위기감을 느낀 아라파트는 이스라엘 체포 리스트에 오른 36명 중 20명 가까이 잡아들였다.

    필자의 추론이지만, 샤론은 가까운 시일 내 이들이 갇힌 팔레스타인 보안건물을 공습해 그들을 폭사시키려 들 공산이 크다. 올해 5월 서안지구 나블러스로 취재하러 갔을 때 그곳 3층 건물은 하루 전 벌어진 F-16 공습으로 완전히 무너져 화약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그 속에 갇힌 3명의 ‘테러리스트’마저 죽이려 했으나, 그들은 가까스로 죽음을 면했고 애꿎게도 11명의 팔레스타인 보안요원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로 미뤄볼 때 샤론은 이번에도 아라파트가 잡아들인 핵심 팔레스타인 저항운동가들을 같은 방식으로 죽이려 들 것으로 보인다. 막 글을 마치려는데,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헬기의 공습이 또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중동에 폭력의 악순환이 그칠 날은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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