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3

2016.01.27

경제

당신 회사에는 ‘레드팀’이 있습니까

조직 편향 최소화 위한 모의 적군…위기일수록 효과 높아

  • 김은정 LG경제연구원 연구원 ekim@lgeri.com

    입력2016-01-25 17: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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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론 자신이 틀리고 다른 사람이 옳을 때가 있다. 혹은 자신이 보고 믿는 게 전부가 아닐 때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의심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1960년 사회심리학자 피터 왓슨은 “사람은 대부분 자기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욱 강하게 뒷받침해주는 말이나 증거만 확인하려 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빠지기 쉽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일일 터이다.
    기업도 사람과 같다. 피하기 어려운 조직의 본성이 있다. 바로 의사결정 이면에 스며든 ‘조직 편향’의 덫이다. 특히 응집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의사결정을 내릴 때 구성원들 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만장일치를 이루려 하기 십상이다. 이른바 집단사고(Groupthink) 편향이다. 이러한 집단사고는 리더의 첫 한 마디에 따라 조직 구성원 모두의 의견이 동시에 모아지는 폭포효과(Cascade Effect)를 초래한다. 리더와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말하지 못하는 자기검열 현상도 발생한다. 조직의 이러한 편향적 의사결정은 특히 위기에 즈음해 기업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듀폰이 승승장구했던 이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넛지(Nudge)’ 공동저자인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편향적 의사결정으로 발생하는 조직 문제의 60%를 감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레드팀(Red Team)’을 꼽는다. 역사적으로는 오래된 개념이지만 해외에 비해 아직 한국에서는 그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은 의사결정 기법에 속한다.
    레드팀 기법은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에 그 뿌리를 둔다. 냉전 시기를 거치는 동안 집단사고와 위계질서가 강한 군대에서 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할 때 아군을 블루팀, 적군을 레드팀으로 불러온 데서 나온 말이다. 현재 레드팀은 악마의 대변인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간주되며 군사·국방은 물론, 일반 기업, 정부, 로펌, 미디어,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레드팀에는 크게 세 가지 기능이 있다. 첫째,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황을 미리 예측한다.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각 시나리오에 부응하는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때 레드팀은 기존 팀이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의 변수까지 더욱 면밀하게 검토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둘째,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듯 레드팀은 취약점 발견(Vulnerability Probes)이라는 과정을 통해 되짚어보기를 실행한다. 공격자 내지 경쟁사의 관점을 가진 레드팀과 기존 전략팀인 블루팀 간 경쟁을 통해 전략의 취약점을 찾아내고 공격해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줄뿐더러, 경쟁사의 대응 및 그에 대한 역대응 전략에까지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 때문에 ‘경쟁사의 관점’을 꿰뚫어보는 레드팀의 구성원은 경쟁사나 해당 분야에 정통해야 한다. 최근까지 경쟁사에서 일했던 사람들로 구성하면 완벽할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셋째, 대체 분석(Alternative Analysis)을 통해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조직 내 관습적이고 주류적인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기존에 세워진 가설을 분석해 기업 전략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장점이다. 특히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해지고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시대에는 단 한 번의 잘못된 의사결정이 기업 존폐를 좌우할 수 있다. 투자 결정이나 전략을 한 번 결정하면 바꾸기 어려운 사업일수록, 투자 규모가 클수록, 혹은 정보가 핵심이어서 보안이 얼마나 취약한지에 따라 피해가 치명적인 회사일수록 레드팀의 위력은 더욱 커진다.
    레드팀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본 기업이 바로 듀폰이다.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최장수 기업인 듀폰은 다우케미컬과 합병한 이후 통합 회사의 가치가 약 1300억 달러(약 156조6000억 원), 연 매출 900억 달러(약 108조4000억 원)에 이르는 세계 2위 화학업체가 됐다. 듀폰은 오래전부터 신규 사업 진출과 사업 철수 등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의 강약 조절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레드팀을 적극 활용해왔다. 특히 위기에 그 위력이 돋보였다. 2001년 갑자기 닥친 9·11테러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에 글로벌기업 가운데 가장 빨리 대처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6주 만에 신속히 대응책을 꺼내 들었다.
    레드팀 전문가들은 이를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적합한 팀 구성원 선정을 꼽는다. 창의적이고, 때론 엉뚱하며, 주어진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회의론자여야 한다.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이는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자신감도 필요하다. 내부 인력을 중심으로 구성해야 하지만 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 고정관념을 피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팀원을 교체할 필요도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의 경우 레드팀 구성원에 대한 출신 부서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부분에 신경 써야 한다.


    ‘겸허한 용기’의 중요성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관건은 의사결정자가 레드팀의 결과물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발생 가능한 미래 금융위기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2004년 영국 재정청과 영국은행은 레드팀 기법을 이용해 돌발 상황 시나리오를 구성한 바 있다. 소매금융 중심 은행부터 유동성 위기에 빠져 대형 은행으로 확산되리라는 것이 골자였다. 이는 실제로 2008년 하반기 영국을 강타한 금융위기와 놀라울 정도로 양상이 일치했다. 그러나 정확한 시나리오에도 영국 정부는 적절한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 금융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레드팀의 결과물을 형식적 혹은 일회용으로 생각한다면 위기를 예측하고도 대비하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레드팀의 결과물은 의사결정 과정의 잘못을 지적하는 등 최고결정권자의 자존심 문제로 연결될 공산도 있다. 쓴소리도 겸손하게 받아들여 그 결과를 실행 부서로 이관하는 최고결정권자의 겸허한 용기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기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레드팀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 회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조직이든 조직 편향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레드팀 도입 여부를 떠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위기 상황일수록 경영자는 스스로 자신이 때로는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 한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도 겸허히 경청하는 자세로 편향을 극복해나가고자 하는 자세야말로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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