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6

2016.02.24

국제

혹한 뚫고 북극권 달리는 자전거 난민 행렬

지중해·발칸 루트보다 저렴…싸늘해진 북유럽 국가 민심

  •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입력2016-02-23 14: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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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극야(極夜)가 펼쳐지는 북극권 들판, 한겨울 영하 30도 이하 혹한 속에서 동사(凍死) 위험을 무릅쓴 난민들의 자전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이 해마다 수천 명씩 사망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노르웨이, 핀란드를 잇는 북극권 국경이 시리아 난민들의 ‘춥지만 안전한’ 탈출 루트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 러시아 최북단 항구인 무르만스크 인근의 러시아-노르웨이 국경에는 지난해 총 5400명 난민이 자전거를 타고 넘어와 서유럽행 난민 신청을 했다. 이중 3분의 1이 시리아 국적을 갖고 있었다.
    시리아 알레포 출신인 나빌(30) 씨는 지난해 말 레바논으로 탈출한 후 러시아 관광비자를 얻어 모스크바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모스크바에서 열차를 타고 무르만스크까지 이동 경비만 총 2500달러(약 306만 원)가 들었다. 그는 400달러(약 49만 원)를 주고 어린이용 자전거를 한 대 사서 국경까지 눈보라와 칼바람을 뚫고 30km를 달렸다. 그는 “추위 속에서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중해에 빠져 죽는 것보다는 훨씬 싸고 안전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북극지역에 자리한 작은 소도시 소에르바란거의 루네 라파엘센 시장은 “혹한의 날씨에 걷거나 국경을 지나면 사람들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춥다”고 말했다.



    국경마다 자전거 품귀

    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눈과 얼음으로 덮인 들판을 가로질러 국경을 넘는 이유는 간단하다. 러시아는 걸어서 국경을 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노르웨이는 정식 허가서류 없이 자동차로 입국하는 것을 불허하기 때문.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은 양국에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 빈틈이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EU) 국가는 아니지만, 비자 없이 26개 유럽 국가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솅겐조약 회원국이어서 난민들의 유럽행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지중해 루트’(북아프리카-지중해-이탈리아)나 ‘발칸 루트’(터키-에게 해-그리스-발칸반도) 대신 ‘북극 루트’를 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목숨을 잃을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북극 루트 비용은 러시아 비자 발급 비용 250달러, 모스크바행 항공료 1600달러, 자전거 구매비 150달러를 포함해 모두 2400달러(약 295만 원)가량이다. 반면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통해 북유럽으로 가려면 1만2000달러(약 1472만 원) 정도 든다.
    난민이 몰려들자 러시아 국경마을 니켈에서는 자전거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반면 노르웨이 최북단 국경 인근 시르케네스 난민캠프에는 버려진 자전거가 수북이 쌓여 있다. 자전거를 구하지 못한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인들은 주로 니켈에 최근 급증한 30~40명 규모의 쪽방형 숙박시설에 머물고 있다.
    국경을 넘어온 난민은 국경에서 15km 떨어진 시르케네스 공항 인근  임시거처에 머물게 된다. 과거 군 주둔지였던 이곳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48시간. 일단 얇은 점퍼와 방수 재킷 등 북극의 혹독한 추위를 버텨내기 위해 필요한 기본 생필품을 지급받고 이층침대에서 생활한다. 원래 임시거처는 시르케네스의 체육관이었으나 지난해 지역 주민 수의 2배가 넘는 난민이 몰려들자 새로 넘어온 이들은 군 야영지에 머물게 하고 있다. 이웃 핀란드에도 올해 들어서만 900명이 러시아 국경을 넘어왔다. 지난 한 해를 통틀어 700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증가세다. 추세대로라면 핀란드에는 올 한 해 총 7500명의 난민이 북극권 국경을 통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노르웨이와 핀란드 정치인들은 북극권 국경을 통한 난민 유입 급증과 관련해 러시아 쪽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분쟁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에 보복하는 차원에서 난민 물결을 조장하거나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내무부 장관은 “러시아 국경으로 난민이 몰려드는

    일은 러시아 정부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티모 소이니 핀란드 외무부 장관은 국영방송을 통해 “(이러한 상황은) 난민들에게 불법 월경을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러시아 인신매매 조직 범죄와 관련이 있다”며 “러시아와의 북쪽 국경을 폐쇄하는 방안도 제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극권 국경이 난민으로 북새통을 이루자 그간 관대한 수용과 복지 제공으로 유명했던 북유럽 국가들의 태도도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르웨이 우파 정부는 지난해 12월 “러시아는 안전한 국가이기 때문에 통과비자 없이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은 자신이 타고 온 자전거에 태워 송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실제로 1월 19일 노르웨이 경찰은 난민 13명을 스토르스코그 국경에서 러시아로 돌려보냈다. 인권단체들은 혹한의 날씨에 난민들을 되돌려 보내는 것은 “유엔 난민협약 위반”이라고 분노했다. 결국 1월 23일 러시아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서야 노르웨이는 난민 송환을 임시중단했다.





    난민 재산 몰수해 경비 충당

    지난해 유럽 국가 가운데 인구 대비 가장 많은 난민(16만3000명)을 받아들인 스웨덴은 최근 난민 자격을 얻지 못한 이주민 8만 명을 추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스웨덴 정부는 난민 유입을 통제하고자 올해 초부터 덴마크와의 국경을 잇는 외레순 대교와 해저터널 이용객들에게 철저한 여권 확인 절차를 시행하고 있다. 반세기 만에 재개된 국경 통제로 양국을 오가는 시민들도 평소보다 30분~1시간 지체를 겪고 있다. 북유럽 국가에서는 솅겐조약을 잠정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덴마크에서는 1월 난민 신청자들에게 1만 크로네(약 172만 원) 이상의 귀중품을 압수하는 ‘난민 재산 몰수 법안’이 논란 끝에 통과됐다. 정부가 난민들에게 거둔 돈은 난민 신청이 처리되는 기간 이들의 주거비와 식비 등을 충당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법안은 또 난민 신청자들이 3년 내에는 가족과의 재결합을 신청할 수 없게 했다. 이 법안에 대해 페르닐레 스키퍼 좌파연합당 대변인은 “대량 범죄와 전쟁, 강간을 피해 도망 온 사람들을 그처럼 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끔찍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난민 재산 몰수 법안’은 국제인권단체의 비난을 받았지만, 스웨덴과 노르웨이 정부도 도입 방침을 밝혔다. 난민에게 관용적인 자세를 취해온 덴마크의 조치가 다른 나라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는 것. 스위스나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난민 신청자의 재산을 압수하고 있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는 난민 신청자에게 750유로(약 98만 원) 미만의 현금이나 귀중품만 소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고, 인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도 비슷한 조치를 도입했다. 스위스는 1990년대부터 난민 신청자가 소지한 1000스위스프랑(약 118만 원) 이상의 현금을 압수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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