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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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50대도 괜찮아 늦깎이 공무원 열풍

정년 보장에 10년 근무하면 연금…고령 신참의 조직 적응 문제, 기회비용도 고려해야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7-12 11: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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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0세에 시간선택제 9급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한 김현수(51) 씨는 현재 격월로 하루 4시간씩 오전 혹은 오후에만 일한다. 김씨의 근무처는 전북 전주시 서신동주민센터 시민생활지원계. 공무원이 되기 전 대기업 KT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2009년 임원 진급을 눈앞에 두고 위암 확진을 받아 뜻하지 않게 인생 전환기를 맞았다. 그동안 일에 매진하느라 삶에서 놓친 부분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는 결국 2013년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나온 뒤 대학시절 밴드동아리를 함께 했던 친구들을 불러모아 새롭게 밴드를 구성해 음악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준비한 것이 공무원시험. 1년 6개월간 공부해 합격한 김씨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자기계발과 지역 주민에게 봉사하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말한다.

    김씨처럼 몇 년 새 40대 이상 늦깎이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이 늘었다. ‘평생직장’이란 말이 사라진 지 오래인 요즘 늦게나마 공직에 합류해 제2 인생을 설계하고자 하는 이가 늘고 있는 것.



    연령 제한 폐지 후 고령 응시생 급증

    6월 24일 인사혁신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 접수 현황에서 18~19세를 제외하고 연령별 접수 인원 증가율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40, 5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50세 이상은 총 957명으로 지난해보다 24.6%, 40~49세는 9756명으로 20.9% 늘었다. 7급 공무원의 경우도 마찬가지. 40대 지원자 수는 4420명으로 전년 대비 13.8% 증가했고, 50세 이상도 459명으로 20.8% 늘었다(표 참조). 40, 50대 합격률도 제법 높다. 4월 치른 9급 국가공무원 공채 필기시험 합격자 5652명 중 40대는 228명으로 전체 합격자의 4%, 50세 이상은 32명으로 0.6%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중앙부처 소속인 국가공무원시험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소속 지방직 공무원시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거주 제한이 없는 국가직·서울시 공무원과 달리 지방직 공무원은 해당 지역에 살고 있거나 과거 살았던 증거를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만 응시 가능해 국가직에 비해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2014년부터는 일주일에 20시간만 근무하는 시간선택제가 도입돼 이 부문에 지원하는 이도 늘고 있다. 시간선택제는 7급 이하 국가직·지방직 모두 해당되며, 정규직인 데다 일반 공무원과 동일하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각종 수당(육아휴직수당, 자녀학비보조수당, 초과근무수당)도 똑같이 받는다. 단, 공무원연금은 받을 수 없다.



    이처럼 늦깎이 공시생이 느는 가장 큰 이유는 2009년부터 7·9급 공무원시험 응시 연령 제한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즉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실제로 2011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40대 이상 응시 인원이 2배 이상 늘었고 이후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시간제가 아닌 일반 공무원의 경우 10년만 근무하면 연금 수령 대상자가 된다는 점 또한 상당한 이점이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에 따라 1월부터 연금 수령 요건이 종전 20년에서 10년으로 단축됐다. 물론 월급 수준은 대기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지만 공무원 기본급에 정액급식비·직급보조비·정근수당·명절휴가비 등을 고려하면 9급 지방직 초임 연봉은 2600만〜2700만 원으로 중소기업보다 낫다. 참고로 지난해 한 인터넷 취업정보 사이트가 조사한 중소기업 평균 연봉은 3.3년 근무 기준 2375만 원이다.

    현재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30대 후반 은행원 A씨는 “금융권 연봉이 높다고 하지만 업무 강도나 육아 조건 등에서 공무원이 훨씬 유리하다. 최소 2년은 더 공부할 각오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강의 등 잘 갖춰진 교육 인프라 또한 40, 50대를 공무원시험으로 끌어들이는 요소다. 늦깎이 공시생은 대부분 직장에 다니면서 시험을 준비하기 때문에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합격이 좌우된다. 인터넷 강의의 경우 모바일이나 태블릿PC 등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든지 들을 수 있어 공부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1년 반 정도 인터넷 강의로만 준비해 국가직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는 한 50대 공무원은 “인터넷 강의가 없었다면 아예 시도조차 못 했을 것 같다. 학원에 직접 다니지 않아도 되니 시간이 많이 절약됐다. 강의 질도 상당히 높아서 처음 인터넷 강의를 듣고 깜짝 놀랐다. 영어는 회사에 다니면서 꾸준히 해왔고 나머지 암기 과목은 인터넷 강의에 의존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제도적·교육적 인프라의 변화 외에도 공무원으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려는 이가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여유롭고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삶의 지향점을 부와 명예가 아닌 여유롭고 안정적인 생활에 두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이에게 공무원은 안성맞춤 직업이다. 일반 사기업에 비해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인식이 강하고, 정년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섣부른 인생 이모작이 낭패 부를 수도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삶에서 상향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이가 많았다. 어떻게든 한 단계 더 올라가 직장에서 승진하고, 집 크기도 넓히는 식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숨 가쁘게 사느니 현실에 만족하며 지금을 즐기자는 의식이 팽배하다. 물론 그 이면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 사회적 모순, 또 한 회사에 내 인생을 더는 맡길 수 없다는 불신이 함께 자리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무원 사회가 위계질서가 분명하다 보니 늦은 나이에 뒤늦게 조직생활을 시작할 경우 업무 적응이나 동료들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최근 정년까지 3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업무 연계성과 조직문화 융화에 서 과연 이득이라 할 수 있는가’를 두고 세인들이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실제로 늦깎이 신참에게 업무 지시를 내려야 하는 상사로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과거 충남 아산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공무원 최씨는 “지방의 경우 공무원이 휴일에도 자연재해 등 현장에 투입돼야 하는 일이 잦은데, 그럴 때 아무래도 나이 많은 신참에게 일을 시키기가 부담스럽고, 당사자 역시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노골적으로 ‘10년만 일해도 연금 대상자’라고 자랑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연공서열을 중요시하다 보니 일부 늦깎이 공무원은 조직이나 동료들이 알아서 배려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공시생 스스로도 시험 준비에 따른 기회비용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다 합격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김형도 서울 일자리플러스센터 주임은 “베이비붐 세대인 현 50대 중에는 앞만 보며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 많다. 자신의 경력과 지식을 활용해 인생 이모작을 설계하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공무원만이 정답은 아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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