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8

2001.06.14

“관료의 포로가 된 대통령”

소프트웨어 개혁 사실상 실패, 추동력도 상실… 이제라도 새로운 설계를

  • mshue@donga.com

    입력2005-02-02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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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료의 포로가 된 대통령”
    금융·기업·노동·공공 부문 등 4대부문 개혁 중 공공부문 개혁이 가장 미진하다는 말이 많다. 공공부문 중에서도 특히 정부조직의 비효율성·경직성이 개혁 이전보다 오히려 심화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 대해 억울하게 생각하는 공직자들이 적지 않다. 기획예산처의 한 관리는 지난 6월1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개혁 문제와 관련한 매스컴 보도 방식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정부개혁을 열심히 했는데 언론은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개혁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몇 가지 부작용이 나오면 그런 것은 크게 제목 뽑아 신문·방송에서 때려대니 국민은 정부개혁이 엉망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관리는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개혁의 성과가 뚜렷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사소한 것만 보고 전체를 매도한다”는 반박인 것이다. 그렇다면 김대중정부의 정부개혁은 지금 실패하고 있는가, 성공하고 있는가.

    DJ 정부는 지난 98년 2월 출범한 이래 지난 3년 4개월 동안 정부 및 공공부문 개혁을 줄기차게 시행했다. 그 목표는 작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기획예산처는 개혁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력감축 : DJ정부 출범 이전인 98년 초와 비교했을 때 2000년 말 현재 공무원·공기업·산하기관의 직원 수가 13만1000명 줄었다. 올해 말까지 14만3000명까지 줄일 예정이다. 연간 3조5000억 원의 인건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 포철·한국중공업 등 6개 공기업의 민영화를 완료했다. △퇴직금 중간정산 : 219개 공기업 및 정부 산하기관과 37개 은행 등 공공금융기관의 퇴직금 누진제를 단수제로 전환했다. 이로써 연간 5000억 원 이상의 비용 절감효과가 나타났다. △준조세폐지 : 농지전용부담금·예진흥기금 등 8개 준조세를 폐지해 연간 3270억 원의 기업·국민 부담을 줄였다. △아웃소싱 : 209개 업무를 외주발주로 돌려 연간 2000억 원 이상의 절감효과를 봤다. △산하기관 및 자회사 통폐합 : 6개 산하기관을 폐지했고, 공기업 자회사 36개를 민영화·통폐합했다. △자산매각 : 257건의 자산을 팔아 대략 5조 원의 매각수입을 거뒀다. △규제완화 : 1만1125건의 규제 중 9226건을 폐지했다.

    “관료의 포로가 된 대통령”
    기획예산처가 제시하는 통계에 의하면 정부개혁은 긍정적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구조조정의 희생이 하위직에 집중하고 고위직은 오히려 늘었다는 비판이 있는데 실제로는 고루 인력감축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측의 이러한 주장에도 정부개혁과 관련한 전문가·시민단체의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경실련 정부개혁위원회는 “그러한 수치적 화려함에도 ‘정부개혁이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바꿀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세우는 개혁의 성과는 외양적인 부분, 곧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집중했으며 개혁의 ‘본질적 대상’인 정부조직의 ‘소프트웨어’적 요소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개혁이 이뤄질 때 정부개혁의 최종 목표인 효율성 제고가 가능하다는 것은 정부관계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것이 바로 개방형 임용제, 책임운영기관제, 성과급제, 복식부기, 목표관리제, 성과주의예산제, 전자정부 등이었다. 정부는 이런 개혁정책을 정부조직 내에 ‘연착륙’시키려 했다.

    그러나 정부개혁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진 개방형 임용제는 일단 실패로 드러났다. 2001년 5월 현재 개방형 임용제 적용 대상 93개 직위 중 민간전문가에게 돌아간 곳은 14개에 그쳤다. 나머지는 모두 전·현직 공무원들의 차지였다. 민간부문보다 뒤떨어지는 월급 수준, 최장 3년에 지나지 않는 재임기간 뒤의 장래 불안 때문에 유능한 전문가들이 공직사회로 유입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원인을 알면서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사·급여와 관련한 정부조직의 관료적 경직성이 개혁의 유연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과천 정부부처의 성과급제에 대해 경실련은 최근 현장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연공서열을 그대로 성과급여책정에 적용했고 평가기준이 불분명하며 나눠먹기식 배분이 이뤄진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목표관리제의 경우 대다수 부서가 목표를 너무 쉽게 잡아 예외 없이 연말에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하는 희극적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고, 퇴직금 누진제 폐지 역시 복지기금을 확대해 손실분을 보충하는 편법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는 것.

    개혁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정부부처는 그러한 비전을 갖고 개혁하는 것일까. 국회 미래전략특위는 올 들어 교육인적자원부 등 행정 부처들에 소관업무에 해당하는 한국의 미래청사진을 제시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제출한 자료는 과거 국회 답변자료의 재탕이었다. 위원장인 신현국 의원(한나라당)은 “대다수 정부부처는 5~10년 앞을 내다보는 ‘종합적 플랜’을 갖고 있지도 않으며 행정에 왜 비전이 필요한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정부시스템의 개혁은 전자정부로 결실을 본다. 전자정부구축이 개혁의 핵심이 될 것이라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현재 정부 내에 통합적으로 이 사업을 지휘하는 구심점이 모호하다. 한쪽에선 “전자정부가 아니라 전기정부가 되겠다”는 비아냥거림마저 나오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의 사장 선임 문제와 관련해 보더라도 개혁은 더 이상 큰소리치기가 어렵다. 낙하산 인사 방지를 위한 사장추천위원회제도가 유명무실화했다. DJ 정권하에서도 낙하산 인사는 시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낙하산 사장이 노조의 눈치를 보며 방만하게 기관을 운영하면서 끼치는 폐해는 구조조정으로 얻어지는 이익을 손상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지난 5월30일 산업정책연구원의 국가경쟁력조사에서 한국은 23개 선진국 중 20위, 아시아 준 선진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 IMD 조사에서 한국의 정부시스템, 교육정책, 사업관련제도 경쟁력은 49개국 중 각각 34위, 32위, 44위에 그쳤다. 특히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는 기획예산처 조사결과가 있음에도 사업관련제도의 경쟁력은 여전히 최하위였다.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별 부패지수에서 한국은 90개국 중 48위, 아시아에선 중국 다음으로 부패지수가 높았다. 최종찬 전 기획예산처 차관이 “무능한 관리자가 너무 많다. 공무원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한다”고 일갈한 것은 3년 4개월 동안의 DJ 정부 개혁에 대한 총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까지 관료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고려대 장하성 교수의 주장은 정부개혁 추진세력들을 낙담시켰다.

    지난해 하반기 재정경제부 국감자료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113조7723억 원, 정부관리하 33개 정부투자기관과 출자기관의 부채는 399조6629억 원이었다. 특히 33개 기관의 부채는 3년 전보다 17%가 늘었다. ‘언론이 개혁을 흠집 내서 그렇지 정부와 공공부문개혁은 전체적으로 잘 되고 있다’는 정부 일각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정부개혁이 ‘생산성 향상’과 직결되는 정부조직의 소프트웨어적 개혁, 정부조직 시스템의 질적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젠 개혁작업을 계속 이끌어갈 내적 동력마저 소진한 양상이다. 경실련 김미영 간사는 “이제라도 정부가 개혁 실패의 원인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새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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