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3

2016.01.27

Global Asia 주간동아 특약

동북아 3국 대미 공공외교 성적표

대중매체 공략 中, 로비 주력 日…한국은 고래 틈에 낀 새우?

  • 켄트 칼더 미국 존스홉킨스대 동아시아연구센터 소장

    입력2016-01-25 17: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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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대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외교.’ 21세기 들어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의 사전적 정의다. 급변하는 미국의 정치 현실은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공공외교를 더욱 필수적인 과제로 만들었지만, 각 나라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대미(對美) 공공외교 현실과 정책적 고려사항을 검토한 영문계간지 ‘글로벌아시아’ 최신호 기획특집을 번역, 소개한다. <편집자 주>
    동북아와 관련해 미국 정치·경제 현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시아계 인구의 증가다. 1960년 무렵 미국 내 아시아계 인구는 전체 인구의 0.8%에 불과했지만, 2010년 기준 전체 인구 대비 비율은 4.8%에 이르렀고 2060년에는 8%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아시아계 인구 증가에는 다양한 배경이 숨어 있다. 먼저 국적을 기준으로 이민자 수를 제한했던 1965년 개정 미국 이민법이 기술 보유, 가족 상봉, 인권 등을 기준으로 삼는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점이 첫 번째다. 여기에 아시아의 경제성장, 특히 중국 정치·경제 분야의 자유화가 이민 증가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75년 베트남전쟁이 종결된 이후 인권 보장을 갈구하던 동남아 인구의 미국 유입도 원인의 한 축이었다.
    역사적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의 주요 거주 지역은 하와이와 서부 해안지역이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에는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북동부지역이나 남부지역에서 아시아계 인구가 빠르게 증가했다. 버지니아 주처럼 아시아계 미국인이 많은 주는 미국 내 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른바 경합주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중요성이 대통령선거를 비롯한 미국 내 정치 영역에서 확장된 배경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구성비 역시 향후 동북아 국가들의 공공외교와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이다. 1965년 이후 주로 중국, 인도, 필리핀, 한국계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이와 반대로 일본계 미국인 수는 서서히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 양상은 아시아 역사 문제를 둘러싼 미국 내부, 특히 미 의회의 정치적 판도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중국인, 인도인, 한국인 등 아시아계 미국인은 지방의회 선거구를 구성하는 유권자로서 비중이 커지고 있고, 대선의 경우 특히 경합 주에서 중심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연방의회나 주의회가 입법 과정에서 공공외교에 점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이러한 맥락이 깔려 있다. 다만 미국의 대중은 인권 차원이 아니라 전략적 혹은 지정학적 차원에서 역사 문제를 이슈화하려는 움직임에는 거부 반응을 보인다.



    SNS 시대, 짧아진 이슈 주기

    동북아 공공외교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변화는 바로 정보 혁명이다. 지난 10년에 걸쳐 인터넷, 팟캐스트, 스트리밍 영상 등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미국 정치의 이슈 주기는 상당히 빨라졌고, 뉴스가 될 만한 극적인 상황의 사회적·정치적 파급효과도 훨씬 커졌다. 새로운 사건이나 주장, 반론에 빠르게 대응하는 일이 한층 중요해진 것이다. 아시아 각국이 미국 내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성하는 데 비공식적이고 즉각적이며(instant) 신속한 대응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정보 혁명이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주요 싱크탱크, 특히 워싱턴에 자리한 싱크탱크들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기관이야말로 동북아 국가나 기업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책 메시지를 증폭하는 강력한 경로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익집단마다 이들 싱크탱크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본래 연구 중심이던 싱크탱크가 특정 이익단체의 대변자로 변모하는 상황마저 발생한다. 이들이 내놓는 정책 자료에 대해 회의적인 여론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흐름은 지식층 여론과 미 의회에서 큰 역효과를 유발해 향후 객관적 의제 설정자로서 싱크탱크의 정당성을 해칠 공산이 크다.
    세 번째로 주목할 만한 변화는 미국 내부의 사회정치적 양극화 현상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에 해당하는 이들로는 앵글로색슨계나 최근 미국으로 이민 온 아시아인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지난 30년간 이어져온 미국 정치·경제의 급속한 세계화에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반면 이보다 덜 부유한 계층에 속하는 블루칼라 직종 종사자들은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고, 세계화로 소득 불균형이 심화됐다고 믿는다. 특히 근래 들어 블루칼라 직종의 임금이나 고용기회가 상대적인 침체를 겪으면서, 이들 계층에서는 환태평양지역은 물론 전 세계와의 상호의존 현상에 대한 거부감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정치 양극화가 갖는 의미는 지난 몇 달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TPP)을 두고 미 의회에서 벌어진 협의 과정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 바 있다. 2015년 6월 미 의회는 태평양지역 협력 국가 12개국이 참여하는 이 역사적인 무역협정을 결정짓는 데 매우 중요한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 부여 법안을 아주 근소한 표차로 겨우 통과시켰다.
    반면 긍정적 요인도 있다. 먼저 동북아 국가들의 문화 및 정치·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깊어졌다. 중국, 일본, 한국을 여행하는 미국인이 점점 늘고 있고, 초밥과 불고기는 이제 미국에서도 잘 알려진 인기 음식 메뉴이며, 중국 음식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미국 사회에 정착했다. 동북아에 대한 친숙도가 높아진 만큼 미국인들은 동북아 국가들의 차이를 구별하고 이들 나라 간 다양한 갈등구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한 세대 전 혹은 10년 전과 견줘도 괄목할 만한 변화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주요 3국이 미국 내부에서 수행하는 공공외교의 최우선 목표는 아마도 미국 여론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확보하는 일일 테다. 미국은 전 세계 최대 시장으로, 한중일 3국 모두 수출의 상당량을 미국에 보내고 있다. 미국 인구 가운데 700만 명 이상이 한중일 3국과 민족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인종적 유대 관계 또한 중요하다. 안보 상황 역시 중요한 요소다. 경제, 금융, 역사, 영토 문제에 관한 한중일 3국의 경쟁 심화는 국제사회 중재자로서 미국의 중요성을 한층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세 나라가 대미(對美) 공공외교에서 각자 독특한 접근법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국가원수가 미국을 국빈 방문하거나 거꾸로 미국 대통령의 해당국 방문을 통해 관심도를 높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방식에 속한다. 최근 들어서는 준정부기관이 주최하는 문화행사 역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원래 이는 메종프랑세즈, 괴테연구소, 영국문화원 등 주로 유럽 국가들이 주로 활용하던 방식이지만, 동북아 국가들 역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 나서는 중이다. 지방정부 차원의 자매결연 관계 또한 공공외교의 한 요소로서 부침을 거듭해왔다. 1970년대 이후 지방정부 간 자매결연 활동은 침체기를 맞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이 영향력 키우기 경쟁에 나서면서 다시 활발해지는 추세다.
    또 다른 전통적인 분야로는 로비 활동을 꼽을 수 있다. 의회를 통해 자국 이익을 대변하고, 로펌이나 기타 공식인증을 받은 대행기관들을 활용해 연방정부나 지방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로비 활동은 미국 내에서 오랜 관행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특히 국제통상 및 투자 부문에서의 로비 관행은 언제나 가장 두드러진 분야였다. 하지만 무역 자유화가 진척되면서 기존 로비 방식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예전에는 로비를 전문으로 하던 로펌들이 이제는 대외홍보나 정보 수집 같은 기능으로 눈을 돌리는 일도 벌어진다. 이전보다 통합적인 이익 대변단체로서의 기능을 강화하는 셈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자국 출신 유권자들을 활용하는 공공외교는 한중일 세 나라 모두 가장 공들이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여기에다 자국에서 근무한 적 있는 재향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도 최근 늘려가고 있다. 미국의 주요 안보동맹국인 두 나라에서는 누적 기준으로 수십만 명의 미군이 복무했고, 참전군인회뿐 아니라 일반 미군 전역자들 역시 의회나 연방정부, 지방정부와 특별히 강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미 국무부가 가진 정치적 영향력을 능가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재미동포 사회의 강한 결속력

    이렇듯 공공외교의 영역은 다양하지만, 그 효과를 측정하는 일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확실한 지표를 만드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세계 각국에 대한 미국 국민의 인식이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와 퓨 리서치가 가장 공신력 있는 분석 자료를 내놓고 있다. 각 나라가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설문조사도 또 다른 평가수단이 된다. 각국 정부는 이러한 설문조사 자체에 영향을 끼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릴 수 있지만, 이는 도리어 공공외교 활동 자체를 망칠 공산이 크다. 설문조사 결과는 오로지 공공외교 정책의 방향을 중도에 수정하기 위한 피드백 참고자료로서만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한중일 3국의 경우 나라별로 내용에 차이는 있지만 최근 들어 모두 대미 공공외교에서 쉽지 않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지정학적 대립이 심화하는 데다, 무역수지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는 미국 내 인식을 잠재워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일본에게 던져진 질문은 과연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지, 혹은 미국의 외교정책 운용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가 처한 환경은 한국에 비하면 약과다. 공공외교에서 한국이 직면한 문제가 가장 심각하기 때문이다. 주변국과 비교할 때 규모가 작은 한국이 이러한 격차를 어떻게 상쇄할 수 있을지가 특히 중요한 문제다. 전반적인 열세를 무릅쓰고 주변 강대국만큼이나 야심찬 국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가 한국에게 주어진 과제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한중일 3국과 미국은 주로 양자관계를 통해 무역이나 안보를 최대한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의 경제가 고도화되고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국제무대에서 동북아 3국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금융, 에너지, 투자, 무역, 안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공통의 우려 사안이 많아졌다. 환율이나 영토, 역사 해석 문제에서도 세 나라는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세 나라는 확연히 다른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 대중매체와 방송 부문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엄청난 재원을 쏟아붓고 있는 반면, 일본은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많은 전문 로비스트를 고용해 활용하고 있다. 한국은 한미경제연구소(KEI) 등 준정부 차원의 아이디어 생산기관을 운영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작을수록 유리할 수 있다

    공공외교에서 재미동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세 나라 모두 마찬가지지만, 그 방법과 세밀함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독립운동에 뿌리를 둔 강력한 역사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또한 성공적으로 동포사회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 내 아시아계 인구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국계 미국인 사회는 미·중 간 지정학적 긴장과 대만 해협 문제로 정치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일본계 미국인 사회의 경우, 예전에는 정치 활동에 연루되는 것을 기피해왔지만 2009년 미국일본협회(US-Japan Council)가 설립된 이후 관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일본계 미국인 사회의 특성이나 일본 본국과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가 제약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미국 내에서 특정 국가의 영향력과 해당 국가의 정치 및 경제 규모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정보화 시대 이후 이슈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이러한 특성은 한층 커지는 추세다. 규모가 작은 나라와 대사관이 규모가 큰 상대보다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는 오히려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덩치가 작을수록 관료주의도 덜하고 내부의 편향성 역시 작기 마련이다.
    고래 사이에 끼인 새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주변국보다 덩치가 작은 한국이 대미 공공외교에서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세계화로 불안정성이 점차 가중하는 최근 국제환경 속에서는 이러한 열세가 거꾸로 당면 과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게 만드는 조건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국제관계에서처럼 미국과 동북아 각국의 관계에서도 위기의식과 불안정성이야말로 외교의 필요성을 촉발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아래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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