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4

2016.06.29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음반, 물성에 대한 그 얄팍한 욕망

서울레코드페어 2016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06-27 1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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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국에서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은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다운로드조차 필요 없이 스트리밍이 너무나 당연해졌으니 말이다. 디지털시대에도 여전히 음반의 가치를 느끼려는 이들이 서로 음반을 사고팔며 기쁨을 나누자는 취지에서 2011년 시작해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서울레코드페어’(레코드페어)는 이 천연기념물들의 집합소다. 매년 장소를 바꿔가며 치르는 동안 규모는 조금씩 커졌고, 6월 18일과 19일 이틀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올해 행사(사진)도 지난해에 이어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레코드페어는 늘 놀라움을 안겨준다. 아직도 이렇게 레코드를 판매하는 업체, 혹은 업자가 많다는 게 첫 번째다. 초창기 적잖은 지분을 차지했던 대형 음반사들이 빠진 자리에는 서울 회현동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레코드를 팔고 있는 중소규모 가게 사장들이 수백에서 수천 장씩 물건을 들고 나왔다. 1960년대부터 최근 것까지, 30×30cm의 종이와 지름 12인치의 플라스틱이 가득 찬 공간은 보는 것만으로 장관이다. 이런 압도적인 물량은 레코드의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조차 어디서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렇게 레코드를 사러 오는 사람이 많다는 게 두 번째다. 세대는 다양하지만 표정은 한결같다. 한 장 한 장 레코드를 뽑으며 살 물건을 고를 때는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신중하고, 레코드가 담긴 비닐가방을 들고 행사장을 나설 때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설렌다. 음악동호회를 통해 함께 음악을 들었던 시절이 전설의 영역이 된 지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가 어디 흔하랴.

    레코드페어의 가장 큰 특징은 매년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한정판 레코드를 선보인다는 점이다. 강아솔, 갤럭시 익스프레스, 고상지, 공중도덕,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딥플로우, 박진영, 블랙메디신, 원더걸스, 언니네 이발관, 이디오테잎의 음반들이 이번 행사를 통해 공개됐다. 그리고 9와 숫자들, 이재민, 김추자, 라디오헤드의 레코드 등이 최초 공개되기도 했다. 이 한정판과 최초 공개작을 구하고자 사람들은 줄을 선다. 올해도 행사 4시간 전부터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기다리다 지칠 사람들을 위해 번호표도 발부됐다. 나는 오후 4시쯤 도착했는데 번호표에는 0032번이 찍혀 있었다. 좋아하는 것도 잠깐, 스태프에게 이 번호는 1032번이며 현재 800번대 대기자가 음반을 구매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해 가장 먼저 품절된 타이틀은 혁오의 레코드였다. 이는 레코드페어의 충성 고객층을 보여준다. CD(콤팩트디스크)시대에도 꾸준히 옛 레코드를 거래해온, 그래서 1970~80년대 음반에 대해 ‘시세’를 만들어온 이들은 주류가 아니다. 동시대 음악을 소비하는 현세대가 좋아하고 소장하길 원하는 레코드가 팔리는 것이다. 그들에게 레코드란, 그래서 추억의 음악 매체가 아닌 새로운 음악 매체다. 턴테이블을 갖춰놓고 레코드를 듣는 이도 있지만 그저 소장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물건’으로 여기는 이도 있다. 음반의 기능이 감상에서 소장으로 변했으며 레코드야말로 그 소장 가치가 극대화된 매체로서 소비되기도 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남은 한정음반 몇 장을 포함해 총 40여 장을 사서 돌아왔다. 턴테이블에 음반을 걸어놓고 돌리기 시작했다. 한 면이 끝나면 판을 뒤집고, 뒷면이 끝나면 새 판을 얹었다. 밤이 깊어갔다. 얼마 전까지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기에 오랜만에 제대로 하는 음악 감상이었다. 음악이 온전히 들린다는 건, 양쪽의 풍성한 소리로 듣는다는 건, 음악이 일상이 되면서 오래도록 잊고 있던 기쁨이다. 음악에 빠져들던 10대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주말이면 서울 청계천 도매 상가를 누비며 레코드를 사서 돌아와 엄마 몰래 음악에만 집중하던 그 시절로. 음악은 모두 똑같지만, 그 음악이 어디에 담겨 있느냐에 따라 물성에 대한 얄팍한 욕망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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