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1

2016.03.30

커버스토리 | 20대 총선 공천과 대선 기상도

최악 공천싸움 손익계산서 | 육룡도 모르샤

친박계가 유승민 낙천에 집중하는 사이 김무성은 실리 챙겨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6-03-25 16: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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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총선은 2017년 12월에 있을 19대 대통령선거(대선)를 1년 8개월 앞두고 실시된다는 점에서 차기 대선의 전초전 성격이 짙다. 특히 각 당 공천 과정에서 차기주자들은 저마다 자신과 가까운 후보에게 공천장을 쥐어주고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공천경쟁을 벌였다.

    각 당에서 공천장을 받고 본선에 진출한 후보들은 4월 13일 총선에서 당선하면 ‘20대 국회의원’이 되지만, 낙선하더라도 해당 선거구를 총괄하는 지역위원장 또는 당원협의회(당협)위원장을 맡아 내년 대선까지 활동할 공산이 크다. 즉 내년 대선을 준비하는 차기주자 처지에선 자신과 가까운 인사에게 공천장을 쥐어주는 것이 곧 내년 대선 경선에 대비해 지역사령관 한 명을 심어놓는 것과 같은 정치적 효과가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 국민의당 등 각 당에서 차기 대권을 노리는 대선주자들이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합을 벌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20대 총선을 2017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만든 이는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다. 안 의원이 총선을 넉 달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현 더민주당)을 탈당한 이유가 가깝게는 4월 13일 총선을 대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2017년 12월 대선을 향한 대장정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신당 창당에 나선 까닭

    야권에서는 지난해 2월 새정연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가 당선한 이후 새정연이 급격히 친노(친노무현)와 86세대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목도한 안 의원이 ‘이대로 총선을 치를 경우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에 따라 제 갈 길을 찾아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안 의원은 총선 120일을 앞두고 탈당을 결행, 50여 일 만인 2월 2일 원내 제3당인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안철수 현상’이나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신드롬은 없었다. 결국 안 의원은 취약한 지지기반을 보완하고자 호남을 기반으로 독자 신당 창당에 나섰던 천정배 의원과 손을 잡아야 했다.

    일반 사회에서는 ‘걱정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정치세력이 손잡으면 자리는 반이 되고, 경쟁은 배가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 체제가 됐다는 것은 공천경쟁이 최소 2배 이상 치열해졌다는 얘기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등 기성정당에서는 볼 수 없던 공천을 둘러싼 몸싸움이 국민의당 공천 과정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극심한 공천 후유증에도 안 의원은 전국적으로 내년 대선까지 함께할(?) ‘동지’들에게 공천장을 쥐어줬다. 그들 가운데 얼마나 ‘당선’이란 과실을 딸 수 있을까. 안 의원이 몇몇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이번 총선 결과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느냐가 안 의원이 2017년 대권가도로 직행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안 의원 본인이 20대 총선에서 생환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안 의원의 낙선은 곧 제3당 정치실험의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20대 총선 공천을 통해 가장 확실하게 대권가도를 닦은 이는 더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영입한 뒤 차도살인 격으로 당내 경쟁자의 수족을 모두 잘라냈기 때문이다.

    더민주당 공천의 특징은 외견상 친노 운동권 일소로 압축할 수 있다.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을 낙천시켰고, 86세대(80년대 학번, 1960년대생) 운동권 가운데 ‘과격한 언행’으로 자주 구설에 올랐던 정청래 의원도 낙천했기 때문.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친노 운동권 배제 이면에는 문재인 대권가도에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정세균계의 몰락이 뚜렷했다.

    전병헌, 오영식, 강기정 등 3선 이상 중진의원이란 이유로 낙천한 이가 공교롭게도 대표적인 정세균계 인사들이다. 불출마를 선언한 최재성 의원까지 포함하면 친노 주류에 이어 당내 다수파를 점하던 정세균계가 사실상 몰락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공천은 당장 4월 총선 이후 치를 당내 전당대회를 대비한 포석일 뿐 아니라, 내년 대권 경쟁까지 염두에 둔 이중포석의 의미가 강하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당내 공천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내년 대권경쟁이 문재인 전 대표 우위로 흐를 수 있음을 짐작게 한다.

    야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더민주당의 20대 총선 공천 특징은 친노계의 친문재인화”라며 “김종인 대표를 앞세워 친노 주류는 좌장 이해찬 의원을, 범친노로 여겨지는 정세균계는 좌장 정세균 의원을 제외한 주변 인물을 모두 낙천시킴으로써 완벽하게 문재인 체제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권까지 고속질주만 남았다?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공천은 차기 대권을 노리는 김무성 대표와 차기 대선에서 주도적 구실을 하려는 최경환 의원 등 친박근혜(친박)계의 샅바싸움 성격이 짙다. 여기에 임기 후반기 레임덕을 막고 국정 장악력을 높이려는 청와대의 관심이 공천 심사에 투영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힘겨루기 양상을 띠었다. 그 결과는 친박의 신승, 김 대표의 실리로 요약할 수 있다.

    외견상 새누리당의 이번 총선 공천은 대표적 친박계 인사인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을 주도하면서 공천 내내 친박 주도의 공천이란 인상을 줬다. 특히 대구에 출마한 진짜 친박근혜계, 이른바 진박 6인이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진박 일색의 공천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막상 공천 뚜껑을 열어보니 새누리당 공천 결과는 친박 또는 진박의 일방적 승리라고 할 수 없게 됐다. 친박계 중진으로 꼽히는 김태환, 서상기 의원은 공천 배제(컷오프)됐고, 대구 진박 6인방 가운데 대구 북구갑 경선에 나섰던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과 대구 서구 경선에 나섰던 윤두현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은 경선에서 탈락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의 정무특보 3명이 모두 새누리당 공천장을 받지 못한 ‘정무특보의 저주’도 나타났다. 윤상현 의원(인천 남구을)은 자신의 막말 파문으로 낙천했고,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을)은 지역구가 여성우선공천지역으로 분류되면서 공천에서 배제됐다. 김재원 의원(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은 선거구 재획정으로 인구가 많은 경북 상주가 선거구에 포함되면서 상주 출신 김종태 의원에게 경선에서 져 총선 출마가 좌절됐다.

    TK(대구·경북)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친박계 인사는 줄줄이 경선에서 패했다. 서울 서초갑에서는 조윤선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이 유승민계로 통하는 이혜훈 전 의원에게, 서초을에서도 강석훈 의원이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에게 졌다. 또한 중구·성동을에서는 김행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실 대변인이 지상욱 전 당협위원장에게 밀렸다. 공천 칼날을 휘두른 친박계가 공천 작업을 통해 ‘상처뿐인 영광’을 얻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 정무특보의 저주

    다만 친박이 휘두른 공천 칼날에 유승민계는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유 의원 본인은 후보등록 직전까지 공천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스스로 새누리당을 탈당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서울에서 이혜훈 후보(서초갑), 대구에서 김상훈 후보(서구)가 경선 승리로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했을 뿐 이종훈(경기 성남분당갑), 이이재(강원 동해·삼척), 김희국(대구 중·남구), 류성걸(대구 동구갑), 권은희(대구 북구갑), 홍지만(대구 달서갑),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민현주(비례대표) 의원 등 유승민계 현역의원 8명은 모두 낙천했다.
    유승민계가 전멸하다시피 하고, 친박계가 상처뿐인 영광을 거둔 사이 김무성 대표는 톡톡히 실리를 챙겨 대조를 이뤘다. 김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권성동(강원 강릉), 김학용(경기 안성), 김성태(서울 강서을) 의원이 공천을 받았고 강석호(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김영우(경기 포천·가평), 김종훈(서울 강남을), 박명재(경북 포항남구·울릉), 박민식(부산 북·강서갑) 의원 등도 경선을 통해 살아남았다. 인천 남동갑에 전략공천된 문대성 의원과 서울 관악을에 나서는 오신환 의원도 김무성계로 분류된다.

    여권 한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비박(비박근혜)계가 전당대회와 원내대표 경선 등에서 연전연승하며 우위를 보였는데, 이번 20대 총선 공천을 계기로 친박 대 비박이 세력 균형을 이루게 됐다”고 촌평했다.

    실제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치른 경선에서 대부분 비박계가 승리했다. 2014년 5월 국회의장 경선에서 비박계 정의화 의원이 압도적 표차로 국회의장직에 올랐고, 그해 7월 전당대회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큰 표차로 승리했다. 또한 지난해 2월 원내대표 경선 때도 비박계 유승민 의원이 큰 표차로 이겼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싸고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심판론’을 들고 나온 이후 새누리당 내 기류는 급변했다. 결국 20대 총선 공천을 통해 비박 우위의 당내 권력지형이 친박 우위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진 셈이다. 그 과정에서 유승민계는 몰락하고, 김무성계는 실리를 챙겼다.

    ‘절차탁마를 거치기 전 옥돌은 그냥 돌멩이일 뿐이고, 담금질을 거치기 전 보검은 그저 쇳덩이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옥돌과 보검이 그러할진대, 한 나라의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에게 ‘담금질’과 ‘절차탁마’는 정치적 성장을 위한 필수코스다.



    ‘정의’ 방패 삼아 광야에 선 유승민

    대중의 득표로 지도자가 결정되는 민주체제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국민 환호로 ‘지도자’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춘 정치인이 혹독한 검증과정을 거쳐 성장하고, 최고 정점에 올랐을 때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권을 거머쥐는 경우가 많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사독재 시절 ‘가택연금’과 ‘의원직 박탈’ 같은 시련을 딛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납치’ ‘사형선고’ 등 몇 차례 사선을 넘나드는 고초를 겪으면서 견고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쉬운 길을 놔두고 ‘지역주의 극복’이란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해 힘들고 어려운 길을 제 발로 찾아 나선 것에 국민이 감동해 지지를 보낸 측면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과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 도입 등 서울시장 재직 당시의 ‘높은 성과’를 바탕으로 대권에 오른 경우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당시 석연치 않은 경선룰 변경으로 아깝게 패했음에도 결과에 깨끗이 승복함으로써 여권 지지층에게 ‘여운’을 줬고, 행정수도(현 세종시) 이전을 관철함으로써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란 국민적 이미지가 더해져 대권에 오를 수 있었다.

    2017년 대선을 1년 8개월 앞두고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 누락에 반발, ‘정의’를 앞세워 탈당한 것은 권력자에게 정치 보복을 당했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유 의원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가 성공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의 미래는 꽃길이 될 수도, 반대로 가시밭길이 될 수도 있다.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에서 한 시사평론가는 “지금의 유승민을 만든 건 8할이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촌평했다. 그의 말을 이어 얘기하자면 차기주자 유승민을 완성하는 나머지 2할은 대구 동구을 유권자 손에 달린 셈이다. 

    또 하나의 유력 차기주자 새누리당 오세훈

    서울 종로구에서 3선을 기록한 박진 전 의원을 꺾고 새누리당 공천을 확정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새누리당 공천이 배출한 또 하나의 유력 차기주자다. 오 전 시장이 20대 총선에서 당선할 경우 마땅한 차기주자가 없는 친박(친박근혜)계와 손잡고 비박(비박근혜)계를 대표해 차기주자를 노리는 김무성 대표와 경쟁하리란 관측이 많기 때문.

    박근혜 대통령과 오 전 시장의 관계는 비교적 친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시장이 처음 서울시장에 올랐던 2006년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당대표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홍준표 의원과 맹형규 의원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게 서울시장 경쟁을 벌일 때 두 사람을 설득해 오 전 시장이 뒤늦게 서울시장 경선에 뛰어들게 도와준 이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다”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 ‘데일리안’은 지난해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낙마한 뒤 차기 총리 후보로 오 전 시장이 하마평에 올랐을 때도 박 대통령이 “큰일 하실 분에게 총리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큰일’은 차기 대선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 많았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났던 그가 20대 총선을 통해 차기주자로 화려하게 재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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