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4

2016.06.29

강유정의 영화觀

의욕적 자기세계의 출발

이현정 감독의 ‘삼례’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6-06-27 12: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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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례, 얼핏 듣기에 여자 이름 같지만 실재하는 장소 이름이다. 지도를 보면 전북 완주군 삼례읍을 찾을 수 있다. 영화감독 승우(이선호 분)는 신작 시나리오를 고민하다 이곳, 삼례에 가게 된다. 인구 1만8000명 정도의 작은 읍 소재지가 과연 어떤 곳이기에 영화 제목으로 차용된 것일까. 영화 ‘삼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마을의 매력에서 시작해 ‘삼례의 힘’으로 끝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삼례의 첫인상은 염전 노예로 붙들려 간다 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벽촌이다. 승우는 삼례역에 무작정 내려 모텔을 찾아가지만, 낯선 외지인인 그가 바로 삼례의 볼거리가 되고 만다. 방 안에 커다란 당구대가 있는 야릇한 방, 승우는 이상한 기운에 이끌리듯 일종의 계시 같은 꿈에 빠져든다.

    영화 ‘삼례’는 승우와 희인(김보라 분)이라는 삼례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승우가 낯선 곳을 찾아 일부러 도시를 떠나온 탐색자라면, 희인은 삼례라는 좁고 갇힌 공간에 염증을 느끼는 인물이다. 희인은 소설 ‘무진기행’ 속 인숙처럼 어떻게든 삼례를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에게 삼례는 운명이자 덫이기도 한 공간이다.

    이현정 감독의 말처럼 삼례는 우리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공간이다. 동학운동의 정점이 삼례를 거쳤고, 일제의 침탈과 수탈이 삼례를 거점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보잘것없는 공간이 된 만경강 하구는 한때 수탈의 창구 구실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감독은 삼례에 흐르는 이 미묘한 기운을 역사적 흔적에서 찾는다. 켜켜이 쌓인 화석 지형이 공간적 재현이자 흔적이라면 꿈과 만남, 기시감과 미시감이 교차하는 영화의 서사는 시간적 재현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삼례’는 여러 면에서 감독의 의욕과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화 소재를 찾아가는 감독이라는 승우의 캐릭터가 실제 감독의 내면과 닮아 있는 부분도 크다. 삼례라는 공간에 대한 경외감 역시 영화가 전반적으로 취하는 태도 그 자체다. 일식이나 꿈같은 상징적 행위의 교차 편집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은유 역시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감독 자신이 느낀 매우 주관적인 감동을 객관적 이미지로 옮기려 안간힘을 쓴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알’의 상징이 그중 하나다. 승우는 삼례로 내려가는 동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희인 역시 ‘알을 깨고 나온다’는 데미안의 전언을 반복한다. 갓 잡은 암탉의 배 안에 뽀얗게 김이 서린 채 들어 있던, 아직 알이 되지 못한 노란색 덩어리도 어떤 점에선 이 알의 세계와 닿아 있다. 마음속 깊은 곳 혹은 영혼 깊은 곳에 놓여 있는 그 알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세계와 접촉한다. 그것이 폭력적 가름이건, 자발적 깸이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삼례’는 현재 개봉관에 걸린 어떤 작품보다도 개성적인 실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한편, 감독이 구축하고자 하는 예술적 세계와 관객에게 전달되는 세계의 함의가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어렵고 난해해 작가의 주관성이 지나친 작품으로 여겨질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렇듯 낯설고 의욕적인 자기 발언이 많아지고 관객을 좀 더 자극할 때 한국 영화는 다양해질 수 있을 테다. 다른 관점과 다른 미학을 흡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와 예술이 오랫동안 정신의 영역을 일궈온 방식이자 존재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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