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5

2001.05.24

JP “골프 없이는 정치 안 돼유”

40년 넘는 구력 80타 전후 ‘골프광’… ‘내기골프’ 파문 이후 비판 여론 쇄도

  • < 소종섭 기자 ssjm@donga.com >

    입력2005-01-27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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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P “골프 없이는 정치 안 돼유”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JP)가 ‘골프 된서리’를 맞고 있다. 지난 5월6일 아시아나 컨트리클럽에서 있던 3여 지도부의 ‘내기골프’ 파문 때문이다. JP와 김종호 총재권한대행 등이 참석한 이날 모임에서 JP는 “혼마 회장이 내 이름을 새긴 혼마 파이브 스타 골프세트를 보내줬다”며 자랑, 구설수에 올랐다. 이 골프세트는 시가로 2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역사교과서 왜곡이 시정되지 않았는데 일본 골프회사 사장에게 골프세트 선물받은 것을 자랑하는 것이 정치지도자가 해야 할 일인가”라고 비판하였고, 격분한 네티즌들은 자민련 홈페이지(jamin@ jamin.or.kr)를 ‘골프’로 도배했다. 지난 5월11일 하루만 해도 JP의 행태에 격분하며 그를 조롱하는 글이 100건이 넘고 조회 수는 수천 건에 달했다.

    “그렇게 골프가 좋으면 골프장 하나 차려라. ‘자민컨트리클럽’ 하나 만들어 골프나 실컷 치면서 살아라” “종필이란 종일 필드에 나가 혼마 골프채로 골프를 치라는 선친의 선견지명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다” “21세기 새롭고 비싼 골프장과 골프채의 중심 자골련(자유골프연합), 국민보다 골프와 혼마골프채를 사랑하는 자골련 총재, 김종필(필드에서 종칠 예정인 사람)” 등등. 원색적인 용어로 JP를 비난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JP “골프 없이는 정치 안 돼유”
    이처럼 골프는 JP의 정치역정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최근 ‘캐리커처에 담은 180인의 초상’이라는 책을 낸 화가 강형구씨 역시 골프장을 배경으로 인자한 웃음을 짓는 것으로 JP를 표현했을 정도다. 구력(球歷)만 40년이 넘는 JP의 골프사랑은 별로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자민련 주변에서는 JP가 거의 주말마다 골프장에 나간다는 데 이의를 다른 사람이 없을 정도다. JP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2회 정도는 골프를 친다고 한다. 그의 골프실력은 80타 전후로 알려져 있다. 자민련 한 소식통은 “JP는 당사에 출근하는 횟수와 필드에 나가는 횟수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영 비서실장은 “그 나이(JP는 1926년생)에 집에 있으면 얼마나 갑갑하겠나”라며 “건강을 위해 하는 것이고 생활의 일부”라고 변호했다. 또 다른 측근은 “각계 인사들을 만나 의견수렴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골프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호화골프’ 파문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JP는 골프를 멈추지 않았다. JP는 파문 4일 만인 5월10일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한국여자오픈프로암 대회에서 박세리 선수와 골프를 한 뒤 “골프도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토요일인 12일, 일요일인 13일에도 구천서 전 의원 등과 골프를 즐겼다. JP의 한 측근 중진의원은 JP가 골프를 즐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이 골프도 치고 바둑도 두고 술도 좀 마시고 해야 다른 사람의 정서도 이해하고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게 JP의 인생철학이다.”

    워낙 골프를 즐기다 보니 관련된 일화도 많다. 3당 합당의 서막이 JP와 YS의 골프장 회동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지난해 4·13 총선 참패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JP가 맨 처음 외출한 곳도 골프장이었다. 당시 JP는 변웅전 오장섭 의원 등과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겼다. ‘골프광’인 그가 총선을 앞둔 3월5일 “총선 끝날 때까지 골프 안 한다”고 선언하며 매진한 총선이었기에 총선 참패 뒤 첫번째 찾은 곳이 골프장이라는 데서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무소속 강창희 의원은 자민련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공조포기를 선언하고 제주도로 내려간 JP를 설득하러 쫓아갔다가 “골프나 치고 가지”라는 말을 들은 것. 지난 3월 말 중앙당 후원회에서 33억원을 모금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둔 JP가 이양희 사무총장과 김광수 후원회장 등 자민련 관계자들을 격려한 곳도 골프장이었다.

    JP의 골프 상대는 이양희 사무총장 등을 중심으로 한 당직자파,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 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파 등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등 다양하다. 자민련 후원회장인 김광수 전 의원과 민주당 김인곤 전 의원 등은 수시로 JP와 골프를 즐기는 인사로 알려졌다. JP와 절친하지만 국민회의 소속이던 김인곤 전 의원은 지난 97년 당시 필드에서 JP와 숱한 만남을 가지며 DJP 단일화를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

    최근에만 해도 JP는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4월22일), 김정길 법무부 장관(4월29일), 이종찬 전 국정원장(5월1일), 한완상 교육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5월5일), 김중권 민주당 대표(6일) 등과 골프를 즐겼다. 때문에 정가에는 “JP와 골프 못 치면 실세 축에 못 든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다. 정가에서는 특히 최근 권 전 최고위원과 JP가 골프회동으로 우의를 다지는 것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올 들어 두 사람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골프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은 필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성공해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 사립대학 고위직에 있던 인사가 사석에서 털어놓은 얘기는 ‘JP 골프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JP와는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15대 국회 시절 사립학교법 문제가 대두하였을 때 새벽에 JP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다. 사립학교법의 문제점을 설명했더니 JP는 골프 부킹해서 연락하라고 했다. 며칠 후 JP가 필드로 자민련 의원들을 데리고 왔다. 나중에 한 참석의원에게 물어보니 JP가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사립학교법의 문제점을 설명해 줬다고 하더라.”

    JP가 워낙 골프를 즐기다 보니 자민련은 줄줄이 골프 하는 분위기다. 자민련 한 소식통은 “자민련이 ‘골프당’이라는 소리를 들은 지는 오래되었다”고 전했다. 당사자들은 “이제 골프도 대중화했는데 운동삼아 즐기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할지 몰라도 이들을 보는 국민의 눈길은 곱지 않다. 일본제품불매운동공동대표 홍정식씨는 “JP가 받았다는 혼마 골프채의 경우 세관에 물어보니 세금을 1000만원 정도 내야 들여올 수 있다고 했다”며 “세금 한 푼 안 내며 국가지도자로 행세할 수 있나”라며 분개했다. 홍씨는 조만간 여`-`야 의원들에게 골프채 소유 여부와 소유 과정에서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등을 묻는 질의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한 소장파 초선의원은 “같은 정치인으로서 부끄럽다. 지금은 정치인들이 국민과 고통을 같이 나누기 위해 고민해야 할 때”라며 “골프정치는 밀실정치의 한 형태로 혁파해야 할 구시대 정치행태”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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