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8

2001.11.08

‘비리 덩어리’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

처방전 리베이트에 약가 마진도 그대로 … 제약사 가격 폭리, 도매상에겐 온갖 횡포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11-17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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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리 덩어리’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
    이 약의 원가가 도대체 얼마기에 이렇게 비싸?” 요즘 약국과 병원 문을 나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의약분업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은 건강보험료를 생각하면 약값 중 정부가 내는 보험급여의 폭은 커지고 환자가 내는 본인분담금의 몫은 더 적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 결과가 벌어지고 있다. 의원과 약국 두 군데를 다녀와 지불한 돈을 합치면 의약분업 이전 의원 한 곳에서 약 짓고 주사까지 맞을 때보다 2배 이상 가격이 오른 셈이다.

    병원과 약국을 찾은 환자들이 ‘본전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거덜난 건강보험 ‘살림살이’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 제기는 이렇듯 약품 가격에 대한 ‘소박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의약분업 이후 내려갈 줄 모르는 환자들의 의약품 가격 부담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해답은 2년 전 의약분업을 앞두고 정부가 보험 적용 의약품 가격을 정상화하겠다며 실시한 ‘실거래가상환제’가 어떻게 왜곡돼 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의약품의 실제 거래가격과 정부 고시가격간의 차액을 제거함으로써 의료 소비자인 국민이 직접적인 혜택을 받도록 하고, 의약품의 거래에 따른 각종 부조리를 줄임으로써 의약품 구매 과정에서 음성적 방법으로 누수되는 자금을 차단한다.”

    지난 99년 11월15일 보건복지부는 병원과 약국에 지급되는 보험적용 의약품의 상환대금(보험급여) 기준을 기존 ‘고시가상환제도’에서 ‘실거래가 상환제도’로 바꾸며 이렇게 선언했다. 이는 정부가 자체 원가 계산에 의해 작성한 의약품 고시가격이 제약회사가 요양기관에 공급하는 의약품의 실제 거래가격보다 평균 24.17%나 높게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한 것. 정부는 지난 77년 의료보험 도입 이후 계속된 고시가상환제도를 수십년 동안 두 가격의 차액만큼, 그것도 국민의 건강보험료로 각급 의료기관을 지원한 셈이다. 그 차액은 병원과 약국을 포함한 모든 요양기관의 음성 수입원이자 의사와 약사들에게 지급된 리베이트의 ‘자금원’ 노릇을 했다.



    반면 복지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실거래가상환제는 두 가격간의 차액 부분을 없애기 위해 고시가격 자체를 포기하고, 한 분기(3개월) 동안 약품 공급자와 요양기관이 거래한 실제 가격을 평균해, 그것을 기준(기준가 혹은 상한가)으로 보험급여를 지급토록 한 것. 정부가 의약품 가격의 통제권 자체를 시장 기능에 맡긴 것이다.

    고시가제도의 폐단이 워낙 커서일까. 실거래가상환제는 의사와 약사로부터 약가 마진과 리베이트 수수에 따른 이윤 동기를 제거해 과잉 투약을 막고, 보험재정을 안정시킬 유일한 대안처럼 인정받았다. 병원업계와 의·약사들의 반발도 복지부의 ‘대의명분’ 앞에 쉽게 무릎 꿇었다.

    하지만 실거래가상환제에 대한 복지부 관리들의 ‘턱없는 환상’은 지난해 6월 의약분업이 시작되면서 여지없이 깨졌다. 의약분업으로 의약품 선택권을 의사들이 독점하자 제약업체와 약품 도매상들이 ‘처방전 리베이트’를 새롭게 만들어낸 까닭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종합병원과 의원급 의사의 자사(自社) 약품 처방건수를 확보해 그에 해당하는 리베이트를 전해주지 않으면 해당약품의 처방률은 급락을 면치 못한다. 이에 따라 약품 판매권을 약사에게 빼앗긴 후 위기 의식을 느낀 일부 의사들에게 처방전 리베이트는 달콤한 유혹일 뿐 아니라 치부 수단으로 부상했다.

    의약분업 이후 지옥 같은 1년을 보냈다는 국내 대형 제약업체 A사의 영업직원 김모씨(38)는 실거래가상환제 실시 이후에도 약가 마진과 리베이트가 상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고 증언한다.

    “처방전 건당 들어 있는 약품 가격의 10~20%가 리베이트로 전달됩니다. 거기에다 처방사례비 명목으로 철마다 학회 참가비나 골프 회식비가 지원되고, 소규모 모임에는 기부금이 따로 나갑니다.”

    올 들어 제주도를 여섯 번이나 다녀왔다는 김씨는 이제 접대성 골프 모임이나 놀고 먹는 학회 활동이 지긋지긋하다. 김씨가 올 들어 개인의원 10여곳에 처방 리베이트와 사례비 형식으로 지출한 경비만 6000만원대. 그의 약품 총매출이 2억여원인 점을 감안하면 매출의 30% 가량이 접대성 경비로 나간 셈이다.

    “‘원칙적’으로는 실거래가로 거래를 한다고 하죠. 하지만 우리(영업직원)끼리는 실거래가상환제를 ‘영수증상환제’라 부릅니다. 영수증상으로만 실거래가일 뿐이니까요.”

    김씨 이야기는 결국 약품 거래 영수증에 쓰인 가격이 실제 거래가격과 다르다는 말이다. 즉 리베이트성 경비 외에도 의약품 가격의 할인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씨의 이런 주장은 약품도매상 이모씨(33)에게서도 확인된다.

    “담합 약국의 약사들이 약품 할인을 요구할 땐 거부할 재간이 없습니다. 담합 약사들은 의사들의 처방 관행과 상용의약품 목록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각 제약사가 자사 제품의 처방률을 파악하고, 해당 의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선 할인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 서대문구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이씨는 보통 영수증 가격의 5~10%가 공식 할인가격이라 말한다. 실거래가상환제 아래에서도 공공연히 약가 마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비리 덩어리’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
    반대로 ‘처방전 리베이트’와 의약품 할인 관행은 의원과 약국간의 담합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씨에 따르면 영업력이 약한 소규모 도매상의 경우 신규 제품의 판매처를 뚫을 때는 약국과 병·의원을 ‘짝짓기’해 준 뒤, 자신이 만든 담합 약국을 통해 리베이트와 할인 마진을 의사들에게 전한다는 것. “자존심이 강한 약사의 경우 담합을 하려 해도 담합에 대한 대가를 의사에게 직접 전하는 게 싫거나 담합 방법을 모르는 사례가 많아 영업사원들이 처방전 리베이트와 함께 담합 사례비도 챙겨준다”는 게 그의 주장.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비록 ‘영수증 가격’이라 해도 그 가격이 제약사나 도매상 매출로 모두 잡히는데 도대체 어느 항목에서 각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나 할인 마진을 빼내느냐는 것. 국내 3대 제약사인 C사의 이모 부장은 이에 대해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다른 회사들의 비밀장부 만들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간단한 방법’은 일반적인 탈세기업이 ‘거짓 비용’을 만들 때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일단 필요한 만큼 미리 허수의 직원을 만듭니다. 각종 보험을 들어주고 그들에게 월급이 나가는 것처럼 하는 거죠. 그럼 회사는 그만큼의 비자금을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형 제약사들은 의약품의 수출과 수입 과정에서 원가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확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C사 이부장)

    그렇다면 국내 제약사들은 이렇게 하고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은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하다. 국내 제약사들은 실거래가상환제 실시 이후 정부의 생각처럼 저가경쟁 체제로 인해 적자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실제로 2000년 12월 결산 제약사들의 2001년 상반기 경상이익과 순이익은 지난해 동기에 비해 각각 244%, 867% 늘어났다.

    리베이트와 할인을 해주고도 제약사가 이만큼의 순이익을 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기능에 의약품 가격 결정권이 맡겨지자 ‘이때다’하고 약품 출하 가격을 계속 높여나간 결과다. 이 때문에 치솟은 실거래가는 의약품 보험급여 지출을 늘리면서 보험재정 파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의 황상연 연구원은 “제약사들은 의약품 실거래가상환제를 대비해 1년여 전부터 의약품 가격을 부풀릴 수 있는 데까지 부풀려 놓았다. 실거래가제도 실시 이후 보험급여 기준약가(상한금액)가 평균 30.7% 떨어진 후에도 가격 거품이 엄청나게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한다.

    ‘비리 덩어리’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
    제약업체의 의약품 ‘가격 부풀리기’는 기존 제품보다 신약 개발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각급 요양기관에서 제출한 의약품 거래명세(영수증)를 토대로 산정되는 기존 의약품의 보험급여 기준약가 인상 시스템과 달리, 신규 등재 의약품은 거래 자체가 없었으므로 유사성분 약품의 기준약가를 기준으로 가격이 책정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황연구원이 밝히는 제약사의 신약 가격 부풀리기는 충격적이다.

    “제약사들은 기존 약품에다 특정 성분 한두 가지를 추가해 신상품으로 등재하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한다. 동일 성분, 동일 함량의 다른 제품보다 무려 10배나 비싼 가격에 내놓아도 정부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정부 자체로 원가 계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에도 분명 약가 심사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는 지난 9월 국회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건강심사평가원이 민주당 김성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생산액 기준 상위 100대 품목의 의약품 중 동일 성분, 동일 함량, 동일 제형을 가진 약품그룹에 대한 약품 가격 실태를 조사한 결과, 품목당 14개씩의 복사약품(카피약)이 생산되고 있었는데, 최고가와 최저가 차이가 무려 10배 이상 났다. 예를 들어 소화성 궤양용제인 파모티딘 20mg은 358원에서 30원까지, 라니티딘 150mg은 506원에서 54원까지 최고가와 최저가의 차이는 10배다.’ 결국 제약사들은 신약 가격을 등재하면서 동일 성분 카피 약품 중 최고가를 희망 판매가격으로 선택하면 그것이 최초 등재가격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턱없이 높은 가격에 신약을 출하한 대형 제약사들은 그 다음부터 ‘실거래가 고수작전’을 벌이며 엄청난 이익을 챙긴다. 이들 업체가 약가 부풀리기에 방해되는 도매상들에 갖은 횡포를 부리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리베이트 제공이나 약가 할인 경쟁에 견디지 못한 일부 도매상들이 보험급여 기준가격 아래로 약품 공급가격을 공식 인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제약사들은 이들에 대한 약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온갖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8월13일 자사의 약품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려 했다며 의약품 공급계약을 파기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이들 도매상을 위협한 대형 제약사 4곳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대형 제약사들은 실거래가 인하에 따른 보험급여의 기준가 하락을 막기 위해 미리 ‘약가 방어’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국내 전체 병원의 의약품 구입가격 평균이 보험급여 기준가의 99.2%에 달한 것도 바로 제약사들의 ‘약가 방어’ 때문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정책실장은 “공식적으로는 실거래가를 방어하면서 그 이면에서는 약가를 할인해 주는 이중구조를 통해, 보험급여는 실거래 가격대로 받아 거기서 할인된 만큼의 약가를 의사나 약사에게 리베이트로 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보험재정을 갉아먹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보험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실거래가상환제가 이처럼 비리만 양산하는 ‘골칫덩이’로 변모한 근본 이유는 뭘까. 국회 보건복지위 김성순 의원은 약품 가격에 대한 정부의 원가분석 시스템 부재에서 원인을 찾는다. 즉 처방전 리베이트나 약가 할인, 가격 부풀리기 등의 음성적 거래가 가능한 것은 실거래가상환제 이후에도 약품가격에 그만큼 거품이 많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인데, 이를 판별할 능력이 정부에는 없다는 것. 김의원은 “신약의 보험급여 기준가 산정 때나 기존 가격의 인상시 제약회사에 원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나 정부 차원에서는 이에 대한 심층적인 심사과정도 없으며, 전문 인력 부재로 이를 약가에 반영할 능력도 없어 실제로 약품 생산에 들어간 원가와는 상관도 없는 비교가격만 기준가격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거래가상환제가 계속 문제를 일으키자 지난 7월25일 보건복지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환자가 처방받은 약품이 이와 약효가 같은 다른 카피 약품의 평균 가격보다 50~100% 이상 비쌀 경우, 비싼 부분만큼의 금액은 환자가 전액 부담한다는 이른바 ‘참조가격제’를 올 연말까지 도입키로 한 것. 그러나 이는 약사의 대체조제가 인정되지 않고, 환자에게 의약품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그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복지부의 대책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석 달을 견디지 못한 채 중도 폐기됐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의 한 관계자는 “참조가격제는 의약계와 제약계의 반발로 이미 포기했으며 할인 등 부당행위가 확인되면 보험급여 기준가를 조정하는 등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대 이규식 교수(보건행정학과)는 “현재의 실거래가상환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전의 고시가제도로 회귀하는 등 졸속적인 제도 개선은 오히려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신중한 연구 검토가 절실한 시점이다” 고 말한다.

    개선이 아니라 개악(改惡)이 되어버린 실거래가상환제. 가뜩이나 취약한 건강보험을 좀먹는 이 제도의 보완은 빠를수록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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