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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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조선족 1호 국회의원 만들자”

유권자 중심으로 조선족 정치세력화 움직임…아직은 시기상조

  • 김수빈 객원기자 subinkim@donga.com 김무연 인턴기자·고려대 사학과 4학년

    입력2016-01-25 1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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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을 80여 일 남겨두고 다양한 정치세력이 속속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다. 식당이나 건설현장 등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음에도 언제나 파편화돼 있어 결코 단일한 정치세력으로는 여겨지지 않던 중국동포(조선족)들도 그중 하나. 이합집산했던 조선족들이 하나로 뭉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수는 80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는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과 영주권자, 그리고 한국 국적을 회복·취득한 조선족을 모두 포함한 것. 조선족은 2014년 말 기준으로 한국 체류 외국인의 33%를 차지하고 있다(그래프 참조). 재외동포(외국국적동포)에서 조선족의 비중은 86.2%에 달한다. 국내 거주 외국인 집단으로서도, 재외동포 집단으로서도 압도적인 규모다.



    국내 경제에 기여해도 차별 심해

    이 때문에 필리핀 출신인 이자스민이 이민자로는 최초로 국회의원이 됐을 때 조선족 사회가 받은 충격은 컸다. 곽재석 한국이주동포개발연구원장은 “필리핀 출신 이민자 수는 1만 명도 안 되는데 필리핀 출신이 다문화·외국인 집단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먼저 됐다는 사실은 조선족에겐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주민 출신으로 선출직 정치인이 된 최초 사례로 이라 전 경기도의원이 있지만 그 또한 몽골 출신. 조선족 출신 정치인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조선족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만주 등지로 이주했다 분단 및 6·25전쟁으로 돌아올 길이 막혀 그곳에 뿌리내린 사람들과 그 후손을 일컫는다. 한국은 경기가 좋던 1980년대 말에는 조선족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면서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했으나 90년대 경기가 위축되자 출입국 절차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1999년 제정된 재외동포법은 조선족을 노골적으로 차별한 입법 사례로 꼽힌다. 48년 정부 수립 이전 타국으로 이주해 그 나라 국적을 취득한 사람을 동포로 인정하지 않아 조선족 대부분이 불법체류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해당 조항이 2003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고 2004년 개정되고 나서야 비로소 조선족도 재외동포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조선족이 자신들의 기여에 비해 한국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개정된 재외동포법에도 차별적인 요소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일본, 미국 재외동포들은 조건 없이 재외동포(F-4)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반면, 조선족은 국내 이공계 전문학사 이상 학위를 소지하거나 국내 4년제 대학 졸업장 또는 국내 공인 국가기술자격증 등을 갖고 있어야만 F-4 비자를 받을 수 있다. 통상적으로 외국 국적자가 받을 수 있는 비자와 달리 F-4 비자가 있는 경우 국내에서 직업 선택의 폭이 넓다. 조선족 가운데 F-4 비자를 받을 수 없는 이는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H-2 비자로는 단순노무직으로만 일할 수 있으며 체류기간도 최대 4년 10개월에 불과하다. 이 기간이 지나면 1년이 지나야 재입국이 가능하다. 반면 F-4 비자는 몇몇 제한을 제외하면 자영업까지도 가능하고 3년마다 무제한으로 갱신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영구 체류가 가능하다. 2014년 귀화한 조선족 출신인 김용선 중국동포한마음협회 회장은 “한국 정부가 중국동포를 미국동포나 일본동포와 다르게 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4·13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조선족 사회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움직임이 보인다. 1월 9일 치른 재한중국동포유권자연맹   2기 회장 선거에서는 단독 출마한 김영희 씨가 당선했다. 다른 후보들은 그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출마를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김영희 회장은 정치권에 조선족 사회에 대한 지원 정책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약 80만 명의 조선족 가운데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는 12만 명가량. 이 중 10만 명이 서울 구로구와 영등포구에 거주한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이라면 조선족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다. 김용선 회장은 “과거에는 선거철 때만 잠깐 얼굴을 내비치던 정치인들이 이제는 평소에도 중국동포들을 찾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저조한 투표율…결집력 한계도

    이들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조선족 1호 국회의원’을 만드는 것. 김영희 회장은 조선족 사회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이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중국동포 출신 국회의원이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기대도 크다. 구로구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조선족의 비례대표 공천 요구에 “중국동포의 의견을 수렴해 검토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조선족 관련 단체장들도 필리핀 출신인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과 탈북자 출신인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 등의 사례를 목격하고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크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족이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목소리를 내기에는 아직 요원하다는 게 중론이다. 가장 큰 원인은 저조한 투표율. 특정 지역구에서 조선족 유권자 수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인 것은 사실이나 이들의 참정권 행사는 매우 제한적이다. 한 조선족 단체 관계자는 “귀화한 중국동포들의 투표율은 10%를 밑돈다”고 귀띔했다. 2008년 귀화한 성모 씨는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하에서 살다 온 중국동포들에게 민주주의는 크게 와 닿지 않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유권자, 다시 말해 ‘한국 국적’을 이미 가진 조선족을 결집시키기가 쉽지 않다고 곽재석 원장은 말한다.
    “재외동포법 등에 따라 국적을 회복한 사람은 대부분 고령이고 평생을 중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 노인과는 달리 참정권 행사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또한 (조선족) 국적 획득자 대부분이 결혼이민자(한국 국적자와 결혼해 국적을 획득한 사람)라 결집이 잘 되지 않고, 조선족 권익에 대한 이슈들에도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편이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외국인에게도 선거권이 허용되고 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2005년 8월 공직선거법이 개정돼 외국인이더라도 영주권 취득 후 3년이 지난 사람은 투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주권자의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연간 소득이 일인당 국민총소득의 4배 이상이거나 7년 이상 머물러 거주권을 획득한 다음 5년이 지나야 영주권이 주어진다. 이 때문에 국내 외국인 영주권자의 대다수가 대만 출신 화교다. 게다가 영주권자라도 오직 지방선거에 한해서만 투표권이 주어진다.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은 뽑을 수 있어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뽑을 수 없다.
    결국 조선족이 정치권에서 제 목소리를 내려면 투표권 부여 확대와 투표율 제고라는 두 가지 난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김영희 회장은 취임 후 “투표를 하지 않는 유권자에게 어느 정치인이 관심을 가져주겠느냐”며 “투표율을 높여 중국동포 사회의 발언권을 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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