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3

2001.03.01

아직도 대우 경영?… 움직이는 김우중

도피행각 속 ‘뒷날’ 노리며 전현직 임원 접촉… 지난해 10월 “수단에 3주 체류” 확인

  •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5-02-14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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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대우 경영?… 움직이는 김우중
    대우 비리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어디에 있을까. 99년 10월18일 중국 산둥의 옌타이 자동차부품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유럽 동남아 등을 떠돌며 사실상 ‘도피행각’을 계속하고 있는 그의 소재는 여전히 베일에 싸인 상태. 대우 비리사건을 수사중인 검찰도 아직은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우중 전 회장 행적과 관련한 가장 최근의 언급은 1월4일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의 설명. 이사장은 이날 “김우중 전 회장이 지난해 10월 수단에 입국, 체류하고 있다는 보고를 수단지사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우 인터내셔널 수단지사장 김달현 이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작년 말 김우중 전 회장이 수단에 들어와 수단 정부 고위 인사들을 은밀히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나름대로 알아본 결과 사실임을 확인했다”면서 “김우중 전 회장은 3주 정도 수단에 머물다 떠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우는 70년대 말 회교 국가인 수단에 진출해 현지에서 가죽-타이어-방직-제약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영빈관용으로 팰리스호텔도 지었다. 김달현 이사는 “김우중 전 회장이 수단의 전현직 대통령을 잘 알기 때문에 수단 체류 시 이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김 전 회장과 연락이 닿거나 김 전 회장 소재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김 전 회장 법률 대리인인 석진강 변호사를 비롯한 최측근 인사 일부. 그러나 석변호사는 요즘 서울역 앞 대우센터 내 우일합동법률사무소에 나타나지 않고 외부에서 가끔 전화 연락만 취하고 있다는 게 우일합동법률사무소 관계자들의 전언. 설사 그가 김 전 회장 행적을 알고 있다고 해도 변호인의 직업윤리상 이를 발설할 수도 없을 것이다. 김우중 전 회장의 최측근 인사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 전 회장이 ‘잠행’을 계속함에 따라 민주노동당 등 25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대우차 공동투쟁본부’가 2월20일 ‘김우중 체포 결사대’를 프랑스로 파견, 김우중 전 회장을 직접 체포하기 위한 활동을 벌인다는 계획이지만 성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 전 회장 말대로 ‘세계는 넓고 숨을 곳은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체포 결사대’는 앞으로 한 달간 현지에서 프랑스 노동조합총연맹 등의 협조를 얻어 김우중 전 회장의 소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김 전 회장 체포 활동을 홍보할 계획이다.



    김 전 회장의 최근 거취는 오리무중인 상태지만 그동안 그의 소식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와 조우한 사람들에 의해 그의 행적이 국내에 조금씩 알려지기도 했던 것. 지난해 8월 초 평양에서 김우중 전 회장을 우연히 만난 재미교포 사업가가 이를 월간지 ‘신동아’에 제보, 일반에 알려진 것도 그런 유형에 속한다. 당시 대우 관계자들은 김우중 전 회장의 평양 방문 사실을 부인했으나 북한 관리들은 그 이후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에게 이를 시인했다.

    김우중 전 회장 행적과 관련, 가장 관심을 끄는 소문은 “김우중 전 회장이 지난해 도피행각을 벌이는 와중에도 대우 전현직 임원들을 해외로 ‘은밀히’ 불러내 이들과 만났다”는 내용. 심지어 김우중 전 회장의 ‘지시’를 받고 그의 ‘재기 노력’을 돕는 임원까지 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온갖 설이 무성한 상태. 다음 내용은 최근 대우 전현직 임직원들 사이에 은밀히 나돌고 있는 얘기 가운데 하나.

    “작년 일부 대우 전현직 사장들이 해외에서 김우중 전 회장을 만나고 왔다는 얘기가 대우 임직원들 사이에 은밀히 퍼졌다. 사정당국에서도 이런 내용을 포착하고 이들을 내사, 일부 내용을 확인했다고 한다.”

    취재 결과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일부는 사실로 밝혀졌다. 사정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김우중 전 회장이 대우 전현직 임원들과 접촉을 시도하거나 접촉한 흔적을 포착했다는 보고를 여러 채널에서 받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김우중 전 회장과 접촉한 임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문제는 검찰의 태도. 검찰은 ‘김우중 전 회장 국내 송환’ 여론이 높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우중 전 회장과 접촉한 대우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하지 않고 있어 대우 비리에 대한 수사 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대우 전현직 사장들에 대한 구속 기소 이후 대우 수사가 파장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

    대우 안팎에서는 김우중 전 회장과 접촉한 대표적인 전현직 임원으로 작년 1월까지 대우국민차(현 대우자동차 창원공장) 사장을 역임했던 이모씨를 꼽는다. 작년 봄 무렵 방콕에서 김우중 전 회장을 만나고 온 이씨는 주변 인사들에게 “김우중 전 회장이 ‘대우차 우즈베키스탄 공장은 인수 희망 업체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많으니 내가 지원해준 자금으로 인수할 의사가 없느냐’고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그 양반 정신 나간 소리를 하더라”는 얘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사장 A씨도 김우중 전 회장과 접촉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난해 봄 해외 지사 순시차 유럽과 아프리카 등을 순방하던 도중 김우중 전 회장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고 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 그러나 A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부인했다.

    김우중 전 회장이 이처럼 대우 전현직 임원들을 접촉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 접촉했던 대우 전현직 임원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 정확한 진상이야 알 수 없지만 대우 관계자들은 “후일을 모도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한다. 대우 몰락에 대해 아직도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김우중 전 회장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을 만나려고 하는 게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한편에서는 전현직 임원들이 김우중 전 회장을 접촉한 것과 관련, 현실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대우자동차 전 임원은 “해외 사업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김우중 전 회장이기 때문에 해외 사업을 파악하는 차원에서 만났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우중 전 회장이 그동안 접촉한 사람은 대우의 전현직 고위 임원들만이 아니다. 한때 대우에 근무했던 아마추어 바둑 기사 김모씨도 99년 말 베트남에서 김우중 전 회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원 소속 서능욱9단은 “김우중 전 회장은 당초 한국기원측에 여류 기사 또는 프로 기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지원자가 없자 김씨가 대신 베트남에 가서 김우중 전 회장의 바둑 상대가 돼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씨는 국내 아마추어 기사 가운데는 최고수급에 속한다는 게 한국기원 관계자들의 전언. 김우중 전 회장은 83년 9월부터 99년 말까지 한국기원 2~4대 총재를 역임할 정도로 평소 바둑을 좋아했다.

    엄상익 변호사는 김우중 전 회장의 ‘섭섭함’을 간접적으로 전달받은 케이스. 엄변호사는 ‘월간조선’ 2000년 9월호에 기고한 ‘김우중 회장의 해외 비밀계좌 BFC의 그림자’라는 글에서 “김우중 전 회장이 해외에 머물며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려 사법처리된 대우 임직원들을 끝내 외면한다면 그의 전 재산보다도 더 소중한 ‘김우중 신화’를 잃게 될 것”이라며 “김우중 전 회장이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엄변호사는 “김우중 전 회장이 이 글을 어떤 경로를 통해 입수해 읽었는지 상당히 섭섭하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해 왔다”고 말했다.

    김우중 전 회장은 현재 법적으로 대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상태. ‘기업인은 죽이되 기업은 살리는’ 차원에서 워크아웃 작업이 진행되면서 그의 경영권이 박탈됐기 때문. 그러나 문제는 대우 경영에 참여하는 인사 중 일부가 김우중 전 회장과 직간접적인 ‘연결 고리’가 있다는 점. 대우중공업 한 임원은 “그렇기 때문에 김우중 전 회장이 부르면 가지 않을 임원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우중 전 회장은 과연 재기를 꿈꾸고 있는가. 그는 여전히 ‘리모트 컨트롤’을 이용해 대우 경영진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일까. ‘실패한 경영인’과의 고리를 확실히 끊는 게 ‘대우 살리기’의 첫걸음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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