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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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21세기 술탄’ 꿈꾸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언론·야권 탄압하며 독재적 이슬람주의 공격적 행보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6-03 17: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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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수도 이스탄불에서는 최근 들어 아야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되돌리라는 시위가 자주 벌어진다. 그리스어로는 하기야 소피아(성스러운 지혜)라 부르는 아야소피아는 6세기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때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 건설된 성소피아 바실리카(대성당)를 말한다. 오스만튀르크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후 아야소피아를 모스크로 개조했다. 이후 터키 정부는 1935년부터 아야소피아를 성소피아 박물관으로 개조해 지금까지 운영해왔다. 아야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꾸라는 시위는 터키 사회가 세속주의에서 이슬람주의로 변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오스만튀르크가 몰락한 이후 장군 출신인 무스타파 케말(1881~1938)은 1923년 터키를 새롭게 건국하면서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웠다.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다는 조항이나 술탄제를 헌법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케말은 이슬람 전통 복장을 폐지했고, 여성들이 서양식 옷을 입고 다닐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선거권도 부여했다. 아랍 문자 대신 로마자를 약간 변형한 터키어도 제정했다. 케말은 터키를 기존 이슬람 국가와는 완전히 다른 서구화된 국가로 변신시키고자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아타튀르크’(아버지란 뜻)라는 칭호를 받은 케말 초대 대통령의 세속주의 덕에 터키는 이슬람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고, 유럽의 일원이라는 말도 들어왔다.



    대통령·국가 모욕죄 기소자만 2000명

    터키에서 세속주의가 퇴색하고 이슬람주의가 득세하게 된 것은 독실한 수니파 무슬림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의개발당(AKP)이 2002년 정권을 잡으면서다. 올해 62세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철저한 이슬람주의자다. 이스탄불 시장을 지내던 1998년 한 집회에서 “이슬람 사원은 우리의 병영이며, 첨탑은 총검이고, 돔은 헬멧이며, 신도들은 우리의 병사”라는 내용의 시를 암송해 이슬람주의를 선동한 혐의로 4개월간 복역한 적이 있을 정도다.

    당시 터키 헌법재판소는 에르도안의 소속당이던 복지당에 대해 세속주의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정을 내리고 해산 선고를 내렸다. 에르도안은 이에 굴하지 않고 2001년 이슬람주의를 추종하는 AKP를 창당했다. AKP는 2002년 총선에서 승리했고, 당수였던 에르도안은 2003년 총리가 됐다.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 연속 승리해 3연임에 성공했다. 4연임을 금지한 당규에 따라 다시 총리로 나서지 못하게 된 에르도안은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고 임기를 5년 중임제로 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해 2014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했다.  



    이후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를 지향하는 각종 정책을 추진해왔다. 밤 10시 이후 모든 공공장소에서 주류 판매를 금지하고, 종교학교에서 히잡을 착용하며, 공공장소에서 남녀 간 애정 표시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의 부인 에미네도 공식 석상에서 히잡을 착용하도록 했다. 필수 교과인 종교 수업을 시작하는 학년을 초등학교 4학년에서 1학년으로 낮추는가 하면, 고등학교의 종교 수업 시간을 주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리는 조치도 내렸다.

    에르도안은 자신을 민주주의자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독재자에 가깝다. 언론인과 학자 등 지식인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등 사법부와 권력기관을 동원해 강압적으로 통치해온 부분만 봐도 명확해질 정도다. 3월 터키 법원은 그간 에르도안 정권을 강력히 비판해온 최대 일간지 ‘자만’과 그 영자지 ‘투데이스 자만’, 자매회사인 시한통신 등에 법정관리 명령을 내렸다.

    5월에는 정부의 무기밀매 의혹을 폭로한 일간지 ‘후리예트’의 잔 둔다르 편집장과 에르뎀 굴 앙카라 지국장에게 국가기밀누설죄를 적용해 징역 5년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지난 2년간 대통령 모욕죄와 국가 모독죄로 기소된 터키인은 2000여 명에 달한다. 반정부 인사와 언론인은 물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와 축구선수, 미스 터키, 10대 소년까지 포함됐다. 심지어 반(反)테러법을 적용해 인권 탄압까지 마구 자행하고 있다.

    게다가 에르도안은 5월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은 아흐메트 다부토글루 총리를 사실상 해임하고 심복인 비날리 이을드름 교통해양통신부 장관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AKP 당대표를 겸하고 있는 다부토글루 전 총리는 에르도안이 주도해온 대통령제 개헌을 적극 지지하지 않았고 언론 탄압 등에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에르도안과 사사건건 대립해온 다부토글루가 결국 압박에 굴복해 사임하자 AKP는 임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겸 총리로 이을드름을 선출했다. AKP 창당 멤버인 이을드름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에르도안) 당신의 길이 우리의 길”이라며 노골적인 충성맹세를 남겼다.



    ‘2024년까지 대통령’ 개헌 추진

    에르도안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는 개헌이다. 1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이 된 에르도안은 2차 개헌을 통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려 시도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실현되기 쉽지 않다.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AKP는 하원 전체 의석 550석 가운데 317석을 얻어 단독 정권을 수립하는 데 성공했으나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의석수 5분의 3(330석) 확보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에르도안은 개헌에 반대하는 쿠르드계 정당인 인민민주당(HDP) 등 야권 탄압을 통해 국민투표 발의 의석을 확보하려 시도하고 있다. 실제로 터키 하원은 쿠르드계 의원들을 겨냥한 면책 특권 폐지안을 통과시켰다. 면책 특권이 없어짐에 따라 개헌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의회에서 축출될 가능성이 높다. 개헌이 성사될 경우 에르도안은 재선을 통해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통치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터키 중산층과 젊은 층 상당수는 세속주의를 선호하고, 대통령제 개헌에도 반대한다.

    에르도안이 독재적 통치와 이슬람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터키를 ‘제2의 오스만제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에서 비롯됐다.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23년까지 터키를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슬람의 맹주로서 중동은 물론, 유럽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오스만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붕괴될 때까지 470년간 세계를 좌지우지했다. ‘콘스탄티노플을 지배하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오스만제국의 전성기는 10대 술탄인 술레이만 1세(1494~1566) 때였다. 술탄은 원래 ‘권력’을 뜻하는 아랍어로, 오스만제국에선 세속적 권력자인 동시에 종교적 권위자를 말한다. 술레이만 1세를 가장 존경한다는 에르도안이 ‘21세기 술탄’이 될지, 아니면 이슬람주의를 앞세운 무모한 독재자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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