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4

2000.07.27

‘배째라 배째!’ 난공불락 SOFA 협상

피의자 재판 관할권 환경조합 신설 등 요구…바꿀생각 없는 미국 ‘질질끌기’

  • 입력2005-08-03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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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째라 배째!’ 난공불락 SOFA 협상
    개기월식이 일어난 음력 6월 보름날인 7월16일 미군 공군 폭격장으로 유명한 매향리에서는 이색적인 한-일 연대집회가 열렸다. ‘미군기지 폐쇄를 위한 매향리-오키나와 보름달 한-일 연대집회’라는 긴 이름을 가진 행사였다. 이 행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같은 이름의 행사는 미군기지가 있는 일본 오키나와에서도 동시에 열렸다. 전쟁 반대, 미군기지 폐쇄, 미군범죄 근절을 바라는 일본과 한국의 대표단은 이날 각각 매향리와 오키나와를 방문해 오후 6시부터 보름달을 바라보며 한-일간 미군기지를 철폐하기 위한 연대 투쟁을 선포했다.

    이처럼 최근 매향리-오키나와는 아시아-태평양지역 뉴스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물론 뉴스의 진원은 미군이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매향리 농섬 폭격장 오폭 사건, 미국측의 일방적인 이른바 SOFA(주둔군 지위협정) 개정안 통보를 둘러싼 국민 감정의 악화, 독극물(포름알데히드) 무단방류사건 같은 일련의 주한미군 관련 불협화음 때문이다. 또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오키나와(沖繩)에서 열리는 G-8, 즉 러시아를 포함한 서방 선진 8개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잇단 성추행 및 뺑소니 사건 등으로 주일미군 문제가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상자기사 참조).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주한미군 반대 움직임이 반전-평화운동의 국제연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28일부터 7월2일까지 오키나와에서 열린 ‘민중의 안보를 위한 오키나와 국제포럼’(Okinawa International Forum on People′s Security·OIFPS)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일본 등 전세계의 저명한 반전-평화운동가 70여명이 참여한 OIFPS에서 이들은 ‘일본 나고(名護)시 헬리포트 건설 중단과 한국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첫번째 요구안으로 정한 결의문과 ‘한-미 양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채택했다.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요구하는 결의문은 이미 지난 5월 유엔본부에서 열린 ‘밀레니엄 포럼’에서도 채택된 바 있다. 오키나와 포럼에 다녀온 ‘불평등한 SOFA 개정 국민행동’(대표 문정현 신부) 김용한 집행위원장은 “매향리는 이제 세계 평화운동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고 전했다.

    그뿐이 아니다. 재야단체인 전민특위는 매향리 폭격장 조사 및 미군의 양민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제조사단과 함께 순례(7월17~23일)에 나선다. 이들의 목표는 매향리 등 전국을 순회하며 ‘한국인의 생활터전과 삶을 황폐화하는 미군기지 문제’를 부각하고 주한미군 철수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또 주한미군의 독극물 방류사건을 처음 폭로한 녹색연합 등 국내 환경-시민단체들은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7월20~26일) 회담장 앞에서 2만여명의 환경운동가가 참여하는 가운데 열리는 ‘반기지 평화민중대회’에 대표를 보내 독극물을 1000만 시민의 식수원인 한강에 몰래 방류한 미군의 반인도적 측면과 환경피해의 심각성을 제기키로 했다. 뿐만 아니라 환경단체들은 독극물 방류사건 등 미군이 야기한 일련의 환경파괴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해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기구와 연대 조사활동에 나서기로 함으로써 이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등장할 전망이다.



    주한미군 문제가 이처럼 ‘국제화’된 데는 미군측의 안일한 대응 태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현재 한미 현안으로 등장한 불협화음의 핵심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SOFA) 개정 문제다. 외국에 주둔하는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은 입법부의 동의 없이 행정부의 권한만으로 체결되는 국제조약을 의미하는 행정협정의 형태로 체결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흔히 SOFA를 한미행정협정이라고 부른다. 53년 10월에 체결한 한미상호방어조약의 제4조는 “상호합의에 의하여 결정된 바에 따라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되어 있다.

    문제는 전시(戰時)에 체결된 이른바 ‘대전협정’, 즉 ‘주한미군의 관할권에 관한 한미협정’을 모체로 한 한미행정협정이 불평등 조약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최근에 문제된 포름알데히드 방류사건만 해도 주한미군은 자체 독극물 폐기 규정에서 포름알데히드는 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는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이송해 처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심각한 환경범죄가 벌어져도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SOFA 규정에 환경 관련 조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런 불합리한 점을 인정해 91년 ‘상호주의’ 원칙 아래 SOFA를 개정하면서 조항의 일부를 손질한 바 있다. 그러나 협정 이외의 합의의사록과 개정양해사항 등 2개 부속문서가 본협정의 효력을 크게 제한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여전히 불평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구나 당시 협상은 미국이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응한 측면이 컸다. 그러나 91년 1차 개정에서 한국측은 형사재판권 자동 포기조항을 폐기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그 대신 미국측은 협상의 대가로 ‘방위비 분담금 특별조치협정’을 통해 한국인 고용원의 인건비 등을 한국이 부담할 것을 관철시켰다. 결과적으로 1차 개정을 ‘개정’ 아닌 ‘개악’이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정작 본협정과 합의의사록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종래의 불평등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지난 95년 11월부터 96년 9월까지 7차례에 걸쳐 SOFA 개정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여 왔으나 여전히 현격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협상을 중단했다. 그러다 미국측이 지난 5월 말 보스워스 대사를 통해 한국 정부에 미국측 협상안을 전달하고 오는 8월2일부터 8차 협상을 재개하자고 통보했다. 그런데 미국측 협상안이 7월10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회의에 일부 공개됨으로써 여론은 더 악화되었다.

    당초 외교통상부는 이날 미국측 협상안에 대해 비공개를 전제로 브리핑했다. 그러나 김원웅 의원(한나라당)은 이날 “협상 주체인 외통부의 처지는 이해하나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으로서 미국의 오만한 태도는 묵과할 수 없다”며 비공개 파기를 선언하고 언론에 공개했다. 김원웅 의원에 따르면 미국 개정안에는 그동안 6년째 지연되고 있는 소파 개정 협상과정에서 한국측이 개정안에 반영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온 △피의자 재판 관할권 △환경조항 신설 △미군부대 한국인 노무자 권익 △동식물 검역 △미군 피엑스 및 골프장 출입 통제 문제 중에서 오직 재판관할권 문제만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재판관할권 문제만 하더라도 미국측은 피의자 인도시점을 형 확정단계에서 기소단계로 앞당기는 조건으로 법정형량이 3년 이하인 범죄에 대해 우리 정부의 재판관할권 포기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미군 범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도로교통법 위반 등 잦은 범죄 유형을 비롯해 폭행, 지하철 성추행 등도 법정형량 3년 이하의 범죄에 해당해 사실상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를 빼고는 재판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미군 범죄의 죄목별 비율은 80년대 초반에는 폭력이 30%로 가장 높았으나 80년대 후반부터 도로교통법 위반이 급증해 90년대에는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98년의 경우 전체 518건 가운데 도로교통법 위반이 276건으로 53.3%,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이 113건으로 21.8%,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이 85건으로 16.4%였다(표 참조).

    게다가 김원웅 의원에 따르면 미국측 협상안은 “피의자의 법적 권리에 중대한 침해가 있을 경우 주한미군 사령관이 그 피의자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한국이 거부할 때는 소파 규정의 효력을 정지시킨다”는 부대 조건을 덧붙이고 있어 한국의 사법체계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김의원은 “이는 결국 일종의 사면권을 달라는 것으로 한국 대통령의 사면권도 재판이 종료된 이후에 행사하는 데 비추어 초법적인 발상이며 결국 한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방자한 태도”라고 비난했다.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도 “미국의 이런 요구는 우리 정부가 살인 강도 강간 등 중대한 범죄 이외에는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91년 SOFA 개정 이전의 상황으로 돌려놓으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최근 주한미군의 독극물 방류사건으로 개정안에 환경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데도 미국측이 협상안에 반영조차 안한 것도 이해하지 못할 대목이다. 더구나 미군측은 이미 96년 9월 7차 협상에서 환경조항을 신설하기로 합의하고 구체적인 문안까지 작성한 바 있다. 또 주한미군은 1992년 미 국방부가 발표한 해외에 주둔하는 자국군이 지켜야 할 환경지침서(OEBDG)를 적용받고 있다. 이 지침서에는 대기오염 식수 폐수 유해물질 자연자원 석면 납 오염 관리 등 19개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환경지침이 들어 있다.

    이한동 총리는 최근 국회에서 △현재 형 확정 이후로 돼 있는 미군 피의자 신병 인도 시기를 기소단계로 앞당기고 △미군 주둔지역을 환경범죄 영향권에 포함시키며 △미국 내 한국인 근로자에 대해 한국 노동법을 적용시키는 등 세 가지만은 꼭 관철해야 한다는 정부의 기본입장을 천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환경, 노무 문제는 아예 거론하지도 않은 채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단 형사재판관할권 문제만을 포함한 협상안을 제시하고 있어 개정 협상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용산 미군기지 이전 여론이 조성된 지난 91년 1차 개정 때처럼 가능한 한 협상을 질질 끌면서 협상에 유리한 시기를 엿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법언이 있지만 근대 국제관계의 법원리는 속지주의나 속인주의 둘 중 하나를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의 헌병’을 자처하는 미국이 SOFA 개정협상에서 보이고 있는 태도는 ‘엿장수 맘대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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