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경제

“정말 필요한 건 따로 있는데…” 쇠락하는 동대문완구시장

빗나간 서울시 지원사업…동대문문구·완구시장 상인들 “나아진 게 없다”

  • 박세준 기자 sejoonkr@naver.com

    입력2016-05-23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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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나들이철인 5월. 따뜻한 날씨에도 서울 종로구 동대문문구·완구종합시장(동대문완구시장) 가게 앞은 스산했다. 5월 14일 동대문완구시장을 찾았다. 입구에 자리한 살짝 기울어진 연필 모양 조형물에는 ‘동대문문구완구거리’라고 쓰여 있었다. 국내 최대 완구시장단지라지만 입구는 초라했다. 손님들보다 완구시장상인회에서 붙인 플래카드가 더 눈에 띄었다. 10분 남짓 걸어 들어가자 비로소 손님들이 보였다. 하지만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다. 거리 쪽에 진열해놓은 장난감들에 잠시 눈길을 줄 뿐 손님들은 총총히 완구시장을 지나 동대문종합시장으로 향하는 인파에 합류했다. 동대문종합시장 반대편 골목에는 진열된 상품이 손님보다 많았다.

    동대문완구시장은 1960년대 낱개로 볼펜을 파는 가게가 하나둘 생기다 7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초기에는 문구류가 대부분이었으나 점차 완구로 업종을 확장한 상점이 늘면서 한때는 “대한민국에 이 시장을 거치지 않은 문구와 완구는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국내 문구·완구 유통의 중심이었다.

    문구·완구시장의 왕좌였던 곳이지만 쇠퇴는 빠르게 진행됐다. 2011년부터 교육부 주도 복지정책인 ‘학습준비물 지원제도’가 시행되자 문구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란 각 학교가 시도교육청 예산을 지원받아 125개 품목의 학습준비물을 최저가 입찰 제도를 통해 일괄 구매한 뒤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제도다. 통계청의 전국 도소매업 사업체 수 조사에 따르면 2006년 2만583개였던 문구용품 소매점 수는 2013년 1만3496개로 약 35% 줄었다.



    인터넷에 점령당한 문구·완구시장

    창신동 문구업계도 타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창신동에서 15년간 문구업체를 운영해온 김모(55) 씨는 “학습준비물 지원제도가 시행된 후 이 거리의 문구가게 중 절반이 문을 닫았다”며 “파티용품점이나 동묘시장에서 넘어온 중고 등산복 판매점 자리가 과거에는 전부 문구점이었다”고 말했다.



    완구매장 상인들은 “대형마트와 온라인 매장 때문에 매출이 옛날 같지 않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동대문완구시장에서 완구매장을 운영하는 정모(52) 씨는 “6~7년 전부터 장사가 잘 안 된다. 아무래도 인터넷쇼핑이나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것 같다. 사실 마트나 인터넷보다 이곳 상품이 조금 더 싸지만 그것 때문에 손님들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는다. 주차장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거리도 좁은데 5000~1만 원 아끼려고 여기까지 올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동대문완구시장의 상품 가격은 인터넷이나 마트 최저가에 비해 저렴했다. 최근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터닝메카드’ 시리즈의 ‘점보 메카니멀’의 경우 인터넷 최저가는 5만2500원, 마트 최저가는 이보다 높다. 그러나 이곳 매장에선 4만8000~5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이 제품의 경우 인기 제품이라 할인 폭이 적지만,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을 바로 받아 판매해 중간 이윤이 없는 유통구조인 데다 도매가격을 소매 손님에게도 적용하니 시중보다 30~50%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1월 24일 서울시는 ‘2015년 관광특구 활성화 사업계획’의 일환으로 동대문완구시장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지원 내용은 동대문완구시장 입구에 조형물을 설치하고 종로·청계 관광특구 일대(총면적 585,709㎡)의 관광환경을 개선한다는 것이었다. 이 사업에 지출된 예산은 총 1억5000만 원. 사업 내용으로만 보면 종로·청계 관광특구 일대 전체 관광환경을 개선하는 데 이 돈은 그리 큰돈이 아닌 듯하다.

    하지만 종로·청계 관광특구 일대는 2006년부터 관광특구로 지정돼 개발됐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5년에는 대략적인 정비가 끝난 상황이었다. 즉 2015년 실질적인 ‘관광환경 개선’이 있었던 곳은 동대문완구시장 일대뿐이었다. 동대문완구시장 활성화를 위해 1억5000만 원을 사용한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도 “2015년 종로구 일대 관광환경 개선 사업은 주로 창신동(동대문완구시장)에서 이뤄졌다”고 답했다.  

    시민 세금을 들여 시장 활성화 사업을 진행했지만 이곳 상인들은 “별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동대문완구시장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모(48) 씨는 “돈을 들였다지만 손님이 늘지 않았다. 도로를 조금 정비하고 조형물 몇 개 세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차라리 상인들에게 필요한 사항을 묻고 그에 따라 지원해줬으면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같이 지원해서는 손님이 늘지 않을뿐더러 상인들도 큰 기대를 가질 수 없다”고 답했다.



    “상인 모두가 지원사업에 불만”

    비교적 손님이 많은 편인 대형 완구매장도 지원 내용에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완구매장을 운영하는 서모(53) 씨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원사업”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높은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 지원책을 만들 것이 아니라 직접 거리에 나와 무엇이 필요한지 보고 들은 후 지원사업을 진행했어야 하는데,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쓴 것 같다. 도로를 정비하고 조형물 세울 돈으로 급한 공공화장실을 만들거나 주차장을 확충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간판을 통일해 한눈에 문구·완구거리의 느낌이 나도록 하든지 했어야 한다. 실제 손님을 모을 수 있는 지원책이어야 하는데 무슨 생각으로 지원사업을 진행했는지 알 수가 없다.”

    상인들 불만은 컸지만 서울시는 사업 방향을 수정할 뜻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 정비나 조형물 설치 이후 3년도 지나지 않아 지원사업 성패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추후 타요 캐릭터 도로 조성 사업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원사업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관광산업 전문가들은 시장을 중심으로 이 구역에 관광객을 모으겠다는 서울시의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고 진단한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서울시가 좀 더 심사숙고해 창신동 관광특구 사업에 접근해야 한다”며 “관광 목표는 사람을 모으는 것인데 동대문완구시장은 쇼핑할 관광객을 모으기엔 너무 작고 판매 물건이 제한적이다. 쇼핑 중심에서 문화 중심으로 사업 방향을 돌려 백남준 생가, 박수근 생가 등을 통한 문화거리 조성으로 접근한다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유리할 것이다. 관광객이 모이면 자연히 주변 완구시장이나 동대문종합시장으로도 움직이게 될 테니 시장에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지속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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