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1

1999.12.02

성가족 성당 “115년째 공사중”

가우디 설계 ‘미완의 건축물’…거침없는 상상력-자유분방함에 탄성 절로

  • 임정의/건축사진가·자유기고가

    입력2007-03-15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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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유럽 관광은 건축 순례에 다름 아니다.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폰티도 그의 책 ‘건축예찬’에서 “이탈리아의 절반은 하느님에 의해, 나머지 절반은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스페인의 바로셀로나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을 비롯한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1884년에 착공되어 1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공사가 진행중인 미완의 건축물. 가우디가 남긴 난해한 설계도로 인해 완공되려면 아직 200년 정도가 더 걸릴 것으로 예정돼 있지만, 그 외양만으로도 이미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묘한’ 성당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한 이 성당은 탑 높이가 107m나 되어서 관광객들마다 고개를 한껏 젖히고 탑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또 하나의 진풍경을 연출한다. 먼 거리에서 바라보면 땅에서 커다란 4개의 옥수수가 솟아오른 형상으로 보이는데, 다른 성당과는 전혀 다른 나선형 기둥들이다.

    이 성당의 디자인은 기존 양식의 파괴라고 볼 수도 없고, 더욱이 파괴 자체로 그치지 않는다. 더욱 크고 풍부하며 광대한 상상력의 창조로 이어짐으로써, 그의 무한한 생각들이 우리를 압도하는 것이다.

    가우디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로마 건축 양식과 고딕의 요소를 혼합한 아르누보 양식을 도입해 환상적인 건축 공간을 연출한 거침없는 상상력과 자유분방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그의 건축물은 모두 기하학적인 곡선 구조를 지니고 있다. 곡선 구조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는 것이다.



    가우디는 어렸을 때 다리를 다쳐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아버지와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구리 세공업자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구리 세공을 통해 공간에 대한 인식을 다지면서 자라날 수 있었다. 또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집 근처의 자연 속에서 곤충이나 꽃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인공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라는 가우디 건축의 특성은 아무래도 이러한 유년기 환경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을 듯하다.

    가우디는 17세 때 건축 공부를 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대학에 입학에 8년만에 졸업했다. 1883년 성가족 성당을 짓기 시작하면서 신앙심이 깊어진 그는 1910년 이후, 죽기 전 15년 동안을 성당 짓는 일에만 매달렸다. 물론 그의 작업은 그 혼자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경건한 구도자로 살려고 노력한 그의 주변에는 든든한 재력가들이 늘 버티고 있으면서 그를 도와주고 후원했다.

    바르셀로나의 갑부였던 에우세비오 구엘 백작은 만년에 이상적인 정원 도시를 건설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바르셀로나 시가와 항구, 그리고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페라다산 남쪽 구릉지대를 확보하고 가우디에게 모든 상상력을 동원한 정원도시의 실현을 부탁했다. 그것이 바로 20세기 건축가와 미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엘 공원이다.



    가우디는 60채의 저택과 음악회장, 강연장, 식당, 학교 등의 시설을 이 대지 위에 세울 예정이었다. 정원도시라는 형식을 통해 건축과 자연을 결합시키고자 하는 전대미문의 시도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14년에 걸친 공사에도 불구하고 구엘 백작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 계획은 미완성이 되었고, 공원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독창성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으로, 공학적인 정교함과 환상적인 면의 절묘한 결합으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에 대한 초현실주의적인 해석이 발휘됐다. 18세기 영국의 낭만주의적 고딕식 정원의 후예인 이 정원은 구불구불한 곡선 형태의 벽, 벤치, 동굴, 깨진 도자기와 유리로 구성한 현란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케이드 등의 혼합물이다. 나무가 세워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구엘 공원의 자연스러운 통로들은 인간이 얼마나 자연과 밀접한 동물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꽃 모양이나 나무 모양 등의 괴물들은 자연에서 보았던 것이기도 하고, 전설의 세계로부터 얻은 영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문고리, 발코니의 철제 난간 등 사소한 부분들에까지 세심한 디자인을 연출한 그의 노력은 가히 놀랄 정도다.

    그의 작품 가운데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구엘 술창고는 그렇게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가량 떨어진 카라프라는 지역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집은 3층짜리 건물로 1층은 포도주 창고, 2층은 거실, 3층은 다락방으로 사용되었다. 측면은 삼각형이며 지붕은 매우 기울어져 있는 형태로 가파르게 경사를 이룬다. 경사진 지붕 위에 조그마한 동탑이 있고, 굴뚝의 모양도 매우 특이하게 디자인되었다. 바다 쪽으로 나 있는 집의 끝부분에는 마치 중세시대의 고성과 같은 망루가 있어, 동화에 나오는 집처럼 느껴진다. 정문에는 초소 형태의 작은 돌집이 있는데 철제문 또한 가우디의 특징적인 동물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과거에는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었으나 지금은 황무지로 변했다. 외부가 온통 돌로 덮이고 지붕까지도 돌집 모양으로, 언뜻 보면 작은 교회처럼 보인다. 지금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카페로 개조돼 젊은 연인들이나 가족들이 나들이를 즐기는 곳으로 변했다.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의 작품 이외에도 건축도라면 꼭 보아야 할 건물이 있다. ‘흐르는 공간’이라 불리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 그것이다. 20세기 건축계의 거장 미스 반데 로에(Mies Vander Rohe)의 작품으로 1928년에 설계했는데, 1929년 세계만국박람회 당시 독일관으로 사용되었다. 스페인 광장에서 마리아 크리스티나 거리를 따라 고딕풍의 알폰소 왕궁을 지나가다 보면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92년 올림픽 경기를 치렀던 몬주익에서 보자면 왼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건축물을 각 패널로 서로 분리하여 독립시킴으로써 공간을 한정하기보다는 연속적으로 흐르게 한다는 새로운 공간 개념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으로서 방향성을 갖는다. 당시만 해도 이런 공간 개념은 대단히 혁신적인 것이었다. 독립적 관계에 놓여 있는 지붕, 바닥, 벽면들은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해서 그 독립성을 더욱 강조했다.

    미스 반데 로에는 구조 건축의 대표자이자 날카로운 안목과 세련된 취향의 소유자로서 건축물에 풍부한 어휘를 구사했다. 그는 광선의 효과, 시선의 방향, 색채의 조화, 재료의 독특한 아름다움, 나아가 반사에 의한 효과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정서에 호소하는 온갖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이 건물에 음악적 하모니와 같은 투명한 아름다움을 부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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